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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 2002년08월01일 제420호 

패거리 근성이 '정의'를 죽인 사회
웬만해선 그를 말릴 수 없다

‘미친년당’부터 ‘빨치산’까지 태풍을 몰고 다니는 이규택 총무의 돌출발언


사진/ 모두가 혀를 내두르는 이규택 한나라당 총무의 돌출행동. '당이 정하면 우린 돌격한다'는 잘못된 정치문화의 산물일까. (이용호 기자)


여의도 정가에서 그는 단연 화제 인물이다. 웬만해선 그를 말릴 수 없다. ‘못 말리는 QT’라는 신조어까지 떠돈다. 의원회관 안팎에서 “또 사고칠 줄 알았다”, “언제까지 그 꼴을 두고 봐야 하냐”는 동료 의원들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린다. 이규택 한나라당 원내총무(경기 여주)의 거침없는 발언과 돌출행동에 모두들 혀를 내두른다.

서툰 영어 발음만 사과?

7월23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총회. “이유를 막론하고 국회를 열지 못해 총무로서 죄송하다.” 오전 주요 당직자회의 때 민주당을 “빨치산 집단”이라 비방한 자신의 발언 때문에 국회가 파행된 것을 사죄하는 듯했다. 하지만 곧 옆길로 샜다. “어제 민주당 천정배 의원이 흑색선전을 일삼았다. 그래서 빨치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영어로 파티산인데, 발음이 좋지 않아… 발음이 잘못된 걸 트집잡았다.” 어눌하고 우스꽝스런 말투로 해명과 사과, 조롱을 뒤섞는 독특한 화법을 다시 선보였다. 의원들도 참을 수 없다는 듯 포복절도했다. 이규택 총무는 돌고 돌아 결론을 맺었다. “민주당은 8·8 보선에 별 이익이 없다고 글자 그대로 ‘파티산’(당파)의 입장에서 국회를 열지 않으려는 게 아닌가 싶다. 원내총무로서 발음을 잘못한 것은 죄송하다. 민주당이 사과를 요구하는데…. 해명할 수는 있지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서툰 영어 발음만 사과한 셈이다. 간간이 “언제까지 저렇게 내버려둘 것이냐”, “주변에서 말려야지, 자꾸 북돋으면 어떡하느냐”는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이 총무는 괴팍하고 우스꽝스런 입담으로 다수 의원들을 사로잡았다. 더욱 분노한 민주당은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맞섰다. 자민련도 “정신병적 막말을 하는 이 총무는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거들었다. 결국 이날 오후 늦게 서청원 대표가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사진/ 이규택 총부(왼쪽)는 당론을 관철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도 여러 번 보였다. 2001년 114월 당시 국회 교육위원장이던 그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이규택 총무의 소임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회를 원만히 운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반대였다. 제1당 원내사령탑이 거침없는 강경발언으로 여야 관계를 자주 경색시켰고, 스스로 권위를 깎아내리는 일도 반복했다.

지난 5월23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하반기 신임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대립했다. 이 총무는 이만섭 당시 국회의장을 찾아갔다. “성의를 보여달라. 앉아서 자유투표제만 주장하면 안 된다. 의장 간담회를 열어 법정기일인 25일까지 원구성을 하겠다고 발표하라”고 닦달했다. 여야 대립으로 늦어진 원구성 책임을 이 의장에게 떠넘긴 것이다. 이 의장은 “내가 한나라당 대변인이냐. 나도 당신들과 생각이 똑같다. 타협이 중요하니, 다른 당과 계속 접촉하라”고 타일렀다. 이 총무는 끝내 분을 삼기지 못한 듯 “의장 공백 때는 (국회에서) 제1당을 대표하는 의원(원내총무)이 외빈을 접견할 수 있다”며 법정기일까지 원구성이 안 되면 자신이 국회의장직을 대행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정치권 반응은 썰렁했다.

일주일 뒤인 5월31일 또 다른 사고가 터졌다. “새천년 미친당이구먼. 새천년 미친년 당이야.” 민주당이 이회창 후보 며느리의 원정출산 의혹을 제기하자 공식회의에서 막말로 받아쳤다. 김정숙 최고위원이 “한 글자만 빼지요”라고 말렸지만, 이 총무는 거침없이 떠들었다.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신기남 의원이 이 후보 며느리까지 비방했다는 보고를 듣고 흥분해서 시중에 유행되는 얘기를 얼떨결에 하게 됐다. 서툴고 심정이 떨려 그런 것이니 잘 봐달라. (취임) 한달도 안 됐다.” 그는 “앞으로는 말을 잘 가려 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하지만 실수는 반복됐고, 해명논리도 비슷했다.

“과잉충성 문화가 원인”

이 총무는 왜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의도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좀 쉽게 흥분하는 편인데다 분위기에 잘 휩쓸린다. 늘 사람들이 즐겁게 웃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런 요소가 어우러져 자주 오버하는 것이다.” 이 총무 핵심 측근의 해명이다. 즉흥적이고 유머러스한 성격 탓이라는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그를 잘 알고 지낸 수도권 한 동료 의원은 “호탕한 기질이 너무 강해 감정을 잘 억제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지만 순박하고 솔직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재주를 부리며 뭐가 뭔지 모를 말로 위선을 일삼는 많은 의원들보다 우스꽝스런 그의 행동이 더 솔직하고 올바른지 모른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못 말리는 사고뭉치지만 전체 의원들 수준에 견줘볼 때 결코 저질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 색다른 분석도 있다. 한나라당 한 재선 의원은 우리 정치 문화가 ‘이규택류 정치인’을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돌출적이고 감정억제를 잘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성’을 최고로 치는 우리 정당 문화가 이런 일을 반복하게 한다. 대다수 의원들은 당과 보스에게 충성심을 표출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거칠게 나가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멘탈리티에 사로잡혀 있다.” 원칙과 소신보다 ‘당이 정하면 우린 돌격한다’는 다수 의원들의 잘못된 가치가 발현된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 의원은 “동료 의원들 사이에 그런 돌출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충성심을 검증받고 정치적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경쟁 분위기까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몸싸움과 막말로 당론을 관철한 의원들을 충성스런 당원으로 평가하고, 당직과 상임위원장 배분 때 중용하는 정당 내부 메커니즘이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 이 총무는 오래 전부터 DJ와 민주당에 맞서는 특급 공격수를 자임해왔고 그 와중에 파문도 많았다. 특히 지난 98년 9월11일 한나라당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비상대책회의 발언은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윤리위 경고를 받은 의원’ 이라는 불명예를 안겼다. 이 총무는 당시 비리 사정 정국을 비판하며 “올해 76살 되는 분이 계속 ‘사정’, ‘사정’ 하다가 내년에 혹시 변고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말 거짓말을 너무 잘해 김홍신 의원이 얘기한 공업용 미싱이 다시 필요한 거 아닌가 싶다”고 극언을 했다. 그동안 국회에선 수많은 막말들이 오갔고, 그때마다 여야는 경쟁적으로 상대 의원을 국회윤리위원회에 회부했다. 하지만 늘 솜방망이였다. 그런데 이 의원의 거친 입은 오랜 동업자들의 온정주의마저 깨뜨렸다.

당론을 관철하기 위해 몸을 아까지 않는 모습도 여러 번 보였다. 2001년 11월 당시 국회 교육위원장이던 그는 교원정년을 62살에서 63살로 늘리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했다. 위원장 직권으로 의사진행 순서까지 바꿔가며 뒷순위에 있는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킨 것이다. “원활한 의사진행을 위한 조처”라고 항변했다. 같은 당 동료의원도 그의 십자포화의 표적이 되었다. 2001년 6월20일 여야 개혁 성향 의원들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했다. 한나라당은 반대 당론을 결정했다. 하지만 조정무 의원(경기 남양주)은 당론을 거스르며 찬성 발언을 했다. 흥분한 이규택 의원은 조 의원을 떠밀며 “미친 놈, 이 새끼야 너 죽여버릴 거야”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고민하는 한나라당

그의 잇단 퇴행은 한나라당, 특히 이회창 후보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명박 서울시장 등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들의 공사구분 못 하는 행적을 비난하는 여론이 잦아드는가 싶었는데, ‘빨치산’ 발언이 다시 한나라당과 국회 홈페이지를 달구고 있다. “서청원 대표가 벌써 몇 번째 사과와 유감을 표명했나요. 정말 한심하고 걱정됩니다. 차기집권(예비)당으로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세요”(연봉), “아이 보기가 민망하다. 제발 의원들 질 좀 높여달라” (방촌)는 글은 순화된 편이다. 아예 “화난다고 막말하고, 사과하는 모습이 별로 좋지 않다. 다 된 밥에 재뿌리는 돌출행동을 삼가고 익어가는 벼를 닮으라”(김태대)며 12월 대선에 끼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지지자들의 충고도 잇따른다.

이 후보 쪽은 뾰족한 제어법을 찾지 못한 채 고민 중이다. 이 후보 참모들은 “어쨌든 의원들이 직접 선출했는데 주저앉힐 수도 없고, 마냥 두고 볼 수도 없고… 하여튼 갑갑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핵심 참모는 “무조건 자기 생각을 떠벌이고, 강요하면 모든 게 다 된다고 생각하던 때는 지났다. 이 후보도 최근 몇몇 사례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불편한 심기를 전달했다. 이 후보 대선전략의 핵심은 성숙하고 경륜과 능력이 있는 국정운영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규택 총무의 돌출행동은 중대한 걸림돌이다. 과연 누가 이 총무를 말릴 수 있을까. 그를 잘 아는 정치권 인사들은 “하루이틀 만에 나아지겠느냐. 차차 개선되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한다. 별 기대를 않는 눈치였다.

신승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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