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덕성여대를 말한다


2001.5.11.금요일
딴지 교육우원회

박원국 복귀 이유

어떤 대학이 있다. 학교의 건물과 잔디밭, 꽃나무들까지 나무랄 데 없을 만큼 예쁘다. 건물들은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고 건물의 내부는 유명회사에서 디자인해서 거의 국내 최고라 할만하다.

학교 교정은 말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그런데 그 학교의 국문과 교수는 딸랑 두 명이다. 그런데 한명은 대학부속기관인 평생교육원 원장으로 부임했고 학교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몇 개월 뒤면 곧 정년 퇴임할 것이다. 그래서 당장 학생들을 지도할 교수는 단 한명!!

1 :120의 비율. 무슨 여배우 오디션 경쟁률이 아니다. 소팔고, 돼지팔아도 택도 없는 그 비싼 등록금 내고 다녀야 하는 대학교에, 학생 120명에, 교수 1명이라는 말씀이다. 당신이 이 학교 국문과의 학생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조용히 학교를 다니겠는가, 아니면 씨바 더는 못참겠다 라며 싸우겠는가. 그냥 다니겠다고? 우이씨, 어서 브라우저 오른쪽 상단의 닫기 버튼을 눌러라. 당신은 이 글을 읽을 자격이 없다.

잠깐!!! 닫기 버튼은 누르지 말고... "뒤로" 정도 누르면 되지 않겠냐? - 이상 딴지 편집부의 개입이었음.

축제기간 중 다음 학기에도 국문과 교수충원은 없다는 황당한 소문이 돈다. 그래서 이 국문과 학생들은 교수충원투쟁을 시작한다. 2000년 5월, 대동제 기간에 시작된 이 투쟁은 약 4개월동안 진행된다. 그러나 재단 이사회는 하와이에 가서 몰래 비밀이사회를 여는 등 지들 맘대로 개판이고 교수충원은 정말로 막막하다.

공부 좀 하게 해줘~

그동안 방학이 시작되고 이사장 직무대리는 다섯번의 면담요청에도 학생들을 만나주지 않는다. 결국 학생들은 여섯번째로 재단을 방문하여 땡깡을 부리고 이사장 직무대리의 아파트복도에서 소리통을 하고 난 후에야 이사장 직무대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개강 3일전까지도 교수채용은 결정되지 않고 마침내 좌절한 학생들은 총장실을 점거한다. 학생들은 총장과 교무처장이 비밀심사를 하는 롯데호텔을 덮치고 인사위원들이 회의를 하는 중국음식점 앞에서 피켓을 들고 눈물로 호소한다. 제발 공부하게 해달라고, 절규한다.

개강날 새벽 교수채용이 통보된다. 4개월을 끌어온 투쟁은 막을 내린다. 에이 씨발, 교수 두명 충원하기가 저렇게 어렵다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졸라 힘들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파란만장하다.  

저런 학교가 어딨냐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이것은 작년 1학기의 덕성여대 국어국문학과의 실제상황이었다. 국문과뿐 아니라 회계학과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으며 몇 개월에 걸친 교수충원투쟁을 벌인 후에야 교수가 충원될 수 있었다. 덕성여대 한 과당 교수수는 거의 세명 내외이다. 물론 두명, 한명인 과도 흔하며 심지어는 교수가 한명도 없는 과도 있다.

악덕 이사장 박원국이 그러는데 한 과당 교수가 세명 이상 필요하냐고 말했단다. 미친 놈 아닌가? 교수마다 전공이 다른데 초등학교도 아니고 무슨 담임선생인가? 교수들이 전공과목이 아닌 분야를 가르치는 일은 비일비재하며 심지어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교수가 사회과학 세미나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나머지 수업은 시간강사들로 채워지며 교수들의 지도를 받기란 매우 어렵다.

한때 짤렸다가 복귀한 박원국 이사장은 돌아온 후에 "나 없는 사이에 커리가 왜 이렇게 많아졌냐?"며, 보고하는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어이가 없어서...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황당한 울 학교 얘기 좀 들어바바바....
 

덕성여대

덕성여대는 한국 최초의 민족사학이다. 설립자는 민족독립운동가이신 차미리사 선생(1880-1955)이다. 이렇게 비장하게 시작되는 시기의 역사 뒤로는 의례히 총독부의 탄압이 있다. 어쩜 그렇게 어딜가나 빠지지 않고 따라붙는지 워낙에 공식화된 이야기 구조라 웬만하면 줄거리 대충 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덕성의 옛학명은 근화(槿花 - 무궁화)학원이었으나 총독부의 탄압으로 학명은 덕성으로 바뀌었고 학교는 친일파인 송금선 집안으로 넘어갔고 아들 박원국에게 모자세습되었다.

박원국 이사장 얘기를 하면 한이 없다. 일단 줄거리만 얘기하면, 그는 1997년 2월 26일 사학과 한상권 교수님를 부당하게 재임용 탈락시키는 등 교권을 유린하고 학습권을 침해하다가 덕성분규를 야기시켰고, 그들의 족벌체제와 학습권침해 부당한 재임용 탈락등에 분노한 덕성여대 학생들이 박원국 일가퇴진을 주장하며 장장 67일간에 걸친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그러자 교육부 특별감사가 이루어졌고 법원판결 결과 박원국 이사장은 146건의 부당한 학사행정개입이 밝혀져 10월 10일, 열흘만에 쫓겨났다.

아일 비 빽.....     

돌아오긴 왜 돌아오냐?
니가 무신 터미네이터냐? 세진 컴퓨터 랜드냐?

그러나 일명 박로비라 불리우는 박원국의 50억원에 가까운 본격적인 로비에 의해 재단에 많은 힘을 싣어주는 쪽으로 사립학교법은 개정이 되었고 박원국은 1월 교육부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하였고 개악된 사립학교법을 품에 안고 다시 덕성으로 돌아왔다.

97년에 박원국이 10일만에 이사장 승인 취소를 받았던 이유는 약 한달 전에 이미 교육부 감사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받고 시정조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간큰 박노인이 무려 3차례가 넘게 그것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복귀하게 된 이유는 마지막 시정명령을 내린 교육부가 시정기간인 15일이 되기도 전에 승인취소를 했던 것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박원국의 복귀

그 박원국이 다시 돌아오던 날을 기억한다. 2001년, 2월 15일, 그날은 30년만인가 40년만인가의 폭설로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인 날이었다. 인문사회대 강의실 안에서 과후배들과 대면식을 하고 있던 도중 박원국이 왔다는 말을 듣고 과친구들과 함께 뛰쳐나갔다. 허벅지까지 차오른 눈을 헤치고 달려가서 본 장면은 마치 김영삼 옹의 고대강연을 방불케 하였다.

정문인 행정동 앞에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무섭게 대치하고 있고 그 가운데 박원국이 서서 학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학생들은 박원국만은 한발짝도 덕성 안에 들어올 수 없다고 외치고 박원국은 꼭 학교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맞서고 있었다.

학생들은 몰려오고...

그러나 김영삼 옹 경우와는 좀 다른 점이 있었으니 첫째는 학생수보다 교직원이 더 많았다는 것, 둘째는 결국 학생들이 교직원들에게 뒤지게 맞는 사이에 박원국은 저지선을 뚫고 행정동 안에 들어갔다는 것, 셋째는 추위 속에 눈밭에서 세시간을 기다려 박원국이 집에 가는 것을 막은 학생들을 경찰들이 강제해산시켰다는 것이다.

나는 그날 분명히 보았다. 지금 현재 덕성의 총작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권순경 교수가 선배언니의 안경을 주먹으로 때려서 깨뜨리고 동기의 뒤통수를 우산으로 치는 것을, 그리고 평소에 학생들을 위한다며 수업시간마다 학생들 앞에서 위선적인 눈물을 흘리는 강모 교수가 쟤 때려, 쟤 때려 하며 교직원들을 사주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기야 이 강모 교수는 97년 학자투쟁 때 노동신문을 복사해 학생회실에 뿌리다 들킨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박원국은 학생들이 차에 매달려 있는데도 앞으로 나가게 해 학생들의 발을 차 바퀴에 깔리게까지 하였다. 눈밭에서 교직원들에게, 경찰에게 개 맞듯이 맞아 뒹굴어야 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씹탱구리, 그런 사람들이 교수인가. 교육자인가.

그리고 나서 개강하기 이틀전인 2월 28일, 다섯명의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 연구교수가 아닌 세분의 수업은 폐강을 시켰다. 그 세명은 채용된 지 1년밖에 안된 신임교수이고 모두 교수협의회 소속이었다. 내가 수강신청한 수업의 교수가 개강 이틀 전에 짤렸다.

나는 그 사실을 개강날 알았다. 연구교수가 아닌 세분의 수업은 폐강을 시켰다. 그 세명은 채용된 지 1년밖에 안된 신임교수이고 모두 교수협의회 소속이었다. 그 명분은 무엇일까?

"시보교수니까 수습사원과 같다, 아무 때나 잘라도 된다, 그리고 실력이 없었다, 내가 없는 동안 뽑힌 교수들은 다 실력이 의심된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 짤랐다." ....이게 박원국의 논리이다.

똥글뱅이 안에 달건이 옵빠덜이 보이는가!!

학습권? 학습권이라고 했냐?

무조건 짜르고 폐강시키고 보면서 무슨 학습권 운운하는가?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내가 수강신청한 수업의 교수가 개강 이틀 전에 짤렸다.

나는 그 사실을 개강날 알았다. 학교에서는 수강신청을 변경하라고 한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 과목들을 폐강을 시켰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텐가. 내가 꼭 듣고 싶었던 수업인데 어떻게 하는가.

결국 이 분노는 총궐기로 이어져 3월 29일 덕성여대 민주동산에는 총궐기 대회가 열렸고 약 2천명의 학우들이 총장실을 점거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점거과정에서 학교측이 행정동의 문을 모두 잠그고 용역깡패들을 배치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결국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는데 행정동 직원들과 용역깡패들은 합세하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학생들을 발로 밀치고 옷걸이로 사다리를 흔들고 암튼 거의 살인 미수에 가까운 행동을 저질렀다. 무슨 행주대첩이냐.. 못올라오게 사다리 흔들고 발로 까고, 돌 던지게…

여기서 잠깐
똥아일보 니네들 애정표현이 넘 지나친거 아니냐
?


덕성여대 총투표가 진행된 첫날 4월 16일 동아일보에서 취재를 나왔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뭐 어려운 것은 없냐고 친근하게 굴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인터뷰에 친절히 응해주었다. 그러나 다음날 17일 1면 "학내분규로 상아탑 멍든다!"를 제1면에 내보냈고 덕성여대 학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사는 완전히 재단측의 입장에서 쓰여졌으며 지금 문제는 몇몇 과격한 학생들에 의해서 선동되고 있다고 나왔다. 다른 신문들에서도 '멍드는 상아탑, 이대로 좋은가' 라는 기사들이 실리고 가장 어른의 구역인 총장실 점거 등의 행위는 순수한 학생들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식의 기사가 쓰여졌다. 경x 신문의 모기자는 총학측에 언론에 대한 박원국의 로비가 있었다고 알려왔다.

또한 동아일보는 이에 멈추지 않고 지난 4월 25일자 신문에서 '사학의 자율성과 학교법인의 고유권한을 부정하고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한다는 사설을 내보냈다. 이쯤 되면 너무 노골적으로 사립학교에 대해 애정표시를 하는게 아닌가!!
 

 

수업거부와 시험강행

그 후 두 차례의 비상총회와 총투표를 거쳐 수업거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4월 19일날, 학생들이 4·19마라톤을 뛰러 나간 사이 교직원들이 일요일에 시험보겠다는 공고를 붙였다. 뜀박질을 하고 돌아와 이를 보고 격분한 학생들이 행정동 1층을 점거하자 그때 술에 취해 있던 교직원들은 이것을 보고 꼭지가 돌았고 학생회와 교수협의회 교수님들이 세워놓은 천막농성장을 마구 부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수협의회 회장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야 신xx 개새끼! 너 이리 나와!  죽여버릴꺼야! "라고 상소리를 퍼부어댔다. 학생처 직원이 교수에게 거침없이 상소리를 해대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이게 어디 제대로 된 행태인가?

천막이 부숴지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 놀라 뛰쳐나와 그들을 가로막고 서자 교직원들은 이미 이성을 상실한 듯 천막농성장에서 나온 각목을 들고 목장갑을 끼고 학생들에게 휘둘렀고 여학생들을 마구 폭행하였다. 또한 땅에 밀쳐넘어진 학생을 질질 끌고가고 이것을 모두 찍는 학생의 카메라를  빼앗고 그 학생을 때리는 동물스런 난동을 부렸다. 이거 해도해도 넘하지 않는가.

4월 22일 일요일, 수업거부 투쟁으로 책상을 다 빼놓은 학교에서 시험을 볼 수 없게 되자 학교는 덕성여고에서 중간고사를 강행했다. 아무리 게릴라 마케팅이 유행이라고는 하나 게릴라 시험을 거기에 대입하다니 박원국의 응용력은 실로 대단하다. 학교의 모든 강의실이 폐쇄되어 있자 안국동에 있는 같은 재단의 덕성여자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평일도 아니고 남들 다 쉬는 일요일날, 멀쩡한 대학교를 놔두고 고등학교로 시험을 보러간다? 물론 아무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시험보기 전날 집집마다 전화해서 시험보러 오라고, 장소는 홈페이지에 설명되어 있다고 통보하는 학교. 도대체 어떻게 된 학교인가. 집에 없었으면 전화를 못 받았을 거고 시험 보는 것도 몰랐을 거다.

변종수 사무처장과 권순경 총장직무대리 열받은 학생들은 아침부터 교문을 막고 교직원들과 어용교수들의 덕성여고 출입을 막았다. 그러나, 이과정에서 결국 경찰과 의경이 투입되었고 여경들이 몰려와 앞줄에 있는 학생들부터 무자비하게 전경차에 집어넣었다. 단지 시험을 보지 말라고 외쳤을 뿐인데 학교측은 그런 학생들을 잡아가라고 공권력을 요청하였고 학생들이 두들겨맞고 속옷까지 다 보이며 바닥에서 질질 끌려갈 때 맞은편에서는 덕성여대 총장직무대리 권순경과 교무처 직원들 그리고 어용교수들은 팔짱을 끼고 엷은 웃음을 지으며 그 난리를 보고만 있었다...(오마이뉴스 사진: 변종수 사무처장과 권순경 총장직무대리)

닭장차를 타면서도 울면서 애원하는 친구들.

"여러분, 제발 시험보지 마세요. 제발 다 같이 치루지 말아요."

그러자 시험보러 온 학생들이 눈물을 훔치며 돌아선다.

"어떡해요, 쟤네들은 우리 때문에 닭장차 탄거에요."

아, 정말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80년대적 장면이다. 쓰불.

 

대체 이런 엽기적인 학교가....

나는 덕성여대 인문사회과학부 98학번이다. 인문사회과학부란 인문대, 사회대의 22개 전공을 통폐합, 750명을 입학정원으로 하는 대단위 학부제를 말한다. 미국에서는 보편화된 제도인지 모르겠으나 아무런 준비없이 실시된 학부제는 큰 혼란만 가져올 뿐이었다.

장점은 살리지 못한채 커리큘럼을 줄여 경제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방편일 뿐으로 보였으며 결국은 학생회와 학회의 붕괴, 학생통제로 이어졌다.나는 1학년 1학기에 500명짜리 교육학 개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대학 신입생에게 아주 큰 충격이었다.

500명짜리 수업 들어본 적 있는가? 97, 98년도에는 500명짜리 교양수업이 흔한 편이었다. 왜냐면 커리큘럼 자체도 부실했고 교수건 강사건 그 숫자가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대단위 학부제는 실시된 지 2년만에 많은 문제점들 때문에 소단위 학부제로 바뀌게 되었다. 97, 98학번은 실험실용 쥐새끼였다는 풍문만을 남긴채.

작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정치학과와 인류학과를 폐과시키고 연극영화과와 사회체육과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학생들의 수요가 없다고 신설된 지 3년 밖에 안된 전공을 자기들 맘대로 폐과시키는 것이다. 결국은 학생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백지화되었지만, 대학이 무슨 시장통도 아니고, 장사 안되니까 가판 거둬? 이거 완죤히 장사꾼 심보 까놓고 만천하에 밝히는 거다.

이 꼬라지라는 거다.

생각해보라. 언제든지 당신의 과가 폐과될 수 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곳이 덕성여대다.

나는 개인적으로 도서관 아르바이트생에게도 맞아본 적이 있다. 학생들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교수, 교직원들은 물론 청소하는 아저씨, 심지어 도서관 사서들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멱살 잡히는 일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심지어는 목도리로 목이 졸리기도 한다. 코믹하다 못해 환장할 일이다. 이거 완죤히 사람 죽일라고 작정한 놈들 아니면 목도리로 어케 목을 졸르냐? 이건 폭력조직인지 학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 씨발. 이젠 면역이 되서 아무렇지도 않다. 여기서 변모씨 그 인간 이야길 꼭 해야겠군. 그는 지금 사무처장인데 전직이 권투선수라는 소문답게 학생들을 정말 개패듯 팬다. 이건 폭력조직인지 학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작년 총장실 점거 때는 기획과장인지 뭔지 하는 인간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야!”라고 아주 당당하게 말하더니 이번 4.19 사태 때는 변종수란 인간이 “너희는 이용료를 내고 학교를 다니는 이용자일 뿐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 여기서 드러나지 않는가? 덕성여대의 학생들은 결국 박원국 땅투기할 돈을 대주는 존재 밖엔 되지 않았었던 것이다.

4월초 비상총회 이후 지금까지 덕성여대 학생의 집집마다 재단과 학교 당국의 명의로 거의 열통이 넘는(너무 많아 셀 수가 없다) 편지가 배달되었다. 편지의 내용은 “학생들은 미쳤고 빨갱이들인 한총련의 사주를 받았으니 어서 부모가 말려라!” 이게 그 내용이다. 아니, 내용이야 그렇다 치고 도대체 오천명에게 빠른 우편으로 보내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 걸까. 그 돈은 우리 등록금에서 나가는 게 아닐까. 심지어 일부교수들은 학생들이 학교 홈페이지에 글만 올려도 학생들을 불러 협박에 가까운 면담을 하며 글을 삭제하라고 강요했고 기숙사에서는 집회 때 사진을 대조하면서 해당 학생에게 경고도 주는 일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요새는 학교에서 밤마다 마술쑈가 벌어지는데 학생들이 빼서 대강의동에 쌓아놓은 책상이 아침마다 강의실에 넣어져 있는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용역을 불러서 마술쑈를 한 학교는 학생들에게 엄중 경고한다.

강의실 책걸상을 다시 빼내지 말 것, 책걸상은 수업을 원하는 학생들의 요구로 다시 들여놓았음, 책걸상을 1회 다시 들여놓는데 5백만원의 비용이 발생함, 대학 당국은 책걸상을 다시 들여놓을 것임, 만약 이를 방해하거나 다시 들어내는 행위가 발생할 경우 그 행위자에게 전액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임.”

흐미.. 신기하기도 해라.
이렇게 고생해서 빼놓으면 담날 마술처럼 원상복귀한다.

아니, 누가 5백만원이나 드는 용역을 쓰라고 했는가. 강의실 책상을 빼기 위해서는 덕성인 400여명의 4시간의 무임금 노동이 필요하다. 왜 이 노동은 무시하는가! 그 5백만원은 우리 등록금에서 나가는 것 아닌가?  
 

우리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 현재 덕성인들의 적을 셋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박원국으로 대표되는 악덕부패비리재단. 이건 뭐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그 다음이 교육부다. 제 기능을 못하고 사립학교와 학생들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교육부.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행정이 마비되야만 개입할 수 있다며 수수방관하는 게 과연 교육부가 취해야할 태도인가. 그 다음은 학내분규에 대해서 왜곡?편파보도를 일삼는 언론이다. 좃선일보도 안 하는 짓을 똥아일보가 하고 있다. 헐.  

사립재단 이사장들이 사학의 자율화를 내세우며 학교를 맘대로 뒤흔드는 동안, 교육부가 그 책임을 방기하는 동안,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는 동안, 똥아일보같은 형편없는 신문이 왜곡 편파보도를 하는 동안 그 학교에 다니는 몇천, 몇만의 학생들이 제대로 된 수업권을 지키지 못하고, 학교의 탄압 때문에 거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그들의 인생이 좌지우지되는지, 만민이여, 제발 깨달을지어다.

덕성여대생은 총 오천명이다. 집회 때 천명, 이천명이 거뜬히 모이는 힘. 물론 이것은 박원국이 재진입한 이후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원국은 사람 모으는데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집회 때 200명, 300명 모이던 숫자가 박원국이 돌아왔다니 천 단위가 넘어간다. 요새 어느 학교에서 집회 때 이런 숫자가 모이는가. 흔히들 덕성여대에 대해 독성여대, 혹은 극성여대라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별명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잘못된 것에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지성, 그 지성으로 떳떳하다.

원국과 그의 똘마니덜아!
이 대자보가 보이냐. 이제 그만 정신 좀 돌아와라!!

덕성여대 학생들은 현재 등교투쟁을 벌이고 있다. 수업은 듣지 않지만 학교에 나와 결의식을 가지고 외부 항의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수업거부에 반대하던 학생들까지도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측의 뒷골 땡기는 작태를 보고 투쟁의지를 보이고 나서고 있다. 삽질하는 그들에게 꽃집을 차리라고 정중히 권고하고 있으며 의약분업때 학생들에게 수업거부를 종용하던 권순경 총장직대가 지금 학생들에게 학생들의 소중한 권리인 수업권을 지키라는 말을 믿는 얼빠진 바보는 덕성에 없다.

타대학의 어떤 교수가 했다는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비리없는 학교는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해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덕성여대생들 뿐이다."

여자들이라고 해서 무시하지 말라. 온갖 탄압과 억압, 폭력이 더해질수록 덕성인들은 점점 더 용감해진다, 강해진다. 덕성은 아직 깨어있다. 누가 덕성에서 절망을 노래할 것인가. 덕성인들이 깨어있는 한, 싸우는 한 덕성뿐 아니라 모든 사립학교에는 희망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사립대학들이 상아파는 상점이 아닌 진정한 진리의 상아탑이 되기를! 나도 어서 수업받고 싶다. 승리의 그날을 위하여!  

덕성여대 98학번 Karma   (mailto:Karma33@unitel.co.kr
99학번 인류사랑(nado1004y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