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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특집 > 초점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1월26일 제645호
“항소기각은 사형선고였다”

김명호 전 교수가 대학에서 쫓겨나 ‘석궁 의거’를 일으키기까지 10년 추적…재임용 탈락은 입시출제 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 100% 승소 확신했으나…

현직 부장판사, 박홍우를 석궁으로 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지난 1월17일 구속 수감됐다. 그동안 <한겨레21>은 “수학자는 왜 싸우는가”(2005년 9월6일치)까지 학문적 양심의 대가로 대학에서 쫓겨나 수난을 겪고 있는 김 전 교수 관련 기사를 모두 세 차례 걸쳐 실었다. 구속영장실질심사 담당 판사는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재판 결과에 앙심을 품은 보복 범죄로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했다. 하지만 김 전 교수는 살인미수 혐의를 완강히 부정하며 ‘사법정의’와 ‘국민저항권’을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낸 것일까. 김 전 교수 관련 취재와 홈페이지 문서, 접견 때의 발언, 주변 사람들의 증언 등을 기초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사건 10년을 재구성했다. 편집자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지난 1월15일 오후 6시30분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2층 계단에 있던 김명호 전 교수는 감정이 복받친 상태였다. 그는 이날도 어김없이 아침 7시20분쯤 작은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배낭에는 대법원 규탄 1인시위용 피켓을 목에 걸려고 쓰기 편하게 잘라놓은 노끈과 오는 1월27일 이사를 하기 위해 구입한 칼도 있었다. 김 전 교수는 나중에 “당시 칼과 노끈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했다. 1인시위를 마친 뒤 대법원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사건의 고발인으로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법원 홈페이지를 통해 ‘항소 기각’ 결정이 내려진 사실을 확인했다. 법원으로부터 연락이 없는 게 ‘좋은 결과’의 징조일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

한동안 충격에 빠져 있던 김 전 교수는 대학 교수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전 교수를 위로하던 친구는 “저녁에 술이나 한잔 마시자”고 제안했고, 김 전 교수는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법원의 비리는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신념 속에서 고민하던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고 한다. ‘법원의 조직적인 성대 입시 부정사건 은폐공작’이라는 한 쪽 분량의 모식도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날 오후 4시47분에 보낸 메일에는 자신의 홈페이지(seokgung.org/etc/corrupt2.htm)만 링크했을 뿐이다. 적어도 작성에 서너 시간은 소요됐을 만큼 재판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자료였다.


△ 법원은 학문적 양심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2005년 여름 대법원 정문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박홍우 판사가 허위 증언 방조한다”

이날 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김 전 교수가 판사의 아파트로 갔을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없었다. 법원 판결에 대한 생각을 전혀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집에서 나온 김 전 교수는 교원지위확인소송 항소심 재판을 맡았던 박홍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거주하는 아파트로 향했다. 이때 김 전 교수의 손에는 위협용으로 들고 간 석궁이 있었다. 갑작스레 박 판사와 마주친 김 전 교수는 석궁을 들고 내려가면서 “항소 기각 이유가 뭐요”라고 반복해서 물었다. 마주친 박 판사가 가방으로 활을 막고, 김 전 교수는 활로 가방을 밀치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던 중 박 판사가 활대를 잡은 상황에서 활이 날아가는 사태가 빚어졌다고 김 전 교수는 주장했다.

그렇다면 김 전 교수가 박 부장판사의 집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2심 재판부의 항소 기각 결정은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라는 게 김 전 교수의 주장이다. 그것도 “이길 것으로 100% 확신”한 상태여서 기각 결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박 판사를 ‘위협’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이에 대한 김 전 교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는 오래 전 “국민이 판사에게 사사로운 감정에 의하지 않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것을 기대하며 위임한 권한을 법을 위반하며 판단을 내린다면 자기 권리를 지키려고 ‘국민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글을 남겼다.

이런 생각은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김 전 교수는 지난해 12월22일 7개월여 만에 마지막 변론을 위해 법정에 들어섰다. 이날 변론을 마친 김 전 교수는 “박 부장판사가 ‘성균관대 대리인’”이라는 심증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김 전 교수는 박 부장판사의 ‘구실’에 대해 “제출된 증거 서류를 훑어본 듯하나 준비서면은 읽어보지 않고, 원고의 이의제기에 대한 답변을 거부하고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진술을 방해하거나 위법적인 증인 신문을 강행해 허위 증언을 방조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자신이 신청한 변론 녹음·각하·항고·구문권 등은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피고인 성균관대가 제기한 신청 사항은 대부분 받아들였다고 믿은 탓이었다.

* 양아치 법조 패거리 근성이 죽인 '정의'


'부러진 화살' 영화에서 역할: 문성근(김용호, 신태길 합친 역), 이경영(중간에 사표쓴 이회기), 박원상(박훈), 김지호(서형, 연합뉴스 장재은), 김응수(박홍우), 박수일(검사: 백재명, 신동국, 박혜경)
  • 법 위반 테러 속내를 보인 김용호
  • 박홍우 범죄 방패막이, 김용호
  • 법정내에서 고발당한 이회기, 신태길
  • 신태길의 개판 위법 재판에 조남숙씨 계란 투척



  • △ 김명호 전 교수가 박홍우 부장판사를 만날 때 가져간 석궁. 김 전 교수는 ‘위협용’이었다고 주장한다. 조작된 부러지지 않은 멀쩡한 화살들(사진/ 연합:)

    대법원 판례 변경의 문제가 사건의 핵심

    사실 김 전 교수의 분노가 부장판사만 향한 것은 아니었다. 김 전 교수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지금껏 재판을 진행했다. 법원이 소송 당사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등의 배려가 없는 상황에서 변호사도 예외일 수 없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그동안 김 전 교수가 얼마나 세밀하게 변론을 준비했는지는 그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 전 교수는 1년10개월에 걸친 소송을 진행하면서 사법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피부로 느꼈다. “1심 판사는 2심 판사에게, 2심 판사는 대법관에게 책임을 미룬다”면서 “엉터리 판결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법원”이라고 성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김 전 교수가 법원에 한 가닥 기대를 했던 게 잘못인지 모른다. 지난 2005년 3월 당시 가족과 함께 미국에 있던 김 전 교수는 지인을 통해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교수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두 달 전 개정된 ‘사립학교법 및 교육공무원법’에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곧바로 혼자 귀국해 소송을 진행하면서 7월 중순부터 사건 당일에 이르기까지 대법원 청사 앞에서 ‘공정한 재판을 촉구하는 부당 재임용 탈락 교수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1인시위를 벌였다. ‘대법원의 재임용법 해석의 문제점’을 밝힌 책자를 만들어 온·오프라인에 배포하기도 했다.

    최근까지 김 전 교수가 지적한 사건의 쟁점은 재임용법 해석의 문제다. 이는 ‘재임용 관련 사립학교법 해석’에 관한 대법원 판례가 바뀐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의문을 뜻한다. 김 전 교수는 1996년 자신에게 적용된 ‘임기가 만료되면 교수 직위를 상실하고 재임용은 학교의 재량이다’(1987)는 대법원 판결이 절차상의 오류가 있다고 정확하게 지적한다. 이전의 ‘대학교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재임용되어야 한다고 보여진다’(1977)는 법률 해석을 변경하는 과정이 “전원합의체를 거치지 않아 무효”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에도 2005년 9월7일 열린 1심 소송에서 그는 패소 판결을 받았다.

    사정이 이렇다면 김 전 교수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항소 기각 뒤의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면 김 전 교수의 귀국은 불길 속으로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1996년 말 뉴질랜드로 떠난 뒤의 10년 세월은 ‘재임용 탈락’의 고통을 잠시도 잊게 하지 못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 수학과에서 시작된 ‘무보수 연구교수’ 생활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다. 일반수학자인 김 전 교수가 미국으로 건너가 무보수를 감내하며 ‘정보공학’ 쪽에 관심을 기울여 얻어낸 알토란 같은 학문적 결실도 자신의 몫이 될 수 없었다.


    △ 지난 1월1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비상 전국법원장회의’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전 교수는 연구교수 신분마저 포기했다. 언젠가 국내에 돌아와 교수 지위를 얻었을 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미국 바이오벤처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수학의 원리와 생명공학이 만나는 지점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예컨대 세포핵 속의 염기 서열에 나타나는 개인의 차이를 이용해 질병 치료 모델을 프로그래밍하는 식이었다. 한동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게놈 기능에 관련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식으로 생명정보공학을 탐구했다. 하지만 천생 수학자일 수밖에 없는 그가 생명공학 기업에서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아무리 프로그램을 개발해도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데이터 분석자 신세일 뿐이었다.

    ‘교육자적 자질’이라는 올가미

    그렇다면 김 전 교수는 재임용 탈락자로서 국외를 떠돌아야 했던 것일까. 지난 1월12일 2심 재판부는 “입시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 징계 처분과 재임용 탈락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대학 교원이 갖춰야 할 다른 덕목도 갖추도록 노력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전 교수의 재임용이 거부된 것은 시험문제 오류 지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김 전 교수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린 게 입시출제 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성이라는 증거가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수학과 교수들이 “입시출제 오류 지적이 해교 행위라 학교 당국에서 단호한 조처를 내렸다”는 내용의 증언 서류를 제출한 것이다.

    어쨌든 2심 재판부는 “김 전 교수가 학문적 양심은 있으나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입시출제 오류 지적의 대가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논란이 불거지기 직전인 1995년 1월4일 김 전 교수는 학과장으로 추천될 정도로 학교 구성원으로부터 연구 능력을 인정받았고, 교육자적 자질도 의심받지 않았다. 김 전 교수가 1월16일 3일 전 치러진 본고사를 채점하며 문제의 수학적 오류를 지적하지 않았다면 ‘김 교수님’으로 강단에 머물러 있었을 게 틀림없다.

    지금껏 김 전 교수는 입시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을 후회하는 듯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직 사법부의 판단을 통해 진실의 승리를 확인받고 싶었을 뿐이다. 김 전 교수에게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학문적 성과도 있었다. 그럼에도 개인적 판단에 근거한 ‘교육자적 자질’이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 결과 원고에서 피의자로 법정에 서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김 전 교수는 재임용 관련 사립학교법 해석에 대한 이용훈 대법원장의 대답을 듣고 싶어한다.


    @ 김명호 전 교수의 개인 홈페이지(seokgung.org)와 구명운동을 벌이는
    인터넷 카페(cafe.daum.net/myunghonimsarang)에서 관련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수백만의 사법 피해자들을 위해

    경찰서에 수감 중인 김 전 교수가 이틀에 걸쳐 작성한 호소문

    (이 글은 서울 송파경찰서에 수감 중인 김명호 전 교수가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메모 형식으로 작성한 내용이다. 기자들의 접견이 금지돼 직접 취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김 전 교수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입수한 메모의 주요 내용을 싣는다. )

    무법 판결의 판사들과 피해자 김명호와의 전쟁이다. 법을 무시하고 살인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이 지배하는 이 나라에서 더 이상 살 의욕이 없다. 차라리 죽여달라. 진실 왜곡 보도를 바로잡기 위해 단식 투쟁한다. 5m 거리 계단 세 번째에서 발사했다는 박홍우의 주장은 허위다. 현장 검증시 △화살의 궤도 추정할 때 사용한 대나무들은 두 조각 내지 세 조각으로 이루어졌고 △궤도 추정시 구부러져 있었으므로 박홍우의 주장을 증명(?)하고자 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법을 무시하는 판사들에 의해 발생한 전국의 수십만 수백만의 사법 피해자들을 위해 투쟁한다. 나는 1년6개월 동안 1인시위를 하며 위조·위증을 당한 수많은 사법 피해를 보았고 그 위조·위증을 눈감고 무시한 수많은 판사들과 그들의 판결을 목격했다. 400여 명의 해직 교수들을 양산한, 법원조직법을 무시한 사립학교법 법률해석은 대표적인 법을 무시한 판사들의 범죄 행위다.


    단식투쟁 3일째(18일): 일어서기도 힘들다. 입맛은 여전하고 배고픈지도 모르겠다.

    항소기각 이유? 즉 입시출제 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성 재임용 탈락(이미 그전에 두 차례에 걸친 부교수 승진 탈락과 정직 3개월 징계)을 입증하는 증거 서류와 녹취록들이 있음에도 인정할 수 없는 사유는? 항소기각 사유 중 가장 궁금한 것은 입시출제 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 재임용 탈락이라는 그 수많은 증거 자료들은 어떻게 어떤 이유로 묵살했는가이다.( seokgung.org/etc/2seokm2.htm 참조)

    상식도 통하지 않고 최소한 상식인 법도 무시하는 판사들. 그 판사들의 범죄 행위들은 전혀 처벌받지 않는다. 법원에는 자체 징계라는 것이 아예 없다. 언론에 보도되어야만 마지못해 사표 내고 징계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판사들에게 어떻게 재판을 맡길 수 있는가.

    그동안 1인시위를 통해 법에 무지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논리적으로 표현해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한 서민들을 무수히 보았다. 그 숱한 위조·위증들. 아무리 증거들을 내도 판사들은 꿈쩍하지 않는다. 그래도 한 판사는 법리적으로 따져들어가니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하는데 박홍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결국 10년 전 성균관대 전체와 싸웠듯이, 이번에는 대법원 전체와 싸우는 셈이다.

    남들은 10일, 100일씩 단식한다는데 나는 고작 3일째인데 이렇게 힘이 없다니. 목이 말라도 일어나기 싫다. 구속 사유가 도주 위험이 있다고 한다. 어디로 도주한다는 것인가. 10년의 한을 풀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데 도주하다니. 그리고 왜 위법한 접견금지냐? 피의자에게는 표현의 자유도 없나. 나의 진실을 기자들에게, 더 나아가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성균관대 입시 부정을 은폐하려는 거대한 판사 집단, 대법원의 사법살인 행위를 알려야 한다. (‘재임용법 해석의 문제점’ 참조)



    [인터뷰/ 임종인 의원]

    “판사가 교수의 품성 판단할 수 있나”

    사법부의 권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고민하게 하는 사건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한겨레21 김수병 기자)

    서울 동부지검은 지난 1월18일 김명호 전 교수에 대한 접견금지 조처를 내렸다. 김 전 교수가 기자들과 접촉해 수사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김 전 교수의 가족들이 제출한 직계혈족 5명 이외에는 접견을 금지한 것이다. 그래서 김 전 교수의 장인도 접견을 못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 법사위원인 임종인 의원(열린우리당·안산 상록을)이 18일 오후 김 전 교수를 1시간30분 동안 접견했다. 임 의원을 만나 김 전 교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전 교수가 수감된 경찰서로 찾아간 이유는 무엇인가.

    = 일단 폭력적인 해결 방법은 잘못됐다는 점을 밝혀둔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의 자유도 폭력으로 얻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노예근성에 찌든 돌대가리의 헛소리) 예전에 김 전 교수가 의원회관으로 찾아온 일이 있다는데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 당사자를 찾아간 것은 처음이었다. 어찌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 사건은 첨예한 모순이 격렬하게 터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여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야만 “어떻게 이런 일이”와 “오죽하면 이런 일이” 사이에서 나름의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가.

    = 김 전 교수는 “우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법을 무시하는 무법 판사들에 의한 재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국민에 의한 재판을 받겠다”고 말했다. 박홍우 부장판사 사건의 정황에 대해서도 들었다.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모든 것이 허사로 끝났다”면서 “항소 기각 사유를 알고 싶었고, 석궁은 위협용으로 가져갔고, 노끈과 칼은 있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두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김 전 교수의 특이 성격론과 비민주적 법원 구조론이다. 특이 성격론은 개인을 단죄할 때 유리할지 몰라도 사회적 의미는 없다. 김 전 교수는 “사건을 맡았던 8명의 판사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고 각종 신청을 18차례에 걸쳐 했는데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김 교수가 공개 질의한 재임용 관례 판례 변경의 정당성과 공정한 재판이 이뤄졌는가 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김 전 교수의 교육자적 자질론을 내세우는데.

    = 법원이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없이 보아왔다. 항소 기각의 이유로 교육자적 자질을 내세우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판사가 교수로서의 품성을 판단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설령 예의 바르지 않아도 교수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김 전 교수에게 잘못이 있다면 입시문제 오류의 집단적 공범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박 판사 사건 뒤 김 전 교수에게 접견금지 조처를 취하고 이정렬 판사가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일이다.

    김 전 교수는 ‘국민저항권’을 내세우고 있는가.

    = 그동안 법원의 재판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는데 그것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교수는 재판 진행 과정에서 차별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일어나지 말아야 할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다.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올바른 방법은 아니지만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국민을 위한 사법부였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사법부는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권력(재판)을 행사하면서 국민의 민주적 통제 범위에 벗어나 있었다. 사법부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고민하게 하는 사건이다.

    이번 사건을 국회 차원에서 대응할 것인가.

    = 무엇보다 재임용 탈락과 재판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게 급선무다. 그래서 국회 법사위에 진상조사위원회를 제안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려고 한다. 대학이 관련되어 있는 만큼 교육위까지 포함한 공동 조사도 필수적이다.



    “집단적인 압박은 생각 안하나”

    김 전 교수의 자료와 관련자 증언으로 논박해본 이정렬 판사의 견해(* 이정렬은 전형적인 위선자로서, 법정내에서는 원고 김명호의 논리와 법리에 단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 하다가 김명호 본인이 감옥으로 입막음 당하고 있는 사이에 주둥이 깐 더럽고 비겁한 개만도 못한 인간 새끼다.
    1. 이정렬의 위법 개소리에 대한 싱클레어의 명쾌한 반박
    2. 네티즌들이 비판
    3. 이정렬의 교육자적 자질에 대한 주장은 일사부재리 원칙을 위한 범죄행위 => 박홍우, 이정렬의 2006.12.23일자 재판 기록)

    서울중앙법원 민사2부 이정렬 판사는 지난 1월17일 김명호 전 교수의 ‘교원지위확인 소송’ 항소 기각 판결문을 쓴 주심판사로서 법원 전산망에 자신의 입장을 올렸다. 이 글에서 이 판사는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기회를 부여했고 학자적 양심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전 교수가 재판 과정에 성실히 임하지 않고,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해 항소를 기각했다고 했다. 정말로 김 전 교수는 항소심 재판에 불성실하게 응했고,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했던 것일까. 이 판사의 글을 김 전 교수가 홈페이지에 남긴 자료와 관련자들의 증언으로 반박하는 문답을 꾸몄다.

    (이 판사의 글)원고의 교육자로서 자질을 문제 삼는 피고 쪽의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는데.

    = (반박글)이 점은 판결문의 핵심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원고가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해 항소를 기각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성균관대 법인과 원고를 제외한 수학과 교수들, 반감을 가진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나를 압박했을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는 데 있다. 게다가 내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법률적으로 따질 권한이 재판부에 있는지도 따져봐야 할 사안이다. 그 모든 게 입시문제 오류 지적 뒤의 사안이라는 것을 감안하지 않은 이유도 궁금하다.(졸업생 현아무개씨, 임종인 의원)

    증인들은 원고에게 불리한 취지로 증언을 하였고 박 부장님께서는 원고에 대하여 반대신문을 할 것을 고지하셨습니다. 그런데 원고는 반대신문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 내가 지난 12월22일 마지막 변론기일에 피고 쪽이 내세운 증인신문에 응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나는 반대신문을 하지 않는 이유로 △이미 정직 3개월 처분 취소소송과 교육부 재심위원회 결정의 효력 등의 과정에서 확인된 사항을 다시 신문하는 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위반되며 △입시출제 오류 사건 이후에 제기된 사항으로 석명 준비명령 답변서(9월15일자, 10월31일자)를 통해 답변한 사항이라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박 판사의 “원고가 입시 문제로 왕따를 당했다는 소문을 들었나”는 증인에 대한 질문과 관련해, 나는 “교수들 간의 불화에 의한 대립에 학생들이 휩쓸리는 것을 원치 않기에”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김 전 교수 홈페이지 참조)

    원고는 법정에서 “나는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지 가정교육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발언까지 했습니다….

    = 이 내용을 전후 맥락을 도외시한 채 한 문장만 전한 것은 논리를 비약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내가 전공 필수과목인 ‘위상수학’ 수강생들의 학기말 시험 집단 백지 제출 사건에 관한 신문 중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30여 명의 수강생들이 백지 답안을 제출한 것은 “기준 이하의 성적을 얻으면 과락을 줄 수 있다고 하자 졸업을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집단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이뤄진 일이다. 그럼에도 박 판사가 “원고는 학생들을 잘못 교육시킨 것이라는 생각이 없나요?”라고 묻자 앞의 말을 하면서 “저의 죄라면 원칙을 지킨 죄밖에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김명호 교수 징계를 반대하는 학생들’의 성명서 참조)

    원고는 판결 선고일에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출석하지 않은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 실제로 나는 지난 1월12일에 이뤄진 항소기각 선고 법정에 없었다. 이는 선고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동안 세 차례 이뤄진 선고일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이는 민사사건의 경우 당사자 없이 사건 번호에 대한 판결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인터넷을 통해 기각 사실을 확인한 것도 우연하게 법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보았을 뿐이다. 나는 선고 기일이 잡히지 않는 이유가 내게 이로운 판결을 내리기 위한 진통일 것으로 믿었다.(임종인 의원과 김 교수 가족들의 전언)


    수학자는 왜 싸우는가
    “법원에 왔으면 법의 잣대로 할 수 밖에”
    답변: 이정렬 이 개만도 못한 인간새끼야
    사건에 대한 판단을 못해서가 아니라 ‘공권력’이란 폭력을 빌리려고 법원을 찾는 거다.
    그런데, 법원에 왔으면 법원의 잣대로 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법원의 잣대가 뭐냐?
    판사, 니들이 뭔데?
    터진 주둥이로 나오는 대로 지껄여 대는 너희 판사들의 말이 법원의 잣대냐? 아니면, 법전에 규정된 법 조항이 법원의 잣대냐? 법전이 니들의 잣대라면, 공개 TV 법리 논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