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이 욕하던 그 인간들과 다름없는 인간들
한글이 아까운 족속들 근성: 따라지, 패거리 - 이래서 세상은 변하기 힘들고 역사는 되풀이 한다

'친구란 나쁜 짓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 - 채영도
'석궁사건'은 한국사회 비리 부정에 대한 의거 - 중대 영문과 강내희
부산지검 학술대회, 석궁재판은 위법(국제신문, 2012.3.25)- 조현욱


이메일 한번 주고 받은 적 없었던 Michael AtiyahSerge Lang
성대입시 수학오류에 대하여 대한수학회명효철에게 학자적 자세를 촉구했다.
반면에 이 땅의 지식인들은 시사인의 김은남 편집장의 말마따나 '만만한 것에만 분노'할 줄 알았지.. 보다 나은 세상으로 변화시킬 추진력은 커녕 현실 문제에 대한 합리적 판단능력도 상실했다.

* 서울대 수학과 재학시절(1976-79),
학문에 대하여 막연한 명예욕만 충만했지 구체적인 탐구욕이 없었던 동기들은 실력없는 교수들을 술안주로 오징어 씹듯이 씹었다. 그 중에서도 선배들로부터 전해들은 전설적인 얘기들 등, 압도적으로 거론된 사람이 대한수학회 회장을 역임했던 박세희(* 대한수학회가 얼마나 형편없는 단체라는 것이 여기서도 입증).
실력이야 형편없는 교수가 많았으니, 그거야 그렇다쳐도 이 인간은 F학점으로 학생들 협박하는 등 인간성도 치졸하여 제정신인 학생들은 과목신청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헌데 어쩌랴, 박세희는 전공필수를 주로 맡았고 심지어 아무도 신청하지 않은 전공선택과목을 신청자가 많은 다른 과목과 막판에 바꿔치기하는 짓거리도 서슴지 않았다. 박세희와 과목 바꿔준 개새끼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순수한다는 수학과가 이 모양이니...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대와 고등과학원을 왔다갔다하며 강석진의 성추행이 수년간 지속하도록 그를 옹호한 수학교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중 하나가 예일대 동문 이인석(이기문 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 아들).

* 40년 가까이 지난 현재(2011-),
수학과 동기들(정원 20명) 중 약 반 이상이 교수질 하고 있고, 선후배들, 사회적 위치에 있는 고교 동기들... 박세희와 별 다름없다.
남의 눈치나 보고, 스스로 생각 판단하기 싫어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니들이 공자야?) 그러니 불합리한 일에 마주치면 오락가락하다 결국은 야합, 준비된 공범이란 말이다.

계승혁

서울대 수학과 교수, 중앙고 출신(김명환 동문). 수학과 동기
만만한 것에만 정의 찾고 정작 중요한 것에는 꼬리를 마는 전형적인 한국의 가방끈 긴 개만도 못한 인간새끼(참조: '왜 '만만한 것'에만 분노하나', 김은남, 시사인, 2011.3.31)

1996년 부교수 승진거부에 대한 재판(서울중앙지법 95가합96142, 부교수 지위확인)에서 수학과 교수들 189명의 서명을 주도했던 계승혁이 5.10일 법정 증언하였다. 증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교수가 지하철에서 하는 말이,.
“며칠 전 성대 이우영 교수로부터 전화왔는데, ‘YTN 정재훈 기자가 계승혁 교수를 인터뷰하러 간다고 들었다. 내가 이미 입시문제 오류를 인정했으니 이야기를 잘 해 달라’고 하더라. 참 이우영 교수도 답답해. 그걸 일단 무조건 부인했어야지. 인정하면 어떡해~”.

성대를 비난하며 서명 주도했던 인간이 할 소린가? 이 개만도 못한 인간새끼는 189명 교수들의 서명 목적을 깔고 뭉갰을 뿐만 아니라, 성대에게 버틸 수 있는 자신감과 면역력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 것.
당시에 이인석, 김현광, 이경호 등이 모여 의견서 초안을 작성하고 서명받는 작업을 하는 상황에서 계승혁으로서는 분위기상 꽁무니 뺄 수 없었을 던 거였고 실제로 전국 44개 189명의 수학 교수들의 서명을 받아내는 데에는 계승혁의 역할이 컸었다. 하지만, 막상 일이 진행되어 예상을 훨씬 넘는 교수들이 서명하니 계승혁은 그 기세를 꺾은 것이다.
1996년 당시 서울대 수학과 교수가 27명이었는데, 젊은 교수 9명(강정혁, 계승혁, 김창호, 김홍종, 신동우, 이인석, 조영현, 지동표, 최서영) 외에 나이든 교수들은 서명하지 않았다. 계승혁은 원로교수들의 눈치를 살핌과 동시에 이우영을 통해 성대를 안심시키는 짓을 한 것이다(참조: 계승혁 인간성 드러나는 수학교수 189명 서명서의 '추신'). 지동표 교수가 휴게실에서 김명호를 서울대에서 도와주어야 않겠냐고 했다는데, 다른 인간들 반응이 시원찮았단다. * 서울대의 묵인 없이는 성대가 본인을 쫒아내는 건 불가능.

만만한 정의에만 방방 뜬 계승혁 일화
1. 수학과 단체로 놀러갔다가 밥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계승혁이 먹는 밥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 여기저기 붙여놓은 '손님은 왕'이라는 글을 지적하면서 집요하게 주인에게 항의, 다른 동기들이 허겁지겁 먹고 나오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나와서도 한동안 그 밥집 욕을 하며 열을 냈다.
2. 술집에서 나온 밤 12 즈음, 길가 보도블록에 걸쳐 앉아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뒤에 있는 전기철물점 아저씨가 가게 청소한 구정물을 길가의 하수구로 내버린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아저씨가 만만했던지, 계승혁이 난리쳤다.

김명환

서울대 수학과 교수, 73학번, 계승혁의 중앙고 2년 선배.
Ohio State University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있다가 서울대로 옮김. 박세희 밑에서 논문 지도(?) 받으며 동기 서동엽(카이스트)과 함께 '마각 드러내라'는 등 수모 받았다고 한다. 오하이오에 3년간(1981.9-1984.8) 같이 있을 때, 도움 받았고 한인 유학생들 사회에 축구붐 일으킴. 서울대 자연대 학장 지내고 총장 선거에도 2번 출마. 2019년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성대 입시부정사건 당시, 법원의 사실조회 요청 받았던 대한수학회 총무이사로서 은폐 공범. 당연히 계승혁 주도하에 벌인 수학교수 서명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2019년 2월 간만에 만난 고대 물리과 교수에 의하면 성추행으로 감옥갔다온 강석진의 연구비 조사도 했는데,
강교수가 자주 강남 룸싸롱 들락거린 것이 확인되었고...
'혼자 갔겠냐'며 '축구, 술 좋아하는 선배 교수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겠느냐'는 거다. 연구비를 1년에 3억 정도 받았다고 하는데, 실험도 없는 수학 연구에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지...믿기지 않는 사실.

*얼키고 설킨 관계: 89년인가 90년 서울대 포스닥 시절, 강석진이 서울대 왔을 때, 강석진, 김명환과 같이 축구한 적 있음. 축구를 좋아한 본인은 깍두기지만, 강석진, 김명환은 자연대 대표선수급. 강석진 아버지 강신항은 성대 국문과 교수, 김명환 아버지도 성대 교수. 강신항은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씨 1대제자. 이희승씨 손자 이경호는 본인의 수학과 동기. 이인석은 이경호와 경기고 동기로서 축구부였고 강석진과 같은 예일대에서 학위 받았다. 그 아버지 이기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이희승씨 제자. 강신항과 이기문은 사형제간.

신성호

서울고 동기, 전 중앙일보 기자, 청와대 홍보특보
'판사 니들이 뭔데?' 중,
'중앙일보에서 오랫동안 법조 출입기자와 수석논설위원을 지냈다. 필자가 성대에서 입시출제 오류지적으로 해고될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아마 1995년 4,5월경), 가장 먼저 찾아가 상담한 기자가 당시 사회부 차장이었던 신성호이었다. 상당한 관심 갖고 듣더니 시간이 지나도 별무 소식이라 어떻게 되어가냐고 물어보니, 사회부 부장과 얘기한 결과 ‘입시 채점도 끝났고 좋은 일도 아닌데, 지난 일을 들추는 것이 사회 정의는 아니다”라고 하여 그냥 덮기로 했단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비교적 잘 아는 사이었기에 성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찾아갔더니 그 모양이었다. 그 10년 후, 2006년, 동기 모임에서 신성호를 만났는데 필자가 동기 홈페이지에 쓴 ‘조관행 판사 노릇 제대로 해라’에 대하여 언짢은 소리를 하기에, 한바탕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졸업 30주년(2005년) 동기 모임에서 신성호, 조관행 등이 공로상을 받았는데, 그 당시의 동기회장이 특허 전문 변호사인 진효근이었다. 조관행이 특허법원이 소재한 대전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로 있을 때, 진효근이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공로상을 준거. 끼리 끼리 논다고 조관행, 신성호, 진효근 등이 같이 어울리니 조관행을 비난하는 필자에게 신성호가 필자에게 반발한 것이었다'

조관행

서울고 동기, 전 서울고법 부장 판사
조언 좀 얻으려고 몇번 전화했는데, 얻는 거 없이 매번 기분이 언잖았고
잊을 수 없는 개소리, '법원은 괘씸죄를 인정할 수 있다'...

감옥 갔다와서는 동기회장까지 했다. 본인은 동기 홈페이지 글쓰기 금지당했고... 동기회가 삭힌 홍어처럼 푹~ 썩었다...
서울고 27회 부패인사들
1. 삼성한테 국민연금 바친 문형표(보건복지부 장관)
2. 이한주(도가니 재판장)
3. 진효근
4. 아들 성적조작의 정병욱(검사)
5. 서명수(전 서울고법부장 판사)

최수현

서울고 동기, 행정고시 출신으로 전 금융감독원 원장

1. 재정경제부 시절
당시의 동기회장 백철호에게 도움을 청하니 최수현에게 얘기해 보자며 안중진의 상가집에 가잔다. 거기서 만난 동기들이(포항공대 교수 허종, 치과 의사 백철호, 안중진, 함병도 그리고 최수현 등) 이런저런 얘기 끝에 공무원의 복지부동과 부패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대번에 최수현이 '우리 공무원이 국민들을 위하여 얼마나 고민하며 애쓰고 있는 데 무슨 불만이 있냐?'고(* 국민의 종놈인 공무원들이 국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태) 강력 반발하였고, 함병도가 '하긴 개뿔? 한다는 것이 고작 그 모양이냐?'라고 반박하니, 최수현이 마시고 있던 맥주 깡통을 내 던졌다.

2. 청와대 민원실 근무
상가집에서의 만남 이후, 아무런 소식이 없던 최수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새로 전보온)청와대 민원실에서 성균관대학의 입시부정 및 위법한 해고행위에 대하여 니가 제출한 서류를 읽어 보았는데, 이게 사실이냐?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냐? 증거가 확실한 이런 사건을 법원에서는 성대에게 뭐라고 했냐?'한다.
상가 집에서 준 서류들 보라고 하니, 없다며 팩스로 넣어달랜다. 보내 주었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하여, 며칠 후 전화
본인: "어떻게 되었냐?"
최수현: "응. 내부종결하기로 했어"(* 청와대 민원실의 팔밀이 + 내부종결)
이런 개만도 못한 인간새끼가 2015년 이후 국민대학교 경영대학 석좌교수란다

* 이 땅에 일상화된 작태: 직무 유기... 법원에 팔밀이(* 서울중앙지검 수사관, 검사 대리)
'법원 판결을 기다리겠다'... 자주 듣는 개소리 아닌가?
死法獨裁 대법원의 판례만 달달 외운 년놈들이 뭘 안다고 그들에게 모든 분야의 판단을 맡긴다는 말인가?
조센징들의 이런 비겁함이 사법독재 대법원에게 힘을 준다.

홍준형

서울고 동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 고생을 했지만, 시험보는 재주는 뛰어나 서울 법대를 나왔다.
자신의 정체성 파악 못한 반도 땅 인간들이 그렇듯이, 한때 사회정의 위한다며 인권 변호사라는 것들,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과 접촉해온 모양이었다.
1996년 5월
1. 부교수 지위확인 소송 변호사로 이석태를 소개해 주었는데, 교수 서명서 등 유리한 증거물 가지고도 판사 장준철에게 '고양이 앞에 쥐새끼'처럼 말 한번 제대로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 변호사 구도일이 더 큰소리. 소위 민주 변호사라는 것들이 쓰레기라는 걸 알게 됨. 노무현 시절 공직기강 비서관인가 뭔가 해처먹더니 2018년 현재 헌법재판관으로 제대로 개판치고 있다.
2. 성대입시부정에 대하여 경실련에 알리라며 경실련에 전화해주었다.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의 여직원이 사건을 맡아 열성적으로 성대 수학과에게 사실확인 하는 등 성대 수학과 교수들을 안절부절하게 만들었는데, 본인이 잠시 서울에 없는 사이에 이 인간들이 경실련에 떼로 몰려가 수학문제에 오류가 없다며 공개토론회를 열자고 제의했단다.
돌아온 본인이 당장 하자고 했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고 뭉갰다. 어찌되었건 경실련의 도움을 제대로 받아 보나 싶었는데 얼마 후부터 수시로 진행상황을 알려주던 그 여직원의 연락이 뜸해지는게 아닌가? 알아보니, 그 직원의 근무부서가 바뀐 것. 결국 그 후임 남자직원이 심드렁하게 일을 하더니만 경실련의 개입은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그 당시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 사무국장이 양대석, 그 유명한 '김현철 비디오 사건'에 연루된 그 양대석이 끼어 있었으니...
더 기막힌 것은 초기에 ‘성대 놈들 나쁜 놈들이라며 혼내주어야 한다’고 흥분했던 홍준형도 점차 태도가 변하더니, 필자에게 ‘너, 왜 그렇게 사니?
경실련에 도움 청한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었고 사회가 속속들이 썩었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

이현구
김혁

서울대 수학교수들
전공은 topology. 이현구는 서울고 선배이자 Raymond 제자인 김순규(?) 교수로부터 학위 받아 본인의 사질(서울대 그만두고 '수학정석'의 홍성대가 만든 상산고 교장으로 은퇴). 김혁은 경기고 출신으로 미시건에서 Raymond한테 학위를 받아 본인의 사형. 사문과 달리, 수학과 서열은 이현구>김혁>나, 마당발로 알려진 이현구는 인사관리 및 행정에 재능을 발휘하고 김혁은 학문적인 면을 보좌하고 있었다.

1989년 취업하려고 미국에서 지인들에게 접촉했었다. 같은 전공이었지만, 학교때 강의 한번 들은 적 없었기에 이현구에게 하지 않고 김종식 교수에게 접촉했는데 완전 헛다리 짚은 거, 똥 밟은 거지. 하여 이래저래 오래전 선배 김종식에게 갈굼 당했다는 이현구에게, '물건이 다르다, 누구 밑에 있을 놈이 아니다'며 한동안 찬밥 취급 받았지만, 조언 및 성대 취직 등 실질적인 도움 받음.
90-91년 서울대 세미나 했다하면 파장할 때까지 셋이서 술마심. 세미나는 물론 학생들 지도를 원했으나,

1. Raymond와도 갈등 겪은 문제였는데, topology로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았고
2. 정치적인 서울대보다는 성대가 유유자적한 삶에 더 좋을 거라 생각하고 은근(?) 거절

'김혁이 포기했다'며 이현구가 설득에 나섰고 술 마시며 얘기 끝에 '그릇이 작다. 너랑 더 이상 얘기 안하겠다'... 1-2년 후 대타로 경북대 최서영을 데려옴. 학부를 미국에서 다닌 최교수가 버티기 힘들었는지 카이스트로 옮김.

이현구의 한계:
95년도 수학입시 오류 발견 후, 이현구 교수에게 전화. '총장이나 교무처장 참석한 회의를 열어 결정되면 그에 따르면 된다'고 조언 받음. 헌데, 당시 장을병 총장은 학교에 없어 교무처장 고상룡에게 얘기했더니 조폭마냥 '나는 모르는 일이니, 수학과 선에서 해결해라'...
단순오류문제를 '사기채점기준'으로 확실한 입시부정범죄를 저지른 후,
정봉화 중심으로 똘똘 뭉친 성대 수학과 교수들이 교학처장 원동호와 전몽각 부총장을 통해 야간 교육대학원으로 적을 옮기라는 터무니 없는 제안을 했다. 그런지 얼마 후 이현구 교수로부터 전화, '야간 교육대학원으로 옮기면 그 다음 도움을 주겠다'함. 당연 거절.



교수로 취업하기까지 - 교수 채용, 똘마니 확보

교수되기 위해 공부한 건 아니지만, 학위 받고 나니 학교 취업이 가장 만만. 미국에서 한국 들어오기 몇달 전, 서울대 교수들 두어명에게 편지하고 동문들에게 비빔. 숙기는 없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수학과에 기웃기웃하며, 같은 topology 전공의 이현구(Raymond 제자의 제자, 본인의 사질이며 서울고 선배), 김혁(본인 사형) 교수와 접촉.
본인의 이력: 1989년 당시 topology 전공지원자들 중 논문과 학벌이(서울대, Univ of Michigan 수학과) 가장 좋았음. 학부학점 2.5/4.3(* 박세희 같은 인간에게 성적 잘 받은 것이 자랑스런 일이 결코 아님), 헌데 붙임성 없는 것 빼고는 욕먹을 짓 한 것도 없는데, 평판은 별로란다, 인사성이 없다나 뭐라나.

1. 홍익대
수학 교양과정 교수 채용 공고 났는지도 몰랐다가, 김홍종 교수 소개로 수학과 선배인 홍대 변동수 교수를 학회에서 만남. 원서를 내고 변선배와 술도 한잔했다, 허심탄회하게. 허지만 결과는 김종식 교수의 제자인 서울사대 출신 여자애가 채용됨. 변선배 말로는 인사위원회에서 어떤 교수놈이 '학부 성적이 나쁘다'며 총장에게 트집 잡았단다.(* 후진 서울대 학부 때 달달 외우던가 얍삽한 인간들처럼 열심히 커닝하던지 해서라도 학점관리하지 않았더니...) 얼마 후, 지나가다 만난 김종식 교수가 몇가지 물어보더니 '명호는 백점이네, 걱정마'.... 젠장, 그러고 성대에 취직하기까지 1년반을(1989.9-1991.2) 놀았다. 당시에 서울대 수학과 출신으로 최장 백수생활 기록(* 몇년간 깨지지 않음).

2. 세종대
원서 내고나니...소문이 서울고 출신이라 가망없다고 한다.
당시 세종대 이사장 주명건이 서울고 출신. 얼마간 서울고 선후배를 채용했는데, 전공도 다른 과에 서울고 출신을 집어넣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고. 헌데, 주명건이 워낙 개판으로 학교를 주물럭대니 교수들이 반기 들었고 그 앞장선 주동교수들이 서울고 출신. 성찰 부족한 인간이 그렇듯이, 자신의 행위는 생각지 않고 남탓만. 배은망덕한 서울고 출신은 절대 안 뽑는다고 공언.
재밌는 건, 수학과 학과장이 주명건의 충복으로 소문난 서울고 선배 박흥식. 위에 언급했듯이 최선의 후보에다 이현구 교수의 은근한 부탁도 있었으니, 이사장 뜻을 거스릴 수 없어 고민하던 박선배가 집으로 불러 서울여대에 원서 내라며 생물인가 약대교수 누구를 만나란다.(* 박선배 부인이 서울여대 교수) 서울여대가 여학생 학교라 원서낼 생각이 없었지만, 선배들 눈치봐야 하는 아쉬운 놈이 어쩔수 있나? 시키는 대로 해야지. 결과: 그 해에 세종대 수학과는 충원하지 않기로 했다.

3. 서울여대
세종대 박선배의 권유에 마지못해 덜렁 원서 냈다. 며칠 후, 수학과 후배인 수원대 정운갑으로부터(* 이사장에게 찍혀 3년인가 몇년 후 부당해고됨) 연락왔다. 서울여대 수학과에 교수가 딱 1명, 여자 교수인데, 자기가 아는 그 교수한테서 연락왔다고. '11명인가가 지원했는데, 제일 먼저 원서낸 본인만 제외하고 모두 자기한테 인사했다'며 한번 보자는 거다. '면접하는 것도 아니고 뭘 보냐'했더니 정교수가 '어허 사람 사는 게 그런 게 아냐. 가봐~' 그래서 그 먼 서울여대까지 덜렁덜렁 갔다왔다. 그리고 먼저인지 나중인지 세종대 박흥식 교수가 언급한 생물과(?) 교수도 보고.
그리고 교무과인지에서 전화가 오더니, 교회 다닌다는 증서가 필요하다나? 교회 안 다닌다고 하니, 필수라며 예전에 종교 구별없이 뽑아놨더니 이 교수 병신년놈들인지 새끼들이 종교 전쟁인지 대판 쌈질을 했다나. 그 이후로 서울여대 전통대로 교회신자만 뽑기로 했다며 아무 교회가서 목사한테 부탁하면 가짜 신자인증서를 써 준단다. 아~ 그래도 고민되어 서울대 동기 이인석에게 얘기했더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무조건 해야지'라며 막 야단친다, 얘기한 사람 민망하게시리. 여하튼 묘한 마음 상하면서 어찌어찌 마련해서 제출. 결과: 누가 채용되었는지 모르지만 떨어짐.

4. 충남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형제들 고향이 충남 아산이라 가고 싶었던 대학. 대전 카이스트 수학과 세미나 연사한다는 핑계삼아 친구 한상근 통해 충남대 방문. 주진구, 전길웅, 부덕훈(제주대 출신, 대학원 동기) 등 몇 교수들과 실속없는 얘기 주절주절. 그런 자리라는 게 아주 불편하다. 학문한다는 교수라는 것들이 뭐~ 연구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실수할까봐 조심하며 그야말로 아무짝에 쓸모없는 말소모만 하다 보면 쓰레기 통속에서 뒹굴다 나온 느낌.
반응이 시큰둥해 기대하지 않았다. 헌데 몇 달 후, 이현구 교수가 충남대에 다시 한번 가보란다(* 주진구 교수는 이현구의 대학선배고 같은 topology 전공으로 아주 친함. 술 좋아해서 후배 교수들과 자주 술 회동했다고 하고 심지어 '떼씹하러 가자'고 까지 했다는 얘기를 김명환으로부터 들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름). 가서 또 비비적. topology 공고 나왔고 원서냈다.
돌아가는 상황을 부덕훈 교수가 알려준다. 교수회의가 몇 번 열렸는데, 주진구파가 추천했지만 전길웅파가 반대하여 대판 싸우고 재떨이가 날아갔대나(?). 결국 나가리.(* 이 엿같은 교수사회가 웃기는 게, 대부분의 경우, 공산당처럼 다수결 원칙없이 만장일치이어야 한다. 둥글둥글하게 보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채용된 후, 개판을 치든 말든)
나중에 카이스트 배성한 말에 의하면, 전길웅이 이화여고 선생할 때, 배성한의 옆지기(강병련, Univ of Penn 미분기하)가 전길웅 제자여서 충남대에 내정되어 있었는데, 본인 때문에 산통 깨진 거란다. 그리고 1-2년 뒤 결국 강병련씨가 충남대 갔다.

5. 제주대, 성화대(문선명),(선후가 분명치 않음)
충남대 떨어지고 '시발 좆같은 인간들'하며 실의에 빠져있는데, 제주대 자리 생겼다며 김성기 교수가(이현구, 정재명 부부와 동기. 그 옛날에 그 3명이 동시에 수학과에 임용되어 말이 많았다고) 추천하길래 '에라, 모르겠다'며 원서냈다. 학회에 가서 제주대 교수들과 만났는데, 대체로 괜찮았는데 한 교수가 좀 틱틱거렸던 기억남. 헌데, 이현구 교수가 부르더니 제주대 보류하란다. 김성기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취소.
성화대는 신문에 광고보고 내다. 채용되었다고 통지왔다. 학교에서 신임교수 모임있다고 하여 2-3번 간 기억. 학장인지 총장 후보자가(서울대 물리학과 출신) 회의 등을 주도. 기억나는 건....화학과 교수가 임용 등 절차에 대해 따져 물었었는데, 두리뭉실 엉성하고 학교답지 않은 불안정한 느낌. 2020년 현재는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있지만, 당시 1990년에는 희귀한 외국인 학생들이 있었음. 사표냄.

6. 성균관대(1991년 3월 임용)
공고 나기 전인가? 이현구 소개로 성대 정봉화와 3이 만나 저녁 겸 술 마심. 정봉화는 이현구보다 나이가 위고 정봉화는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이현구는 '정형'이라고 불렀음. 서울대 이일해 교수가 성대에서 가르칠 때 학생이었고, 정봉화가 이일해하면 꺼뻑 죽는다고. 성대에서 서열 5위 안에 드는 실세였다. 그런 사람과 만나 용인받았으니 일사천리 통과. 그랬다가 수학과를 자신의 나와바리로 생각하는 정봉화와 인사문제로 대판 싸우고 성대에서 쫓겨남.
고교동기인 성대 고분자 공학과 교수 김진환 왈, '넌 그냥 수학과의 장식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