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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양심 10년째 실종?

성균관대 맟서 복직투쟁 중인 김명호 교수...내부고발자 보호 않는 분위기에 경종


우리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변화의 화두는 개혁이다. 그 배경은 시대정신과 시대 흐름의 전환이다. 어떤 현상이든, 어떤 실체든, 어떤 사람이든 관계없이 그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아가려는' 게 변화의 결실이다. 그 결실이 크든, 작든 아니면 없든 상관없이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은 수 없이 많다. 그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해직교수들이다.

그들이 '제자리를 찾기' 위한 몸부림에는 늘 편견과 오해가 붙어다닌다. '오죽했으면 짤렸겠냐'는 왜곡된 시선이다. 경우에 따라서 이런 사시적 견해는 당사자의 이해 다툼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제3자의 '시선'과는 관계없이 해직교수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타의에 의해 학교를 떠났다는 결과는 동일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수없이 많다. 사학재단의 비리에 항거했거나 시국 사건과 관련되거나 학내 입시부정 폭로했거나 아니면 부정을 저질렀거나 무능하거나···. 그러나 부정을 저질렀다면 침묵하는, 무능했다면 체념하는 관성이 있다. 반면 '다시 그런 상황이 돌아온다면 해직 당시에 했던 것처럼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다. 그는 1996년 2월 29일 재임용에 탈락했다. 교수재임용제에 의해 '희생'된 것이다. 성균관대학 역사상 첫 사례다.

지난 6월 17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앙지방법원 동관 364-1호. 그곳에 소송당사자인 김 전 교수가 있었다. 이날은 재판의 첫단계라고 할 수 있는 변론기일준비일이었다. 법원이 본격적인 변론에 앞서 재판 절차 등에 대해 사전 점검을 하는 자리였다. 재판부와 피고 측과의 상견례도 겸한다. 소송을 제기한 입장에선 형식적 과정로 여길 수도 있는 절차였다. 하지만 김 전 교수의 심정은 복잡하게 얽혔다. 지난 1997년 12월 23일(대법원 판결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1995년 서울중앙지법에 부교수직 지위확인 소송을 냈다가 패배한 경험이 있다.

'괘씸죄' 걸려 재임용 탈락

"...재임용 심사과정에 원고가 주장하는 부당한 사유가 있었다 하여도....원고(김명호)의 부교수 임용 청약행위에 승낙을 할 지 여부가 피고 법인(성균관대)의 전적인 자유재량에 맡겨진 이상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이는 김 전 교수의 승진누락을 부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임용 기간이 만료된 교직원의 재임용 여부는 전적으로 학교의 재량권에 속한다'는 이유로 원고패소를 선언한 재판부의 판결문 요지다.

그가 부교수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은 해직결정이 나기 5개월 전의 일이다. 김 전교수는 1995년 10월 성균관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보기 좋게 패배한 후, 이듬해 2월, 새학기를 앞두고 학교측으로 부터 갑작스런 해직통고를 받았다. 부교수 승진탈락의 부당함을 입증하기는 커녕 오히려 화를 자초한 것이다.

김 전 교수는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10년 전에는 '부교수 지위확인 소송'이었고 올해는 '교수지위 확인소송'이다. 그가 다시 소송을 낸 까닭은 지난 1월 개정된 '사립학교법 및 교육공무원법'에 한가닥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 법률에는 '재임용이 거부된 교원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청구나 법원소송 제기도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에 연구논문 부실을 이유로 재임용에 탈락한 김민수 서울대 미대 교수가 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게 용기를 낸 또 다른 이유다. 가까운 주변에서는 "김명호의 경우는 김민수 교수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10년 전 김 전교수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95년 당시 성균관대 본고사 채점 위원이던 그는 채점 도중 100점 만점 중 15점 짜리 수학 문제가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총장에게 보고했다. 김 전교수는 "채점 도중 출제위원들도 문제의 오류를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 총장에게 보고하고 며칠이 지난 뒤 수학과 교수들이 그에 대한 징계요구서를 제출한 것이다. 결국 김 전 교수는 그 해 12월 징계위원원회 회부돼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러한 중징계는 김 전 교수의 해직에 직접적인 이유가 된다. 징계사유는 '해교행위'와 '논문 부적격'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재학생 본교진학 방해 ▲입학시험 채점시 배타적태도 ▲비교육적 언사 ▲수업없이 성적부과 ▲공개적인 타교수 비방 등이 '해교행위'로 지적됐다. 그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교육부에 징계재심을 청구하자 징계 수위는 '견책'으로 완화됐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재심판정이 있기 닷새 전 그는 해직 통고를 받았다.

김 전 교수는 "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수업을 했디" 면서 "그게 해교행위라면 인정하겠지만 논문 부적격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연구실적심사에서 부적격 판정 받은 논문이 미국의 권위있는 미국의 논문분류 기관인 SCI(과학논문 인용색인)에 등록되기도 했다. 전국 189명의 수학자들도 "이 정도의 연구실적으로 부교수 승진에 탈락했다면 국내수학자중에서 부교수로 승진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국제학계도 우려의 목소리

그러나 사태는 그 정도에서 머물지 않았다. 1996년 2월 한국 과학 기술원 교수들이 미국수학회에 '김명호 사건'을 알리면서 국제학계에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매스 인텔리전서'는 국제적인 수학자들의 연명으로 쓴 '정직의 대가(?)' 라는 제목의 편집자 편지를 통해 "불행하게도 수학적 오류에 책임 있는 고참 교수진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김 교수와의 싸움을 선택한 결과, 김 교수는 승진기회를 박탈당하고 재임용이라는 그물에 걸려있다"고 비판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잡지 '사이언스'도 역시 랜덤 샘플란에서 '김명호 사건'을 "시험문제 오류지적에 따른 엄청난 대가"라며 대학당국과 법원의 양식있는 결정을 촉구했다.

김 전 교수는 "이번 소송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면서 "10년 전의 일이지만 적어도 학자적 양심을 존중하는 판결이 내려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성균관대측은 여전히 "이미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해직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학당국이 선임한 이재원 변호사 (일신법무법인)는 "재임용 탈락이 위법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서 "이 사건은 단순히 교수재임용 문제만으로 다룰 수 없는 쟁점이 많은 사안이어서 구체적으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참조: 입증된 출제오류 지적의 보복)

한편 열린우리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내부고발자의 신변보호를 골자로 하는 '부패방지법 개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내부 고발 내용에 대한 최종 판정 전에는 내부고발자에 대해 어떠한 인사조치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일 이 법이 10년 전에 제정됐다면 김명호 전교수는 과연 해직됐을 것인가?

김경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