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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검사라는 이름으로 옳고 그름을 거꾸로 만드는
이정렬 같은 인간들에 대한 사회적 응징은 반드시 필요하다


더듬이 왕눈이 문재훈 홈 > 삶의 칼럼 > 문재훈

노동운동가. 현재 <서울남부노동법률상담센터> 소장 등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삶창> 편집위원, 센터 운영위원 등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펴낸 책으로 [삶창문고-노동] 시리즈의 『노동법』이 있습니다.

석궁 김명호 교수를 옹호한다.
2007·01·18 09:04 | HIT : 1,404 | VOTE : 89 |



우리는 이미 수많은 절망과 좌절을 보았다. 그 결과 무수한 분신 투신 음독 자살이라는 비참한 몸부림을 보고 또 얼마나 울었던가. 노무현 정권에서만 우리는 24명의 노동열사를 보내며 피눈물을 흘렸다. 절망의 비참함을 자학으로 돌리는 우리네 서글픔을 돌려 좌절과 절망을 응징으로 반전시키는 모습을 우리는 김 교수를 통해 본다. 그의 석궁이 그를 해고도 모자라 구속으로 몰고 가는 것을 이성으로 안타까워해도 오죽했으면 하는 마음속의 동조 감성은 또 얼마나 절절했던가?

오늘자 한겨레신문에 나온 판사의 말을 읽었다. 이정렬이라는 판사는 김교수의 문제제기가 옳고 그 옳은 문제제기로 인해 보복을 당했으며 그의 학자적 능력은 뛰어나다고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교수가 판결문을 읽어보기 전에 사고가 쳐서 재판부의 뜻을 알아주지 않아 안타깝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정렬 판사는 알까? 바로 그런 이판사의 말과 행동과 생각이 우리를 더 절망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노동자가 인사위(징계위)에 소환될 때는 달랑 취업규칙만 몇 조항 숫자만 전달된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취업규칙을 이전에 본적도 없다. 그래서 그 조항이 도대체 무얼 말하는지도 모른 채 출석해서 보면 그동안 시말서 경위서 또는 기억나지도 않는 것까지 엄청난 두께의 징계사유를 만나게 된다. 대부분은 결국 시키는 대로 말을 들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그를 위해 그동안 한 식구라면서 술잔께나 나누던 이들이 이 사람은 이래서 못됐다는 식의 증언들이 잔뜩 첨부된다. 십여명이 한명을 두고 집중 추궁을 하고 다른 이는 인정하고 선처를 부탁하면 잘 보아준다고 구슬린다. 그래서 쫓겨나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났다고 생각하고 인정하는 순간 이제 사측은 기세 등등 해고조치를 하고 그가 인정했다는 이유로 지노위 중노위 줄줄이 패하고 만다.

어떻게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이겨도 대법까지 2-3년, 복직도 어렵고 그동안 밀린 임금도 또 민사를 해야 한다. 복직을 해도 몇일 몇달 안가 또 해고, 이번에는 아예 함정을 파고 계략을 꾸며 해고하고 아예 회사와 송사가 많아 회사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며 억지를 부린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정은 한번 해고해서 복직됐으면 조신하게 말 잘 듣고 일해야지 또 말썽을 부려 해고나 당한다고 사회 회사 부적응자라고 해고가 정당하다고 한다. 이런 세월을 5년 이상 당하고 나면 도대체 그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정렬 판사는 이렇게 말한다. ‘김교수의 문제제기가 옳고 보복을 당했으며 학자로서 모욕을 받을 만큼 무능하지 않다고.. 하지만 복직은 안 된다’ 그 이유야 무성하지만 다른 이유라는 것이 사후에 덧붙여지는 것들이고 사후에 우월한 힘으로 조작되는 것들이다. 노동자가 있는 그대로를 밝혀 주는 진술서를 하나 받으려면 또 한 사람이 해고를 각오하고 나서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회사나 사용자 측은 이런 진술서를 하루면 전 사원에게 받을 수 있다. 세 사람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드는데 강약이 명확한 이런 관계에 대해 이를 살펴주는 재판관을 우리는 거의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판사의 이런 말 즉 억울함을 인정해 주는 전제 뒤에 붙은 ‘하지만’이라는 역접의 접속사가 아니라 ‘그래서’라는 인과의 접속사로 읽힌다. 문제제기가 옳기에 보복을 당했기에 복직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옳으면 무얼하고 정당하면 무얼한가. 결과는 잘못을 하고 보복을 해도 해고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인데.. 반면에 사용자는 잘못을 저지르고 이를 지적하는 이를 보복하고, 사람을 모독하고 매장해도 아무런 그야말로 아무런 책임도 심지어 죄의식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당당하게 법으로 보장해주는데..

지난번에 우리는 공단의 장투 사업장인 기륭전자에서 불법파견을 해도 계약직이라고 해고를 시켜도 법이 ‘합법해지’라고 판정하자 구사대들이 "정규직화 억지주장 법에서도 외면했다."라는 피켓을 들게 하는 것을 보며 이사회의 법 현실을 한탄 한 적이 있다. 잘못을 지적하고 정정을 요구하면 10년 동안 가정파탄 인생파탄 사회파탄을 감수해야 하고 이를 시정할 최후의 보루인 법정이 오히려 이런 파탄을 법으로 보장해 주는데 누가 어느 누가 악법도 법이라고 쉰소리를 하고 어느 누가 법정 권위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썩은내 풍기는 입방정을 떤단 말인가. 이런 판결 앞에 이제 용기를 가진 누가 있어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할 것인가. 이 비겁과 굴종과 기만이 가득한 사회의 수호자가 바로 이런 '옳아도 고통을 감수해라 아니 옳기에 핍박을 받아라'고 말하는 이정렬 판사 같은 부류의 행위인 것이다.

무슨 위원회의 뒤에서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는 이들, 판검사라는 이름으로 옳고 그름을 거꾸로 만드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응징은 반드시 필요하다. 판결로 말하는 판사가 그 판결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만이 이미 죽음에 이른 07년 신자유주의 대한민국, 자학에서 가학으로 나가는 폭발하는 절망의 대한민국을 최소한의 이성이 숨 쉬는 곳으로 돌려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