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꾼 상춘식의 조폭껏 행패가 가능한 이유

박정희에게 똥개로 길들여진 대법원은 군부 정권에서 벗어나자마자, 국민으로부터 독립.... 몇몇 판사 개개인들과의 재판거래와는 급이 다른, 최초의 대규모 기획 거래를 87년경 사학재단연합과(이하 '사학재단') 체결. 그 결과물이 (박정희 똥개로 활약한 공로로 전두환 때 나란히 대법관에 임명된) 김달식, 이병후, 황선당이 위법하게 법률해석변경하여 만든 86다카2622, 그 이후 20여년간 400여명 교수 생매장 시킨 살인 판례다.
그 판례로 학교 임명권자에게 임용자를 지꼴리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생사여탈권'을 부여한 것. 그러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교원, 직원들이 상춘식한테 욕 처먹어 가면서도 설설기는 것.

좀 더 얘기하자면, 그 위법판례와 '사학연합과 대법원과의 재판거래' 가 박홍우 재판과정 중 드러났고, 그를 은폐하기 위한 박홍우의 거짓말, 이용훈의 허위공문서작성범죄, 검찰의 비호에 저항한 것이 석궁시위.
사건확대에 당황한 대법원이 '사학재단과의 재판거래' 은폐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단합대회 성격의 전국법원장회의를 열어 석궁사건 자체에 대한 조작결의하고 언론들의 협조하에 무자비한 조작과 재판테러 감행(* 법원이 조폭화되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이미 오래전에 법원+검찰+헌재=3위일체 범법단 형성).
석궁의거를 '테러'라며 돌대가리 국민들 속여 넘기고 '기획 재판거래' 계속하는 중...터진 것이 박근혜, 최순실 정치권과의 재판거래.


이 사회를 지배하는 3위일체 범법단
'의도적인 법 위반'에 의한 '입시 부정' 등 '사회정의 죽이기'
교육비리범들
부동산투기대상 사학
대도 이홍하
화장실 청소하는 교수
학교가 니꺼야?
학교가 니거였니?
박원국 덕성여대
부패한 대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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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비리몸통,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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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호: 드러난 법위반 테러 속내, 박홍우 범죄 비호
  • 증거조작 옹호하다 법정내에서 고발당한 이회기, 신태길
  • 양승태: 재임용 관련 위법논리 개발,  국헌문란의 재판거래
  • 김용담: 강제징용 관련 위법논리 개발 지시
  • 검찰, 헌재, 법원이 개발한 국민의 고소고발 원천봉쇄
  • 민일영, 김시철의 원세훈 무죄 공모, 김소영의 최민호 비호



  • [분노] 상문고등학교를 말한다

    2001.3.13.화요일
    딴지 참교육 위원회
     

    상문고는 94년 당시 교장 상춘식(이사장이 그의 부인 이우자)이 성적조작, 공금횡령으로 구속된 이후 99년 12월까지 관선이사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작년 12월 관선이사들의 임기가 끝나면서 당시 상춘식 교장의 오른팔이었던 장방언이 새 교장으로 부임하고, 상춘식 전 교장의 측근들을 중용하면서 다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장방언 교장은 교감으로 재직 중 내신성적 조작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었다.

    현재의 복잡한 분규 진행상황을 전하기보다는 문제의 근원인 상춘식 전 교장체제가 어떠했는지 알리는 게 더 좋을 것으로 사료되는 바, 두명의 상문 동문들의 글을 싣는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시라.

    남자들이 가끔 악몽을 꿀 때 나오는게 다시 군대가는 꿈이다. 난 그보다 다시 고등학교에 가는 꿈을 꿀 때 더 몸서리쳐진다. 누구에게나 고등학교 시절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억압받던 경험이 있겠지만 내 경우는 좀 특수하다. 상문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이다. 이젠 교사가 된 친구들과 교육문제에 대해 논쟁을 하다보면 내 의견은 극단적인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무시되기 일쑤다.

    그 상문고등학교가 지금 또 난리다. 돈 삥땅 쳐먹다가 쫓겨났던 '상춘식'이와 '이우자'가 지들 재산 되찾겠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미 재단 이사장으로 이우자가 돌아왔고 이사진도 상춘식 누나, 군대 고참 등 으로 짜여졌다. (감옥살이 할 거 했고, 삥땅친 거 갚았으니까 복귀해도 된다나… 개정된 사립학교법에 의하면 이게 옳단다) 거기에 성적조작을 책임지고 감옥갔다온 전 교감 장방X이 재단이 임명한 신임 교장으로 오면서 분규는 들끓기 시작했다. (지가 장세동인줄 아는 모양이다. 아님 조폭이든지)

    박사님.. 우덜이랑 같은 종인데요...

    상춘식을 경험한 사람은 그가 다시 교육현장에 나타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몸으로 안다. 그들은 단지 별하나 달린 정도가 아니다. 그걸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한다.

    (참고로 상문고등학교에 대해 기본 지식이 없는 사람을 위해 기초를 닦아주마. 딱 한번만 해줄거니까 기억 잘하기 바란다. 상문고등학교는 목천상씨 문중에서 69년에 설립한 학교다. 당시 설립자로 대표등기가 상헌(상춘식의 Father)이었고, 79년 죽은 후 학교는 상춘식이 꺼가 되었다. 이사장은 그의 부인인 이우자이다.)

    난 상문고 15회이다. 87년 3월에 입학해서 90년 2월에 졸업을 했다. 그 당시는 상춘식이 교장, 이우자가 이사장을, 장방X이 교감을 하던 시절이었다.

    학교에 배정을 받자 어머니께서 어디서 들으셨는지 훌륭한 교장이 있다는 곳이라며 좋아하셨다. 학부모 도움없이 자기 돈만으로 학교 운영하겠다고 육성회도 없는 학교라고 했다. 그런 꿈 같은 생각은 실제 고등학교에 들어간 지 며칠 안돼서 바로 깨졌다. 담임에게서 전화가 온 거다. 학교쪽에 기부 좀 해달라는 거다. 그것도 무려 30만원을. 반에서 성적과 재력을 기준으로 10명을 뽑아 전화를 한 거다. 집에서 좆나 고민했다. 그렇지만 불타는 교육열을 가지고 계시던 우리 부모님 허리띠 한 칸 줄이고 그 돈 바쳤다. 87년 물가임을 고려하기 바란다.

    학기초는 반 분위기가 그에 관해 싱숭생숭했다. "너네도 냈냐?" "니네 안내면 내가 반등수가 10등이 좀 넘는데 그럼 우리집으로도 전화오는거 아냐?" 뭐 이런 대화를 나누며 처음 만나는 급우들과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 나갔다. 당시 상문고는 3개 학년에 각20개 학급이 있었다. 300만 곱하기 60 해봐라. 일억팔천이다. 그리고 해마다 물가에 맞춰 단가도 올라갔다. 내가 3학년 때인 89년엔 두당 50만원으로 올라갔다. 육성회가 없었던 것은 그나마 육성회의 감독도 받지 않는 완벽한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 씨X넘이 이 돈을 삥땅 쳐먹었다는 것은 94년 교사들의 양심선언과 이후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94년 당시 검찰은 "86년부터 93년까지 학부모들로부터 거둬들인 찬조금중 학교조경사업비로 사용한 2억원을 제외한 15억1천8백만원과 보충수업비 6억4천7백만원 등 모두 21억6천5백만원을 횡령했다"고 발표했다.

    상춘식에게 학생은 돈다발로만 보인 셈이다. 진학지도도 돈을 벌긴 위한 사업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보였겠지...

    그러니 인성교육이란게 없었던게 당연하지 않겠나. 10여년 전 이야기니 대부분 다른 학교에서도 별 의미없는 학생회가 있던 시절이지만 상문의 경우는 이런 것도 극단적이었다. 학생회는 당연히 없었고 특별활동도 전혀 없었다. 모든 건 장부상으로만 존재했다. 당시엔 이중시간표가 있어서 국영수 중심의 실제 시간표와 교육청에 감사를 받는 짜가 시간표가 있었다. 자기가 어떤 특별활동을 하는지는 학년이 바뀔 때 성적표를 받아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학생회장이 누군지도 졸업앨범을 찍을 무렵이 되어서야 일반 반장 녀석이 자기보고 학생회장이라고 사진 두번 찍게 했다기에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동기끼리도 잘 모르는데 선후배 관계는 당연히 없었다.

    상춘식이 인간 말종임은 그의 눈밖에 벗어난 학생들을 어찌 대하는지를 보고 알 수 있다. 학교쪽에 반기를 든 학생에 대해서는 학적부에 표시를 해두고 증명서류 발급 등 이후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고3때 봄에 졸업생 선배들이 학교로 와서 데모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학교쪽에서는 마치 경찰들처럼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은 후 나중에 그 선배들의 명단을 학적부에 일일이 표시해 두었다고 한다. 다음해 대학가서 만난 선배 왈

    "외부장학금 받으려고 고등학교 성적증명서 떼러 갔더니
    학교쪽에서 너에겐 떼 줄 수 없다고 해서 결국 포기했다"

    나도 대학 1학년 때 해직교사의 소송을 위해 서명을 한 적이 있다. 그 명단도 학교로 넘어갔고 빨간 줄이 그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몇몇 친구가 학교를 인사차 찾아갔다가 그 명단탓에 정문에서부터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난 다시는 학교를 찾지 않았다. 그래도 나처럼 졸업한 후에, 그리고 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이 아닌 경우는 기분만 더럽지 별 문제 아닐 수 있다. 고등학교 다니다가 짤린 애중엔 다른 학교로 전학도 못 가게 서류를 도와주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말을 교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상춘식이 학생만 좃으로 본 게 아니다. 난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사회를 배웠고, 내가 저런 꼴을 당하고는 언제라도 사표를 쓸 수 있도록 준비하며 살자고 수차례 다짐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교훈은 내 삶에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어떤 일이 있었냐? 교무실에서 선생이 뺨맞고 있다는 이야기는 몇번 들었지만 아쉽게도 직접 본 적은 없다. 고3때 국어시간이었다. 수업중이었는데 갑자기 앞문이 열리고 선생 하나가 학생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애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그는 2학년 담임이었는데 자기반 아이가 3학년 선배에게 맞았다니까 그 범인을 잡겠다고 3학년 교실들을 수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범인은 우리반에 있었다. 애가 지목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폭행을 가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반 애를 복도로 끌고 나갔다. 수업하고 있었던 교사는 그걸 교단에서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맞는 거야 이골이 났던 시절이라 애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는데 그때 수업을 하던 선생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산다는게 뭔지 너무도 초라해보였다. 애를 끌고 나간 교사(이상X)는 공수부대 출신으로 일설에 의하면 태권도 특기생으로 대학을 갔는데 체대를 안가고 영어교사가 된 경우라고 했다. 그가 2학년땐가 첫수업에 들어와서 한 말은 기억하고 있다. "나, 공수부대 출신이다. 우리 아버지 부자다. 교장이랑 선후배 사이다. 개기지 마라"

    고3때는 옆반 담임이 학기 시작한 후에 좀 지나서 바뀐 일도 있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돈을 제대로 못 거둬서라고 했다. 그래도 그 선생은 사표 안 쓰고 그냥 평교사로 지냈다. 너무 안쓰러웠다.

    시위 당시의 모습..

    그 외에도 많다. 작년에 여의도에서 데모할 때 한 교사가 상춘식 시절의 치욕을 증언하기를 "학교 바로 옆에 재단소유의 골프연습장이 있는데 여기서 지 골프 연습할 때 수업이 비어있는 교사들을 불러다가 공을 줍게 시켰습니다"하며 울먹였다. 94년 당시 양심선언을 한 이상희 선생님은 "지난해(93년) 10월 찬조금 문제로 교장과 싸운후 귀가중 피습당했다"고 말했고 그 사건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상춘식이 골프장 코치를 시켜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게 내가 다닐때도 상춘식이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 지구당위원장을 골프장 코치로 하여금 폭행하도록 사주해서 신문에 난 적이 있었다. 물론 폭행의 이유는 돈문제였다.

    상춘식은 85년도에 자기 새끼들 불법과외를 하다 적발된 적도 있었다. 옛날에는 과외가 불법이었고, 사실 현직교사의 과외는 예나 지금이나 불법이다. 상춘식은 교사 셋을 불러서 과외를 시키다가 적발되었고 이 때문에 이사장인 여편네와 함께 파면-해임되었다가 해임처분취소청구소송에서 이겨 다음해 바로 복직하기도 했다. 물론 조폭의 의리답게 감방갔다온 교사 셋도 그대로 교사직을 유지하고 말이다. 나 학교 다닐 때는 "저 선생이 바로 그 과외하다 감옥갔다온 선생이라며"하며 수근거리곤 했다.

    이렇게 돈만 모았으니 당연히 집은 초호화판 아니겠나. 94년 당시 신문에 그가 삥땅친 돈으로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일부를 옮겨 적자면 다음과 같다.

    이날낮 압수수색을 당한 상교장 집은 대지 2백47평 연건평 1백48평의 지하 1층 지상2층 호화주택. 1층 거실은 대리석 바닥이었고 호화가구와 샹들리에로 장식되어 있었다. 각층을 연결하는 복도에는 카펫이 깔려있었고 10m길이의 샹들리에가 지하 1층에서 2층까지 복도가 난 공간을 관통하면서 매달려 있었다. 지하에는 20여평정도의 홈바가 있었는데 외제 양주등 고급술이 벽쪽에 가득 놓여 있었다. 홈바 밖에는 인공연못이 만들어져 있었다. 주민들은 상교장이 지하 홈바에서 유명인사들을 초청, 자주 연회를 연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상춘식은 현재 목천상씨 종친회에서도 제명당한 상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종친회에서 설립한 학교인데 이를 제 것인 것처럼 종중이 아닌 자기 아버지 상헌을 설립자로 무단등재한 것이다. 그래서 그를 사람들은 목천상씨라 안하고 방배상씨라 시조라고 부른단다.

    이외에도 내신성적조작, 국회에 돈봉투 뿌리기 등 못된 짓이란 골라서 하고 다녔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 신문에 났던 이야기만을 쓰자니 상춘식을 너무 미화하지 않았나 두렵다.

    그런 개새X가 다시 학교를 접수할 수 있다는게 합법적이라는게 말이 되냐, 씨바 당장 사립학교법 개정하고 비리재단은 학교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하란 말이다.

    덤: 상문에서나 있을법한 황당한 경험을 이야기 하나.

    일년에 한번 신체검사 시간이 있다. 다들 기억할거다. 전날 때 벗기고 와서 체중재고 키 재고 하는 것 말이다. 상문에는 특이한 신체검사 방식이 있었다. 치아 검사가 그것이다. 딴 건 몰라도 이건 보통 의사가 와서 한다. 나도 중학교 때는 의사가 와서 했다. 상문은 짝꿍이 했다. 먼저 각자 자기 신체검사표를 나눠 받는다. 다음엔 그걸 짝과 바꾼다. 그리고 서로 짝의 이빨 상태를 봐주고 몇 개 썩었는지 적어넣는다. 이러니 썩은 이빨수는 중학교때와 똑같던가 하나도 없다고 적을 수 밖에.
     



    앞부분은 본인 선배의 글이었고, 여기서부터 쓰는 본인은 상문 20기 졸업생이다.

    물론 엄청난 돈을 삥땅쳤다는 거, 그건 상춘식 교장의 씻을 수 없는 죄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정말 치졸하기 그지 없었다. 내가 고2때, 그러니까 93년 11월의 일이었다. 갑자기 전국 모의고사가 있다는 것이다. 순진한 우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그렇다니까 씨바 또 셤이군, 하면서도 응시료를 내고 모의고사를 보았다.

    그런데 1교시가 끝나자 흥분한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씨바 이거 문제집에 나온 거랑 문제가 다 똑같아.
    나 절라 다 맞았어 씨바!!"

    2교시도 3교시도, A 어쩌구 하는 문제집에 있는 문제랑 첨부터 끝까지 한 개도 안 틀린 셤이 나왔다. 당근 학교는 난리가 났다. 쉬는 시간에 답안지 베껴놓고 문제 외우고...

    셤이 다 끝나고 들어오신 담임선생님 정답을 나눠 주면서 왈,

    "집에 가서 답 맞춰봐."

    답안지를 제대로 걷지도 않고 걍 그걸로 끝이었다. 전국모의고사를 애써 긴장해서 보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전국 석차를 맞춰보고, 내가 희망하는 대학과 학과가 대충 어느정도인지 가늠해 보기 위한 게 아니던가? 그런데 그냥 집에가서 혼자 답 맞춰보고 점수 내라고 하고서는 끝이었던 것이다. 그럴 바에야 집에서 혼자 문제집 풀지 모하러 셤을 보나?

    몇몇 학생들이 알아본 결과, 모 모의고사 기관이 이미 그해 여름에 본 시험문제 남은 걸 학교에서 공짜로 얻어다가 애들한테 전국모의고사라고 돈 받고 치게 한 것이었다.

    열받은 학생들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찌라시를 제작 복사해서 각 반에 뿌리자 학교측의 본격적인 보복이 시작되었다. 복사비에 500원 보태준 애들까지 색출해서 엄청난 구타를 당한 것은 물론이고, 주동자 세명은 퇴학당하고 다른 학교로의 전학의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이 일로 학생들이 동요하자 학교측은 기말고사를 앞당기고 방학을 일찍 시작하는 것으로 유야무야 넘어가려 하였다. 그리고 학교측의 그 기도는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한 일부 교사들이 겨울동안 양심선언을 준비하여 터뜨리는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상춘식 교장은 공금횡령과 내신성적 조작으로 구속되었다.

    문제는 비단 이런 돈 문제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상춘식 교장 하에서 구타는 일상이었다. 선생마저 구타하는 판에 학생이 눈에 들어올 리가 있는가. 교사가 구타당한다는 건 소문으로만 들었지 목격한 적은 없는데 이런 일은 있었다. 교장이 교사를 어떻게 대하는지 잘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나 할까. 어떤 선생님이 교내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급발진을 해서 "붕~"하는 소리가 크게 난 적이 있었다. 문제는 마침 그때 상춘식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상춘식이는 차를 세우게 하더니 등교하던 학생들이 뻔히 쳐다보는 앞에서 그 교사의 뒤통수를 빡 때리면서 고함을 치는 것이었다.

    "야이 십새X야, 여기가 고속도로야?"

    학교의 상징은 교권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학교 다닐 때의 교권은 교장 상춘식이와 체육 교련 교사들에게만 있었다. 우리는 소지품 검사를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 멀쩡한 수업 도중에 체육 교련 교사들로 이루어진 검열단이 느닷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수업하는 선생님은 아랑곳없이 이들이 학생들을 교실 뒤에 서 있으라고 지시를 한다. 그리고는 책상과 가방을 이잡듯이 뒤지는 것이다. 개인의 사생활 침해도 침해지만 한참 열심히 수업하던 선생님의 권위는 도대체 뭐가 되는가?

    선생님들이 대접을 못 받을 정도니 학생들에 대한 구타는 이루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교문을 들어서면 "제발 오늘도 무사히"하는 마음 뿐이었고, 안 맞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집에 갔다. 그 위축된 심정은 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군대에 처음 들어간 훈련병들이 잔뜩 쫄아있는, 바로 그 분위기 속에서 애들은 주눅이 들어서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면서 살아갔다.

    방배동에 있는 학교의 체육복 교련복을 종로인가 명동인가에 가서 사라는 말도 안되는 명령 같은 건 사소한 것들 중 하나였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학교가 유지된 데에는 아무런 견제를 받지 못하게 되어 있는 사립학교법의 잘못이 크지만, 또 학부모들의 협조(?)도 컸다. 이유가 어쨌거나 소위 명문대 진학률이 높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그래 삼년만 고생해라, 그렇게 해서 좋은 대학 간다면 참아야 하지 않겠니, 라며 방조 내지는 협조했던 것이다.

    남들은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추억과 향수에 잠긴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고교시절은 회상하기 끔찍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딴지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한 번 묻고 싶다. 대입 성적 몇점과 젊은 날의 추억을 맞바꿀 수 있겠냐고. 우리의 잃어 버린, 아니 기억하기 싫은 학창시절은 어디 가서 보상을 받는다는 말인가.

    할말은 이 밖에도 정말 너무너무 많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서 섣불리 하기 힘든 이야기들도 많다.

    그리고 현재 상문고의 학내 분규도 양분된 교사들과 다른 학교로의 편입학을 원하는 학부모들, 갓 입학한 1학년과 기존 2,3학년들 사이에서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것을 다 거론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복잡하지만 문제는 단 한 가지다.

    상춘식이가 지배하던 체제, 상춘식이의 부인이자 재단이사장인 이우자, 상춘식이의 충실한 하수인 신임 장방X 교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모든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이며 우리의 모교 상문고등학교를 위한 길이다.

    열심히 싸우는 후배들이여, 힘 내기 바란다. 너희들 뒤엔 상춘식이의 만행을 기억하는 우리들이 있다. 너희들에게 그 기억까지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상문고등학교 동문
    15기
    Demographer Che ([email protected])
    20기 주민근([email protected])

     
    [교육]사립학교 탐구 보고서 2 : 단군 이래 최대 사학비리, 상문고


    학교로 돌아오려는 장방언 교장(전 교감)과 이를 저지하려는 교사, 학부모, 학생

    출처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