義人말살 ‘재임용 판례’ 헌법소원 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

[한겨레 2005-09-02 19:48]
% 대법원규탄 1인 시위일지
5개 시민단체 공동성명서

김명호(49·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씨는 며칠 전부터 국회의원 회관의 법사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찾아다니며 소책자 한 권씩을 건네고 있다. ‘20년간 양심적인 교수들을 대학에서 축출한 대법원의 재임용법 해석의 문제점’이라는 긴 제목의 책자다.

김씨가 판례를 샅샅이 분석해 만든 이 책자를 읽어보면, 지난 20년간 대법원의 재임용 판결의 문제점과 그가 사립학교법 부칙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이유를 알 수 있다. 김씨는 “‘임용은 임용권자의 자유재량행위’라는 대법원의 재임용법 해석이 양심적인 교수들을 강단에서 몰아낸 대학의 법적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95년 ‘미운털’ 재임용 탈락 ‘임용은 학교재량’ 이라는 대법원의 87년 판례 때문에 재임용 소송마다 ‘자동패소’ 2005년 1월 사학법 개정됐지만 이미 탈락한 사람은 배제

대법원이 1987년 “대학 교수의 임기만료는 당연 퇴직이며, 임용은 학교의 자유재량행위”라며 재임용 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내린 이래 20년 동안 ‘재임용 소송은 자동패소’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2003년 헌법재판소가 재임용과 관련해 옛 사립학교법 규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뒤 올해 1월 사립학교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최근 김재진 전 계명대 교수가 낸 교원재임용불허결정 무효소송이 1심에서 패소했다. 김민수 서울대 교수가 재임용 소송에서 승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개정 사학법의 적용은 현재 재직 중인 교원으로 제한하는 사학법 부칙 2항 때문이다. 그가 재임용 탈락교수 10여명과 함께 이 부칙이 헌법의 평등권과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낸 이유다.

김씨에게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다. 95년 김씨는 당시 성균관대 대입 수학시험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정직한 문제제기’를 한 뒤 이른바 ‘미운털’ 이 박혀 부교수 승진과 재임용에서 잇따라 탈락했다. 그 뒤 10년 동안 뉴질랜드와 미국의 대학과 벤처기업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외국에서 홀로서기는 녹녹치 않았다. 그는 다시 수학자로서 강단에 서려고 올 초 한국으로 돌아와‘거대한 공룡’과 싸움을 시작했다.

김씨는 전국의 대학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교수 10여명을 모아‘공정한 재판을 촉구하는 부당재임용 탈락 교수협의회’를 꾸렸고, 재임용 탈락 무효 소송을 냈다.

“연구 실적이 아무리 우수한 교수라도 재단에서 재임용을 하지 않으면 해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학교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새로 만든 법이 이미 억울하게 당한 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니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김씨는 7월18일부터 부당재임용 탈락 교수협의회 교수들과 함께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씨의 요구는 “억울하게 학교에서 쫓겨났으니 재임용될 수 있도록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다.“재판부가 상식을 갖춘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관점에서 재임용 문제에 접근하고, 공정한 재판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9월7일 1심 재판을 앞둔 김씨는 “대법원이 교원 재임용에 대해 적어도 양심 있는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하는 날까지 싸우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사진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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