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8일 화요일 태풍이 지나가다.

태풍 볼라벤이 어제 저녁부터 오늘 오후까지 힘찬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처음에는 화장실 쪽 쪽창으로 비가 세차게 들이치더니 점차 바람의 방향이 반대쪽으로 바뀌어 오늘 오후에는 복도 쪽 음식물 투입구 쪽으로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태풍을 귀중한 손님 맞이하듯 밤잠도 설치며 황소바람이 몰아치는데도 쪽창을 반쯤은 열어 둔 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태풍이 제발 해군기지 사업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주기를 빌면서.

'부러진 화살'이란 영화로 우리에게 다시 부각된 석궁 사건의 주인공 김명호 씨의 <판사(判事) 니들이 뭔데?>라는 책을 오늘로 다 읽었다. 수학 교수답게 모든 판결문의 제목과 참고 서류의 복사 부분을 꼼꼼히 주를 달아 놓아서 놀라웠다. 다른 한편으로는 판사와 검사에게 거침없이 욕설을 퍼붓는 말투가 좀 낯설었지만 그것이 이 책의 본뜻을 훼손시키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김명호 교수에게는 진보도 보수도 없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그에게는 진보라기 보다는 기회주의자일 뿐이고 <조선일보>도 '사건의 중요성에 대한 판단 및 맥을 짚어 내는 점에 있어서 타 언론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다'고 칭찬한다. 단지 '권력이나 기득권층의 눈치를 보고' 있어서 더 이상 파고들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것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나는 김명호 교수가 지적하는 사법부의 횡포와 만행에 대해 십분 공감하고 공분한다. 그리고 사법부가 그런 불법과 비행을 저지르도록 공모하고 있는 국민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분명히 사법부는 누구에게도 '감시와 견제를 전혀 받지 않는' 민주주의 사회의 불의한 '특권 계층'이다.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어떤 집단 스스로 자신을 정화시킬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심지어 존경 받는 종교 단체의 성직자들조차도 스스로는 자신을 개혁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충고와 비판, 감시와 견제를 해 줄 수 있는 타자(他者)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판검사들에게는 이 필수적인 타자(他者)가 없다. 김명호 교수가 지적했듯이 '입법부와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사법부도' 대법관, 검사장, 헌법재판관들을 '선거로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6년 9월 13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배심원제도의 근원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불란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 바로 불란서 법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었던 것입니다. 지금 있는 법원은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고 혁명군이 판단하고 모든 재판권을 회수하였습니다… 재판의 법률 적용과 모든 사실 적용 전부는 배심원 시민들이 하고 법원 직원들은 절차 진행만 해라. 그렇게 된 것입니다. 소위 미국의 배심제도의 역사적인 연유는 거기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미국이 받아들인 배심제도는 12세기 영국에서부터 다루는 배심제도가 혼합이 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정신적인 기초는 불란서 혁명 때 일어난 법원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나도 지금의 대한민국 법원의 판검사들이 우리나라의 권력자들과 파워 엘리트(power elite)들을 위해 봉사하는 법률공학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사법부의 개혁은 우리 사회의 모든 사회적 정의를 판단하는 추와 저울과 잣대들을 다 바꾸는 근본적인 혁신이다. 그러나 국민 자신이 바로 판검사들의 실제적인 주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이들에게 회초리를 들기 전에는 절대로 판검사 스스로 자신들을 정화하거나 개혁할 수는 없다. 이렇게 판검사들의 오만과 전횡을 방치한 것도 우리 탓이고 앞으로의 사법부 개혁도 모두 우리 국민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이제 상전들을 종으로 부리는 거만한 종들의 버릇을 고칠 주인들의 반란이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