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화살.. 부러진사법부..


[서론]

영화 부러진 화살로 촉발된 논란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급기야 2012. 2. 6. 법원에서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행사까지 주최하는 소동을 벌였지만,
국민들의 성토장이 되었을 뿐 별다른 성과는 없어 보인다.

문화평론가라는 어떤 이는 영화도 보지 않고서 영화가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고,
TV 토론 프로그램의 논제가 되기도 하여 석궁에 맞아보았느냐는
판사출신 변호사의 황당한 발언까지 공중파를 타는 해프닝도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엔하위키에 실린 작성 불명인의 허접한 글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뉴스도 보도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부 비판론이 불거지는 것은 당연한 사회현상이다.
따라서 형사절차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몇몇 유명인들이 공공연히 뭐라고 떠들던간에
그것은 단지 귀에 거슬릴 따름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정말로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적어도 법적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히 아주 많은 문제가 있는 판결을 지칭하여,
소위 법률전문가를 자처하는 판사출신 변호사들,
그리고 사법부 소속 일부 판사들마저도
해당 판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의견을 공공연히 피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엔하위키에 오른 글 역시 과연 형사절차법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라도 있는 자의 글인지조차도 의문이 드는 형편없는 논리의 글인데,
역시 일부 판사들마저도 이에 찬동하고 있다고 하니 더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급기야 사법부가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였는다.
“예술적 허구이다.”는 것...
즉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판결인데,
법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럴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석궁재판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아주 많은 판결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어도 “무죄”가 선고되었어야 할 판결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도 보면 더욱 더 문제가 많다는 것..

그리고 사법부가 의도적으로 그런 사실을 숨기고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법률에 대해 잘 몰라서 오해하는 것이다.”고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석궁재판”은 법적으로 보아도 분명히 “개판”이다.
그리고 법적으로 보면, 영화에 나온 것보다, 일반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개판이다.
사법부가 솔선수범하여 법률은 물론이거니와
헌법마저도 무시한 “개판이 되어버린 재판”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이다.

여기서 필자는 “석궁재판”이라고 불리우는 해당 재판이 무엇이 문제인지 샅샅이 파헤쳐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그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사법부 판사들을 비롯한 소위 ‘법조인’들이
아주 의식적으로 이를 은폐하고 그럴듯한 궤변으로써 국민을 호도하려 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영화에 묘사된 것보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개판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글에 앞서 분명히 밝히고자 하는 것은
필자는 김명호 교수가 실제로 화살을 고의적으로 발사했는지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신(神)만이 알고 있는 진실이기 때문에, 진실에 대한 갑론을박은 무의미한 소모전일 뿐이다.

필자가 관심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김명호 교수가 석궁을 고의적으로 발사하였다고 판결을 확정한 “석궁재판”이고,
이 글의 논점 역시 그 재판의 적법성 여부일 뿐이지,
김명호 교수가 실제로 석궁을 발사했는지 여부는 아니다.

사법부는 지금도
“법률을 모르는 우매한 국민들”이 잘못 만들어진 영화로 인해 사법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석궁재판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정말 “법률을 몰라서”일까??
과연 석궁재판은 공정한 재판이었을까?
공정한 재판인데 영화가 잘못된 정보로써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가?
우매한 백성들이 영화의 선동에 휘말려 아무 죄 없는 사법부를 비난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그런지 한번 살펴보자.
그것도 아주 법률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최소한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정도는 국민들은 알아야 한다.
법률을 모르는 자들은 국민이 아니라,
법률을 무시하고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더라도,
총 6편에 이르는 엄청나게 방대한 양의 글이다.
읽으려면 꽤나 오랜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읽기 귀찮거나 시간이 없는 자는 그냥 가볍게 우측 상단의 X표를 눌러주길 바란다.

자... 그럼 시작하기로 한다.

<제1편 재판 前>

대한민국 사법부는 공개적으로 헌법을 위반하였다.

2007. 1. 15. 성균관대학교 교수였던 김명호 교수가
부교수 지위 확인의 소에 대한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유지한 항소심 재판에 불만을 품고,
당시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박홍우 판사의 집에 찾아가 석궁을 발사하였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다음 날인 2007. 1. 16. 법원행정처는 장윤기 처장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열었고,
대법관 중 한 명은 “정신이상자의 테러행위”라고 규정하였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그 때부터 해당 사건은 “석궁테러”, “판사테러” 등 테러사건으로 명명되었다.
대법원은 그로부터 4일 뒤인 2007. 1. 19. 전국 법원장회의를 개최하여
“석궁테러를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엄단의 의지를 천명”하면서,
법관의 신변보호에 관한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하였다.

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판사에게 석궁을 쏘았으니,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니다. 결코 아니다.
피고인이 실제로 석궁을 쏘았던 쏘지 않았건간에 말이다.

사법부는 그 사건이 무슨 사건이건간에,
결코 그러한 경거망동을 벌려서는 아니되었다!!!

[헌법] 제27조 제4항에서는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초등학생들도 아는 원칙이다.
이는 모든 형사피고인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헌법 규정이다.
즉 경찰관이 보는 앞에서 사람을 죽인 피고인에게도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법부는, 그것도 전국 법원장들이라는 수뇌부들이 모인 사법부 전체가 이를 보기 좋게 깔아뭉개었다.
스스로 사건발생 4일만에 석궁사건을 석궁‘테러’사건으로 명명하여
아직 유죄 확정판결은 커녕 경찰 조사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피의자 신분에 불과한 김명호 교수를 지칭하여 ‘테러범’으로 낙인찍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대다수의 국민들이 “석궁사건”을 석궁위협사건, 석궁발사사건이 아닌,
“석궁테러” 또는 “판사테러” 등 끔찍한 “테러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사법부의 작품이다.

피해자가 판사라고 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사법부는..
분명 헌법에 의해 무죄추정의 원칙의 적용을 받고 있는 김교수를 겨냥하여 테러범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스스로 나서서 미리 “유죄”를 선고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가장 준수해야 할 기관인 다름 아닌 사법부가 말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죄추정의 원칙은 피고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원칙이다.
즉 그 누구도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죄인으로 취급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으로서,
이는 곧 "헌법"에 의해 피고인에게 부여된 권리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21세기 사법부는 피고인의 "헌법상 권리"를 무참히 짓밟아버린 것이다.
그것도 일부 판사의 부화뇌동이 아니라, 사법부 수뇌부 전체가 모여서 말이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헌법에 규정되어 있고, 사법부 스스로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원칙은 “법관의 독립성”이다.
즉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법관이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하여 스스로의 양심과 법률에 따라 심판하여야 한다는 원칙,
대통령도 재판에는 간섭할 수 없다는 이 원칙은..
사법부의 신뢰는 물론이거니와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사법부는 이마저 무너뜨렸다.
스스로 나서서 한 명 한 명 법관의 "독립성"마저 훼손시킨 것이다.

어떻게??

사법부의 수뇌부들은 사건 발생 4일만에 “이를 엄단하겠다.”고 공개 선언하였다.
당시 모인 법원장들이 해당 재판의 주심판사도 아님에도 말이다.
당시에는 수사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주심판사가 배정되기도 이전이다.
하지만 수뇌부들의 공개선언에 의해, 누가 재판을 배당받건간에 애당초 선처나 관용 따위는 없다.
무조건 엄벌에 처해야 한다.
게다가 사법부 수뇌들이 일선 판사들에게 그토록 중시하고 강조한 것이 바로 “예단배제”가 아니었던가?

법관은 스스로 독립해서 재판하기 때문에,
사법부의 수뇌부가 뭐라고 하건간에 양심에 따라 재판했을 것이라고 항변하는 이도 있겠지.

감히 "웃기지 마라."고 말할 수 있다.

법관이 대통령의 하명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직급 상급법관, 그것도 판사들의 근무평정점수를 부여하는 법원장들의 명령이다.
법원장들 회의에서 결정한 사안을 판사가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곳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음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때 맞추어 최근 법관 인사사태가 터지지 않았는가?
그것만 보면 그 위력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사법부는 사건 발생 직후 공개적으로,
석궁사건을 “테러” 사건으로 규정함으로써 무죄추정의 원칙을 스스로 깨뜨렸고,
김교수를 “엄벌”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사법부 스스로 [헌법] 제27조 제4항과 제103조를 유린한 것이다.
피고인이 "헌법"에 의해 부여받은 권리를 짓밟고 다른 법관의 독립성마저 침해하였다.
그 누구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더욱 한심한 것은 사법부의 헌법위반은 단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7. 10. 15.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되고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2008. 3. 7.경, 대법원은 전국 수석 부장판사회의를 개최하여,
석궁사건을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엄단의 의지를 재천명하였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시점이었다.
이러한 처참한 헌법유린의 만행은, 다른 곳도 아닌 "대법원"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사법계에 아주 큰 오점을 남긴 대형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법부가 숨기고 싶어하는 가장 큰 오점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사법부 고위 수뇌부들이
아직 수사조차 되지 않은 사건을 지칭하여
“유죄를 인정하고 중형을 선고하라!!!”라는 하명이 2번이나 하달된 마당에,
감히 어느 판사가 대법원장을 포함한 각급 법원장들이 모여 결정한 하명,
그리고 전국 수석부장판사회의를 거쳐 결의된 사안을 거역하고 무죄를 선고하거나 선처를 할 수 있겠는가.

석궁 재판은 재판은커녕, 기소는 커녕. 수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선고결과”가 사법부에 의해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처음부터 공정한 재판은 시작될 수가 없었던 것이고, 이미 ‘개판’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 누가 재판을 하더라도 재판은 개판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사법부 스스로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백 보 양보하여 설령 재판결과가 진실에 부합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말이다.
사법부는 스스로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2번이나 위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해당 재판이 매우 공정하고 아무런 문제없는 재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헌법조차 모르는가?
도대체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적어도 내가 보기에,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테러를 감행한 장본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법부였다.
그들의 선언에 따라 엄벌에 처했어야 할 자는 김교수가 아니라 "사법부"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자기 자식이 밖에서 석궁에 맞아 피를 흘리며 들어왔다 해도,
적어도 법관이라면 범인을 잡아 재판에 회부하여 처벌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냉큼 야구방망이를 들고 문열고 뛰쳐나가 범인을 두들겨 팬다면
이러한 행위야말로 바로 폭처법상 흉기휴대상해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법부는 그보다 더한 행위를 저질렀다.

피고인은 사법부를 응징하기 위해 형사법을 위반하였다면,
사법부는 피고인을 응징하기 위해 "헌법"을 짓밟았다.

그것이야말로 “사법테러”이다.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은 김교수가 아니라 사법부가 저질렀던 것이다.

형법을 위반한 피고인과 헌법을 위반한 사법부..
형법을 위반한 피고인이 법치주의에 대한 테러범이라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헌법을 위반한 사법부는 법치주의에 대한 '무엇'이란 말인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헌법을 위반한 것이 아님을 변호할 수 있다면 해보라!

설령 국민의 99.999%가 영화를 비난한다 해도,
적어도 “사법부”만큼은 영화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실제 재판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사법부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강변할 자격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현실은 사법부가 전면에 나서서 비난을 하고 있지 않은가?

사법부는 국민을 호도해서는 안된다.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기에 이를 숨겨서도, 감추려 해서도 안된다.
숨길 수도 없고 감출 수도 없는 명백한 헌법위반행위,
그것도 대법원을 주축으로 하는 전대미문의 사법테러..
바로 그것이 석궁사건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단 하나의 사건만 보더라도,
석궁재판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영원히 남을 "사법테러"이다.
변명의 여지는 없다.
사법부는 이미 그것 하나만으로도 KO패로 "Game Over"가 아니겠는가?

여기까지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이미 지적된 사실이다.
물론 사법부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음 사실들은 아직 지적된 적이 없는 것 같다.

다음 편에는 재판절차가 어떠한 점에서 법률에 위반하였는지,
법률에 대해 잘 아는 사법부가
그 법률을 잘 지켜가며 판결을 진행하고 선고를 했는지 여부를 살펴보겠다.

<제2편 재판절차>

피고인의 증인신청 기각은 공판중심주의 위반이다.

석궁사건의 공판기록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재판을 경청하고 있노라면,
대한민국 사법부가 얼마나 뿌리깊은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사법부와 그 옹호론자들은 국민들에게 석궁사건의 공판기록을 보라고 한다.
아마도 피고인이 ‘억지를 부리는’ 장면을 보라는 취지인 것으로 해석되는데,
아쉽게도 그러한 권위주의적 재판은
비단 ‘피고인이 억지를 부리는 사건’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는 않고 있다.

물론 석궁재판 당시 피고인이 법률에 대하여 수학적 관념으로 접근하여 증거신청을 하였다는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증거신청을 하는 피고인의 주장이 과연 그냥 무시해도 아무 상관없는 ‘떼쓰기’에 불과했던가?

아니다.

먼저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피고인은 대부분의 증거신청에 대하여 법률의 규정을 거론하였다.
즉 법률에 ‘그렇게 하라’고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원칙이니까 말이다. (법률의 규정에 부합하는 주장이었다)

억지를 부린 자가 있다면..
아주 엄격한 채증법칙을 요구하고 있는 법률이지, 피고인이 아니다.
따라서 판사가 짜증을 부리고 싶었다면 피고인이 아니라 국회에다 짜증을 부렸어야 한다.

왜 사법부는 법률의 규정에 따른 신청을 하는 자에게 ‘억지를 부린다.’고 강변하는가?
법률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등 수많은 잔소리를 늘어놓은 것은 그만큼 신중하라는 취지 아닌가?
그것이 단지 번잡하고 불필요한 요식적 절차만을 규정한 것인가?

사법부가 항변하듯이 과연 법원의 증거신청 기각은 당연한 처사였는가? 위법이 아니었나?

복잡한 것은 생략하고,
영화에서 묘사된 “증인신청 기각”의 사례 단 하나만이라도 들여다보면
결코 그런 소리 못할 것이다.

우선 항소심 법원에서는 피해자 박홍우 판사에 대한 증인신청을 기각하였다.
1심에서 출석하여 물어볼 것은 죄다 물어봤다는 취지이다.

일각에서는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1심에서 출석하여 사실관계를 이미 모두 증언하였는데,
재판하느라 바쁘신 분을 뭐하러 또 2심에서 재차 증인으로 출석시킬 필요가 있겠는가?
또 나와봐야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행정소송 시비를 거는 피고인에게 시달릴 것이 뻔하지 않은가?
등등....
물론 사법부의 강변 또한 마찬가지다.
"또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하지만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2심에서도 피고인의 증인신청을 인용해 주었어야만 한다.
그리고 사법부에게 많이 미안하지만, 그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좀 알려야겠다.

“공판중심주의”라는 것이 있다.

다소 생소한 용어일지 모르지만, 판사들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한 용어이다.
바로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그토록 강조하고 또 강조하던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냥 검색창에 ‘이용훈 공판중심주의’라고만 입력해 보면 우수수 나온다)

공판중심주의는 재판에서 모든 증거자료를 공판에 집중시켜
공판정에서 형성된 심증만을 토대로 사안의 실체를 심판하라는 원칙이다.
즉 부동문자로 인쇄된 ‘기록’에 의존하지 말고,
모든 증거자료는 공판에 현출시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것이다.
예단배제를 위한 원칙이기도 하고, 심증형성에 관한 원칙이기도 하기에,
그 중요성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용훈 대법원장이 새로이 만든 정체불명의 원칙이 아니다.
이는 형사소송법의 취지상 지켜져야 할 중요한 사법원칙인 것이다.
(검색창에 ‘공판중심주의’라고 검색해 보면 알 것이다)

그런데 이용훈 대법원장은 왜 공판중심주의를 그토록 외쳤을까?
바로 실제 사법부에서 이러한 중요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고,
이를 개혁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취지는 존중할만 하다.

그런데 가장 재미있는 것은
석궁사건과 재판은 모두
바로 그 공판중심주의를 노래부르던 이용훈이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대법원장이 그토록 강요하던 원칙이 석궁사건에서는 처참히 뭉개져버렸다.

바로 피고인의 증인신청 기각행위는 공판중심주의를 정면으로 위반하였기 때문이다!!

정말 아이러니하고 드라마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때도 아니고,
역대 대법원장 가운데 공판중심주의를 가장 강하게 주장하던 이용훈이 대법원장으로 있던 시절,
그것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하필이면 공판중심주의에 위배되는 재판절차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 뿐인가.
설상가상 몇 년이 지난 후 또다시 영화로서 회자되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있으니 말이다.

2심 재판부가 증인신청을 또다시 기각한 것이
어떤 이유에서 공판중심주의 위반인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별로 어렵지 않다.

피고인은 1심에서부터 피해자가 거짓 진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피해자의 진술 역시 증거 중 하나로써 채택되어 유죄가 선고되었다.

피고인이 항고했다.

2심에서는 판사도 바뀌었고 피고인의 변호인도 바뀌었다(새로운 주장사실도 추가되었다).
피고인은 여전히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었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여부는 유무죄와 직결되는 그 중대성이 막대한 쟁점이었다
(직접증거인 부러진 화살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하겠다).

즉 피고인은 2심에서도 계속하여
중요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탄핵하면서,
이를 증거로 채택한 1심과는 다른 판단을 구하는 취지로 항소를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2심은 유무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2심 법원은 단순히 1심 공판속기록만을 참조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증인으로 출석시켜 직접 재판장이 보는 앞에서 재차 증인신문을 진행함으로써 피해자가 거짓진술을 하는지 여부, 즉 유무죄 판단과 직결되는 요소의 심증형성절차를 반드시 거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모든 증거자료를 공판에 집중시켜 모든 심증형성은 기록이 아닌 공판정에서 행하라는 "공판중심주의"의 핵심이다! 그것도 당시 대법원장님께서 친히 노래를 부르던 공판중심주의!!

만일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영화를 봤다면, 그토록 강조하고 염원하던 공판중심주의가 법원에서 잔인하게 묵살되는 장면을 스크린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원인은 피고인을 미리 테러범으로 낙인찍어버린 본인의 과책이 원인이었다. (정말 드라마틱하고 아이러니한 스토리이기에, 필자는 영화가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이미 들었으니까 필요 없습니다.”
뭘 들었는가?
2심 판사들이 1심 재판을 방청이라도 하였다는 말인가?
2심 판사들은 귀가 여러 개라서 대한민국 법정마다 귀가 달려있었다는 말인가?

글자로 인쇄된 기록만 보지 말고 직접 들으라는 것이 공판중심주의 아니던가?

당시 재판부는 형소법에서 정하고 대법원장께서 강조하고 계신 원칙을 철저히 뭉개고 있었다. (어떻게 뭉개었는지는 영화를 본 자는 잘 알 것이다. 사실 공판기록이 더욱 적나라하지만 말이다)

그래놓고 사법부는 “중복되니까 불필요했다”, “피고인이 억지를 부려서 그랬다.”고 한다. 중복되니까 불필요하고, 피고인이 억지를 부리면 공판중심주의 따위는 걷어치워고 종이짝에 인쇄된 글자만 보고 판단해도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만일 피해자가 판사가 아니었다면, 공판중심주의를 노래하던 이용훈 대법원장 앞에서도 떳떳하게 "중복되고 억지를 부려 공판중심주의 따위는 집어치워버렸습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을지 정말 궁금하다.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직업이다. 헌법에도 규정되어 있다.

제발 “재판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영화가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슬로건으로써 스스로의 양심을 속여가면서까지 국민을 호도하지 말았으면 한다. 재판의 문제점은 그 누구보다도 사법부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국민이 법률에 대해 잘 몰라서 사법부를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법률에 대해 잘 몰라서 사법부를 제대로 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재판 시작 전부터 무너져버린 헌법질서, 재판 과정에서 철저히 붕괴된 공판중심주의..

결론이 제대로 나왔을 턱이 없다.

재판 결과 역시 '개판'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제3편 재판결과>

피고인이 고의(故意)를 인정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자, 석궁재판은 그 시작부터 헌법위반에다가, 재판과정에서는 절차적 위법까지 가세하였다. 그럼 결론이라도 적법한가? 아니 적법할 수가 있겠는가?

그나마 결론이라도 적법하면, 그래도 벼룩 눈꼽만큼이라도 변명할 여지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 생각에는 단연코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판단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지겠다.

법관의 판단에 대한 "성역"이나 "전권" 따위를 논하지 마라. 감히 고명한 대법관님들에 의해 확정된 대법원의 판단에 도전장을 던진다고 욕하지 마라. 이미 석궁사건은 대법원을 주축으로 하는 사법부에 의한 헌법위반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러한 사법테러범들의 합작품 따위에.. 누가 감히 "성역"이라는 신성한 단어를 거론한다는 말이다. 적어도 석궁재판의 판결문은, 필자가 보기에는 단지 "테러범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피고인의 유무죄를 논하기 앞서 또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현재 논란의 화두는 “피고인이 진정 석궁을 발사하였는가”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실”은 당사자 이외에는 신(神)만이 알고 있을 뿐 제3자는 모르기 때문이다.

일각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피고인은 석궁을 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으나, 사실 그 누구도 진실은 알지 못하다. 한편 법조인을 포함한 또다른 많은 사람들은 “공판기록 전부를 보면 피고인이 석궁을 발사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공판기록을 보지 않고서 함부로 예단하지 말라는 취지이다.

하지만 설령 수사기록, 공판기록을 모두 100번씩 정독한 100명의 사람들이 모여 100년을 토론한다 한들, 진실을 100% 완벽하게 인지해 낼 수는 없다. 즉 공판기록을 봤다고 하여 “진실”을 아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기록만 보고서 내가 가 보지도 않았던 장소에서 벌어진 일을 Full-HD 화면을 보듯 정확히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주장 또한 결론은 틀렸다.

사실 영화를 두고 벌이는 진실공방은 신(神)의 영역에 대한 다툼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본 사건을 둘러싼 공방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계속 헛돌고만 있는 것도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설전이 오고가기 때문에 애당초 결론이 날 수 없는 논쟁이기 때문이다.

논란의 화두는 피고인이 무고(無辜)한지 여부가 아니다. 쟁점은 피고인의 유죄(有罪)인가 무죄(無罪)인가이다.

다시 말해서 본 사건의 쟁점은 바로 피고인이 “무고(無辜)”한지 여부가 아니라, 피고인이 “무죄(無罪)”인지 여부인 것이다.

피고인이 무고한지 여부는 100년이 지나도 결론이 날 수 없지만, 적어도 피고인이 무죄인지 여부는 결론이 날 수 있다.

왜냐, 유무죄의 판단기준은 법률로써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주장하려는 것도 피고인의 무고가 아니라, 피고인이 무죄라는 것이다. 피고인이 무고한지 여부는 필자 역시도 알지 못하기에,

필자가 주장하려는 것도 피고인의 무고가 아니라, 피고인이 무죄라는 것이다. 피고인이 무고한지 여부는 필자 역시도 알지 못하기에, 여기서 진실을 논하는 것은 내가 신(神)이라는 사기극밖에 되지 않는다. (후술하겠지만, 영화 역시 피고인의 무고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피고인에게 유죄를 확정한 판결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짚어보자.

판결의 문제...
아주 많은 쟁점들이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의혹이 많았던 재판이다.
하지만 이를 일일이 나열하자면 글이 아니라 논문, 더 쓰면 책이 되어버릴 기세이기에.. 여기서는 일단 “석궁을 고의적(故意的)으로 발사하였는가?”에 대한 쟁점만을 간단하게 다루고자 한다. (와이셔츠의 혈흔, 구멍자국 등 수많은 여타 쟁점들은 아쉽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공소사실은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에서 규정한 집단,흉기 등 상해죄이다. 즉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형법 제257조 제1항의 상해죄(3년 이상의 유기징역)를 범하였다는 것이고, 이는 곧 피고인이 고의적(故意的)으로 석궁을 발사하였다는 것이다.

고로 석궁을 고의로 쏘았느냐 과실로 발사된 것이냐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만일 과실로써 판명된다면 이를 고의범으로써 기소한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어야 한다.

하지만 법원은 끝내 피고인이 석궁을 고의로 발사하여 상해를 가했다고 판단했고, 이는 대법원에서도 확정되었다.

자, 고의로 석궁을 발사했다. 흠.. 그럼 재판 과정에서 어떤 증거들이 현출되었는지 살펴보자.

(1) 피고인이 현장에 들고 간 석궁
(2) 체포 당시 소지한 화살 3개, 석궁가방 속의 화살 6개, 노끈 4개, 회칼
(3) 피해자가 입고 있던 혈흔이 묻은 옷
(4) 피해자의 진술 - 피고인이 화살을 겨누었고, 화살에 맞았다.
(5) 경비원 - 피고인과 피해자가 몸싸움 하는 것을 보았다. 피해자가 화살을 주었다. 끝이 뭉툭해져 있었고, 부러져 있었다.
(6) 기타 목격자들 - 피고인과 피해자가 몸싸움 하는 것을 보았다. 피해자의 복부에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
(7) 119 구급대원, 의사 등 - 피해자의 복부에 창상이 있었다. 119구급대원은 화살이 튕겨져 나갔다고 들었다고 했고, 의사는 육안으로 보아 길이 2cm 깊이는 근육층까지 뚫고 들어간 창상이 있었다고 진술했으며, 어떤 물건에 의한 상처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우선 "부러진 화살"이 사라진 점에 대해서 살펴보자. 가장 직접적인 증거가 되는 피해자의 혈흔이 묻은 화살, 부러지고 끝이 뭉툭해진 화살이 없다. 즉 피해자가 “화살에 맞았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고, 피고인도 이 점을 지적하였다.

피해자의 진술을 제외하고, 피고인이 자백하고 현출된 증거들만 조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관계가 성립한다. 피고인은 석궁을 들고 피해자 집에 찾아가 위협하였다 ▻ 둘이서 몸싸움을 하였다 ▻ 피해자의 복부에 창상이 발생하여 피가 흘렀다. 이게 끝이다.
피해자의 진술을 제외하면 그 어떤 목격자(제3자)도 피해자의 복부에 화살이 꽂혀있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피해자의 진술을 빼고 나면, 피해자의 복부에 난 상처가 “화살”로 인한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화살 때문인지, 나뭇가지 때문인지, 젓가락 때문인지에 대한 증명이 없는 것이다. 바로 부러진 화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 피고인의 화살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는 공소사실은 순전히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피해자의 진술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필자가 전편에서 피고인이 2심에서 재차 주장한 증인신청을 기각한 것은 “공판중심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혹자는 "사람을 칼로 찌르고 칼을 바다에 던져버리면 무죄가 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럼 미국 같은 나라에서 총기사고가 나면 총알을 찾아 피의자의 총기 탄흔과 비교하려고 무던히 애쓰는 자들은 왜 그러는지 반문하고 싶다. 이는 적어도 법률지식을 가진 자가 "이론"으로써 내세울 수 있는 논리는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후진적 "사법현실"으로써 내세울 수 있는 논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사법현실은 매우 후진적인 것은 맞고, 검찰과 경찰이 워낙에 증거관리를 엉망진창으로 하고 있으니, 완전히 틀린 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직접 증거가 없는 성폭행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유죄를 인정하는 사례도 있으니,

석궁사건 역시 공소사실의 유무죄 여부는 나머지 증거들과 피해자의 진술을 덧대어 그 신빙성을 판단하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는 없다는 법원의 논지에는.... 아쉽지만 일부 수긍한다손 치자.

그런데 법원이 신뢰한다는 그 피해자의 진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피해자는 2007. 8. 28. 서울동부지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화살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빼내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하고 있다. 즉 “화살을 쏠 때의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화살이 박혀 있었다.”는 것이었고, “화살을 쏘는 소리, 석궁 발사에 따른 진동은 느끼지 못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1심 7차 공판조서 그대로의 내용이다.

즉 피해자는 피고인이 화살을 쏘는 장면을 보지도 못하였고, 쏘는 소리도 들은바 없으며, 진동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복부에 화살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빼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피해자의 진술을 모두 100% 신뢰하더라도, 피해자 역시 피고인이 석궁의 방아쇠를 당겨 이를 고의적으로 발사하는 것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가, 화살을 맞고 난 이후에 화살이 박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 진술을 100% 신뢰한다손 치더라도, 검찰이 제출한 모든 증거와 피해자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들의 진술을 취합해 보면, “피고인이 석궁을 들고 가서 피해자와 몸싸움을 벌이던 과정에서 피해자의 복부에 화살이 꽂혔다.”는 사실만이 증명될 뿐, 피고인이 석궁 한발을 "고의적"으로 발사하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피해자조차도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럼, 도대체 법원은 무엇을 근거로 하여 “피고인이 석궁을 고의적으로 발사하여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였는가? 매우 궁금하지 아니할 수 없다.

판결문을 들취보자.

1심 판결, 2심 판결, 대법원 판결 모두..
피고인이 석궁을 구입해서 주 1회 60~70발씩 사격연습을 하였고,
피해자의 집에 7번이나 찾아가 거주지 및 귀가시간을 확인했고,
화살을 장전한채 피해자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회칼을 소지하고 있었고,
안전장치를 풀고 손가락을 방아쇠 울에 넣고 피해자에게 접근하였으며,
체포 후에도 재장전 하여 다시 쏘려고 하다가 제지당하였고,
공공연히 판사를 처단하겠다고 공표하는가 하면,
체포 후에도 죽이려 했다, 응징하려고 쐈다는 진술 등을 하였다는 증거로써 유죄를 인정하였다.

그런데 특히 2심, 즉 영화에서 다룬 항소심 판결문은 피고인이 마주보고 서 있는 피해자를 향해 주저함 없이 석궁을 발사하였다거나, 몸싸움 이전에 이미 석궁이 발사되었다는 사실을 추가로 인정하면서 우발적 발사라는 피고인의 주장을 일축하였다.
그런데 1심에서는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하여 "경찰조사과정에서 왜 그렇게 진술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하였고, 2심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청이 기각당했는데, 어떠한 근거로 갑자기 1심에도 나오지 않았던 그런 사실관계까지 추가되었는지는 심히 의문이다.

여하튼 해당 판결내용을 요약하면, 석궁을 고의적으로 발사하였다는 증거는 없지만, 이런한 이유, 저러한 이유, 이런 저런 이유 등을 종합해 보면 석궁을 고의적으로 쏘았음이 넉넉히 인정된다는 취지이다.

즉, 증거는 없지만 피고인이 고의로 발사했음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일견 본다면 매우 그럴듯하다.
수차례 석궁연습 및 사전답사를 하고,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에 손을 넣어서 접근하였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고의적으로 발사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러한 법원의 취지에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고의"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니, 피해자가 이를 보지 못했다고 하여 달라질 것이 뭐 있겠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혹자는 경험칙에 비추어 당연히 인정되는 사실이라고도 한다. 그걸 굳이 증명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사실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살이 부러지지 않았고, 끝이 뭉툭해지지도 않았으며, 피해자가 중상을 입었다면, 상기한 각 사정들만으로 고의성을 추단하였다고 하여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석궁사건은 절대 그렇지 않았음은 온 국민이 아는 사실 아니던가. 화살은 부러지고, 끝은 뭉툭해졌으며, 피해자의 상처가 경미하다. 왜 그러한 중요한 사실들을.. 완전히 배제시켰느냐는 말이다.

잠깐 화두를 돌려 형사재판의 "유무죄"가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 것인지 간단히 살펴보자. 형사재판에서의 유무죄 판단은 상식이나 경험칙 따위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형사재판은 상식으로 판결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상식적인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명백하다’는 말은 적어도 형사재판에서는 함부로 사용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형사재판은 사실 수학적 증명에 가까운 명백한 증거를 요구한다. 아주 완전한 수학적 공식은 아니더라도, 범죄라는 결과가 발생 가능한 거의 모든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고 피고인의 행위에 의해 일어났음을 명백하게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판사가 신(神)이 아닌 인간(人間)이기 때문이다.

이는 본 사건이 “재판”이었음을 망각한 데서 비롯된 오판이다. 조선시대 원님께서 재판하시던 ‘관아’가 아니라, ‘법정’이라는 점을 망각한 논리이다.

앞서 강조한바와 같이, 화두는 “진실”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피고인이 “유죄”이냐 “무죄”이냐이다.

형사재판에서의 “무죄”는 “피고인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때”에만 선고할 수 있느냐?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사실이 바로 이것이다.

형사재판에서의 무죄는 피고인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때에만 선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고인이 범행을 저질렀는지, 안 저질렀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될 때에도 선고해야 하는 것이 무죄판결이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명제는 매우 유명하다.

그런데, 형사재판에서는 한 술 더 떠서.. “피고인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확신은 들지만, 증거가 없을 때”에도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매우 분노스러운 일이지만 이것도 역시 현실이다. (형사재판에서는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는, 그 이유는 다음 편에서 거론하겠다)

유명한 사건들만 예를 들어 보자.

<사례1> 배우자 있는 남녀가 모텔에서 투숙하고 나왔다고 하여 간통죄가 인정되지는 않는다. 현장을 덮쳐서 알몸으로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사진을 찍었다 해도 유죄가 인정되지 않는다. 성행위의 증거가 필요하다. 남녀가 모텔에서 투숙하고 나왔거나 알몸으로 뒹굴고 있었다면 무엇을 했겠는가.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죄가 선고되는 것은 명백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증거가 없어서이다.

<사례2> 얼마 전 모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사건이다. 한 남자가 피해자를 감금한 후 40톤의 물을 사용하였고, 피해자는 실종되었다. 아주 많은 정황들로 인해 그 남자가 살해한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지만, 살인을 입증할 수가 없었다. 결국 검찰은 궁여지책 감금으로 기소할 수밖에 없었다. 법원마저도 살인혐의가 의심스러워 수차례 선고를 연기하면서까지 자백을 권유하였지만 듣지 않아 결국 1심에서는 감금죄 등으로 15년형을 선고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증거가 없어서 살인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사례3> 한 남자가 임신한 여자에게 중국으로 같이 가자고 말하여 여자는 가진 돈 4000만 원을 모두 들고 호텔에 함께 투숙한 사실이 있었다. 이후 여자는 실종되었다. 그 남자는 여자를 죽여서 호텔에서 시신을 잘게 토막내어 버렸다고 자백하였다. 그런데 변호사 선임 이후 진술을 번복하였고, 너무나도 살인혐의가 명백하였지만 증거를 찾을 길이 없어 결국 4000만원의 사기죄로 기소하였다, 법원은 분명히 살인심증이 있다고 판단하였는지 4000만원의 사기죄에 법정최고형인 7년형을 선고하는 이례적인 사태가 있었다. 해당 사건은 항소심에서 공소사실에 없는 사유를 양형인자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형이 대폭 감형되었다.

<사례3> 3명의 남자 A, B, C가 컨테이너박스 안에서 술을 먹다가 그 중 A가 누군가의 칼에 찔려 사망하였다. 남은 B, C 중 아주 의심스러운 정황을 보인 B가 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법원은 B가 죽였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C가 죽였다는 것도 아니다. 굳이 B, C 중 한 명을 택하라면 B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사실 B가 범인이라는 확증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B와 C 모두 기소되었다 한들 둘 다 무죄가 선고되었을 것이다.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인 사람은 없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가 얼마든지 도출될 수 있는 것이 형사재판이고, 그것이 무고와 무죄의 차이점이다.

어떠한 판사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어도, 나는 모른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것이 형사재판에서 지켜야 할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본 사건에서 피고인이 석궁을 고의적으로 쏘았다는 것을 다른 제반정황만으로 보아 그 누가 “명백”하다고 하겠는가?

증거가 없다. 유일한 목격자인 피해자마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을 근거로 명백하다고 단정하겠는가?

물론 고의(故意)라는 것은 피고인의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사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결국 이러한 주관적 구성요건요소는 제반정황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반론이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수원 모 판사라는(정경진) 자 역시 “목격자도 있고 의사진단서도 있는데, 단지 흉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무죄인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일부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사건에서는 완전히 틀린 말이다.

“목격자도 있고 의사진단서도 있는데, 단지 흉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무죄인가?” 라는 한심한 생각에 빠져 있는 자들, 그것이 현재 대한민국 법정에서 재판을 하고 있는 소위 ‘판사’라는 직책을 가진 자들의 유치한 수준이다.

왜일까?

“피고인이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고, 석궁에 장착된 화살이 장력을 받아 공중을 날아, 그대로 피해자의 복부에 박혔다”는 일련의 과정이 의문 없이 설명될 수만 있었다면, 이를 두고 유죄를 인정하였다 하여 지금과 같은 심한 비난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가 보았다는 화살은 몸통이 부러져 있었고, 경비원이 보았다는 화살은 끝이 뭉툭해져 있었으며, 피해자가 입은 상처는 석궁을 근거리에서 직접 맞아 생긴 상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경미했다. 다른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 의심은 무죄를 선고해야 할 ‘합리적 의심’이 되고도 남았다.

판사라는 자들 역시 위 사실을 완전히 외면하고 있다.

목격자가 칼을 던지는 것을 보았고, 의사가 당해 칼로 인한 상처라고 진단을 내렸으며, 칼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피해자의 상처 역시 자상이 분명했다면 판사들의 논리가 맞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목격자는 있지만 칼을 던지는 것은 못 보았고, 의사진단서는 있지만 칼로 인한 상처인지는 모르겠고, 피해자는 칼끝이 뭉툭해져 있고 부러져 있었다고 진술했으며, 회칼로 찔렀다는데 상처는 문구용 칼에 찔린 수준으로 경미했다고 하면 어떨까?
그래도 무조건 유죄인가? 왜 그러한 특수한 사실들은 전혀 거론하지 않고, 이를 ‘일반적인 흉기사건’의 사례를 들어 반박하려고 하는가? 전제부터가 틀린 것 아닌가?

한번 살펴보자.

유죄의 심증은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 없이 공소사실이 진정하다는 확신이 설 때에만 인정해야 한다는 점은 법률에도 규정되어 있고, 이를 강조하는 대법원 판례는 수백개도 더 나오고 있다.

그런데, 본 사건은 어떠한가? 일단 부러진 화살이 증거로 현출되지 않은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가정해도 말이다.

분명히 피해자도 화살이 부러져 있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해서 "완전히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꺾여 있었다."고 했다. 다른 정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화살이 부러져 있었다는 것만큼은 아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화살이 부러졌다’는 것은 통상적인 발사과정에서는 도통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석궁에서 사용하는 화살은 강력한 장력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여간해서 부러지지 않는다. 몸싸움 과정에서 손으로 잡았다 하여 아무도 모르게 힘없이 부러질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설사 나무젓가락이라 해도 그렇게 쉽게 부러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만일 복부에 화살이 박힌 상황에서 몸싸움을 하면서 화살이 부러질 정도로 강한 힘이 작용하였다면, 박혀 있던 화살이 복부를 들쑤셨어야 하므로 복부의 창상이 그 정도에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로부터 화살을 건네받은 경비원은 화살 끝이 뭉툭해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피해자와 같은 취지로, 화살이 부러져 있었다고 했다. 즉...적어도... 화살이 부러지고 끝이 뭉툭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화살 끝이 어떠한 이유에서 뭉툭해질 수 있는가? 석궁에서 사용하는 화살이 겨우 옷가지를 뚫고 근육층까지 꽂혔다 해서 그 끝이 뭉툭해질 수 있는가? 피해자가 사이보그라서 강철 피부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뼈에 박히거나, 옷가지 속에 있는 휴대전화나 열쇠 등 아주 딱딱한 물건에 박힌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부러지고 끝이 뭉툭해졌다는 것 단 하나만 보더라도 화살이 어딘가 딱딱한 물건에 아주 세게 부딪혔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을 가질 수 있는 충분한 사유가 된다. 즉 발사 이후 다른 외부간섭 없이 그대로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박힌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그 의심의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이다.

피고인이 고의로 발사하였다는 공소사실을 의심해 볼만한 정황은 여기에도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의 상처가 너무 가볍지 않은가? 그 두꺼운 전화번호부마저도 관통할 수 있는 위력의 석궁이다.

일각에서는 피고인이 직접 다다미에 연습을 할 때에도 1cm 가량만 꽃힐 때도 있었고, 석궁전문가도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역시 한심하고 황당한 주장이다. 단지 경우에 따라서는 위력이 약하게 발사될 때도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항상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아닐 가능성”이 있다면 무죄를 선고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데,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는 논리로 반박하는 것은 형사절차를 모르고 하는 치기(稚氣) 어린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A라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가능성과, B라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가능성이 공존한다면, 그래서 그 결과를 알 수 없다면, 당연히 피고인에게 유리한 A라는 가능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석궁전문가까지 나와서, 비껴맞으면 그런 미약한 상처가 가능하지만, 제대로 맞아 "화살을 뽑을" 정도였다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발사된 화살이 끝이 뭉툭해져 있고, 부러져 있었으며, 상처가 통상의 상처에 비해 너무나도 경미하다.
다른 사정은 모두 제쳐놓고 단 위 3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그 화살은 피고인이 들고 있던 석궁에서 발사되어 공기저항 외에는 다른 저항 없이 곧바로 피해자의 복부에 꽂힌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다른 경로를 통해 복부에 꽂혔을 가능성에 대하여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는 사유가 넘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피고인이 석궁발사 연습을 100번을 했건 1000번을 했건, 가방에 회칼을 들어있었건 박격포가 들어있었건 말이다.

그렇다면 화살이....
석궁에서 튀어나가 옷을 관통하고 피부를 뚫는 과정에서 끝이 뭉툭해지고 부러졌던 말인가? 합판과 전화번호부도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뚫어버리는 화살이.. 고작 옷가지와 인간의 피부를 관통하면서 부러지고 마모되었다는 말이더냔 말이다!!!!

필자 같이 물리학에 대해 전혀 아무런 지식이 없는 문외한도.. 그러한 정황만으로 본다면, 화살이 어떠한 매우 딱딱한 물체에 사선(斜線)으로 날아가 튕겨나가면서, 화살 끝이 마모되었고 튕겨나가는 반동에 의해 꺾였을지도 모른다는 그러한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만일 "부러진 화살"만 수거했더라면, 그런 의문점을 해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모된 측면과 부러진 방향을 유추할 수 있었고, 화살촉 부분의 성분을 검출하였다면 어디에 맞아 부러졌는지, 벽에 먼저 맞고 피해자에게 맞았는지, 피해자에게 맞고 난 후 벽에 맞았는지 여부도 알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증거감정 결과, 먼저 피해자 복부에 맞고 난 후 벽에 맞아 부러졌다는 사실이 입증되기만 하였다면, 마음 놓고 유죄를 선고하였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고, 아무도 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러진 화살이 사라진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이상한 정황이 많아 공소사실 이외에도 아주 다양한 여러 가지 ‘다른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그 중 단 한 가지 가능성만이 유일하다고 단정하고, 유죄를 선고한다는 말인가!

의도되지 않게 방아쇠가 당겨져, 다른 곳으로 날아간 화살이 튕겨나오면서 상해를 가했을 가능성, 이미 빗나가 부러져 떨어진 화살을 잡고 실랑이를 하던 과정에서 우연히 화살이 복부에 박혔을 가능성, 아니면 정말 예상할 수 없었던 뜻밖의 사정에 의해 창상이 생겼을 가능성 등등등.

법관이 아니라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그 정도의 의구심은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다른 가능성의 정도가, 사실 완전이 개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발생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가설에 불과한가?

그럼 공소사실과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를 겨냥하여 석궁을 발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복부에 화살이 박히기 전에 부러지고 마모될 수 있는 가능성은 다른 가능성을 모두 무시해도 될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인가?

사람을 향해 석궁을 직접 발사했는데도
부러지고 끝이 마모되면서 경미한 상처만 입을 가능성? 실현 가능한 이야기인가?

오죽하면 검찰도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석궁에서 발사되어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한 화살이 부러지고 끝이 뭉툭해졌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어떠한 가설로도 정말 명확하게 설명되지는 않고,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부러진 화살이라는 결정적 증거물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그러한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자기들이 선택하고 싶은 가능성을 골라내고, “확신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제넘게 말이다. 어떻게 확신하느냔 말이다. 판사가 神이라도 되는가? 다른 가능성이 그렇게도 많은데 말이다.

뭐 화살이 곧바로 복부로 날아갔건 안 날아갔건 무슨 상관이냐? 상관 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화살이 곧바로 날아가 맞았는지 아닌지 여부는 고의성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석궁을 소지하고 1~2m 내의 근거리에서 사람을 향해 조준발사했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곧바로 명중시켰을 것이다(게다가 석궁발사연습을 열심히 하였다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석궁에서 날아간 화살이 곧바로 피해자의 복부에 맞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 그것은 곧 석궁을 장전한 상태에서 피해자를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 이는 곧 고의적인 발사가 아닐 가능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분명 ‘석궁을 피해자에게 고의적으로 발사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원은 석궁을 고의적으로 발사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검찰이 ‘법관으로 하여금 공소사실에 대한 아무런 합리적 의심 없는 확신’이 없을 정도로 입증을 다했다고 한다.

검찰은...
석궁이 왜 부러졌는가, 왜 끝이 뭉툭해졌는가, 부러진 화살은 어디에 갔는가, 왜 상처가 깊지 않았는가에 대해서 “모른다”고 했다. 검찰이 중요한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데, 판사는 유죄에 필요한, 전혀 다른 의심을 할 수조차 없을 정도 확신이 들 수 있는 모든 입증을 다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법관이 뭘 근거로 ‘합리적 의심 없는 확신’이 들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필자를 포함하여 수백, 수천, 수만, 아니 수십만명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제기하고 있는 ‘의구심’은 법률에 대해 모르는 바보들의 돌대가리에서 나온 지극히 비합리적인 과대망상이란 말인가? 수십만명이 ‘이상하다’고 외쳐도, 법관 단 1명이 ‘이상하지 않다’고만 하면, 그것은 이상하지 않은 것이 되는가?

그럼 어디에 부딪혔다는 말인가?
다른 곳에 맞은 화살이 어떤 경로로 피해자의 복부로 다시 날아갔다는 말인가? 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은 그러한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은 무죄를 입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화살이 튕겨서 맞았건, 아니면 화살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날았건, 외계인이 날아와 피해자의 복부로 집어던졌건간에, 화살이 부러지고 마모되었다는 사실은 곧 화살이 직접적으로 피해자의 복부에 박혔지 “않았을” 가능성을 충분히 시사하고 있고,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은 그러한 점을 지적하면서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을 탄핵하면 그만이다.

앞서 예로 든 콘테이너박스 살인사건을 상기해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재판에서 B는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했을 뿐, C가 죽였음을 입증했기 때문에 무죄가 선고된 것이 아니다. 법원 역시 C가 죽였다고 확신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B와 C를 비교하여, 그 중 C가 죽였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B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도 아니다. C가 죽였을 가능성은 더더욱 낮다. 그러나 단지, 오로지 각 증거들만으로 봤을 때는 B가 죽였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FM판결이고 형사재판에서 당연히 지켜야 할 원칙인 것이다.

복부에서 빼낸 화살, 이미 부러져 있었고 끝이 마모되어 있었으며, 상처가 경미하다면, 화살 발사 이후 상해를 가하기 이전에 다른 물리작용이 있었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부러진 화살이 사라졌기 때문에 도대체 어쩌다 화살이 그 지경이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법원은 이를 완전히 배제하였다. 그것도 아주 의도적으로 말이다.

그러면 어떤 판단이 내려졌어야 하는가? 아주 간략하게 관련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가상의 판결문을 한번 예정해 보자.

(전략) “검찰의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위험한 물건인 석궁을 휴대하여 피해자에게 석궁을 조준 발사한 결과 피해자의 복부에 2cm가량의 창상을 야기하였다는 것이고, 피고인의 범행 전후의 각 행적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향해 석궁을 발사하였을 것이라는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피고인이 고의로 석궁을 발사하였음을 입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고, ② 만일 피고인이 고의적으로 석궁을 발사하였다면, 피해자는 피고인이 석궁을 조준하는 장면을 보았거나 최소한 석궁이 발사되는 소리 또는 진동을 느꼈을 것이고, 더 나아가 화살이 박히는 순간 복부로 화살이 뚫고 들어오는 충격, 통증 등으로 인해 피해자가 석궁에 맞았음을 즉시 인지했어야 할 것임에도, 피해자는 당시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복부에 박혀 있는 화살을 나중에 발견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③ 피해자는 복부에서 빼낸 화살은 부러져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고, 피해자로부터 화살를 건네받은 경비원은 그 끝이 뭉툭해져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만일 석궁에서 발사한 화살이 피해자에게 직접 상해를 가하였다면 의복과 피부를 관통하는 과정에서 화살이 부러지거나 끝이 쉽게 마모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점, ④ 피해자가 입은 상처가 통상적인 석궁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상처에 비해 경미하다는 사실(검찰은 경우에 따라 석궁의 위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일반적이지 않은 특수한 경우를 전제한 것일 뿐이기에, 그러한 특수한 사정에 대한 입증만으로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을 더해 생각해 보면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이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하기 이전에 다른 물체에 부딪혔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점, ⑤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1 내지 2미터 내외의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석궁을 조준한 상태에서 상해를 가할 고의로 방아쇠를 당겼을 경우 화살은 다른 외부요인 없이 곧바로 피해자의 복부에 박혔을 것이므로 앞서본바와 같이 화살이 부러지거나 끝이 뭉툭해졌음을 설명할 수 없고, 피해자의 상처가 2cm 가량의 창상에 그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점 등을 모두 종합해 보면, 당시 피고인이 소지하고 있던 석궁이 다른 곳을 향한 상태에서 화살이 발사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할 것이다. 만일 석궁이 피해자를 조준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설령 피고인이 고의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로써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히고자 하는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하고, 검찰이 제출한 나머지 각 증거를 모두 취합해 보더라도 단지 피고인이 소지하고 있던 화살로 인해 피해자가 알 수 없는 경로로 인한 상해를 입었다는 사실만이 증명될 뿐 달리 위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를 찾아볼 수 없어(당시 경비원은 피해자가 ‘석궁에 맞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하나, 이는 피해자로부터 전해들은 전문에 불과하고 경비원 역시 피고인이 석궁을 발사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당시 정황을 기억할 수 없다는 피해자의 본 법정 증언을 배척하고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법관으로 하여금 아무런 합리적 의심 없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할 고의로 석궁을 발사하였다는 공소사실이 진실에 부합할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입증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으므로(오히려 검찰은 앞서 본 각 사실에 대하여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다고 진술하고 있다), 피고인에게 과실치상의 죄책을 묻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피고인에게 상해고의가 있었음을 전제로 하는 이 부분 검찰의 공소사실은 결국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52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다만 피고인이 위험한 물건인 석궁을 휴대한 상태에서 피해자의 멱살을 잡아 그 곳 현관 바닥에 넘어뜨려 피해자에게 오른쪽 팔꿈치의 열상과 오른쪽 옆구리의 둔상 등의 상해를 가하여 결과적으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제3조 제1항 및 제2조 제1항 제3호를 위반한 범죄사실을 저질렀음은 분명하므로, 이를 따로이 주문에는 표시하지 않는다. (후략)

자..만약 이러한 판결이 선고가 되었다면 어떨까?

사법부에서는 일개 소시민에 불과한 필자가 감히 건방지게 실제 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작성하였다고 분개하면서 길길이 날뛸 것이 예상된다마는,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런 반응이 기대된다. 일개 소시민이 판결문을 썼다고 하여,

그것이 건방지다고 하면 특권의식의 표명이고, 법률도 모르는 자가 쓴 판결문이라고 해봐야 엘리트의식의 발현일 수밖에 없을테니까. 대한민국에서 일개 소시민이 가상의 판결문을 작성해서는 안된다는 법은 없다.

각설하고....

이러한 판결이 선고되었다 하더라도 상급심에서 “위법한 판결”이라고 하면서 파기할 수 있었겠는가?
만일, 위법한 판결이라면, 도대체 어떤 점에서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는 말인가? 지적해 보라.

상기한 사실을 모두 도외시하고, 공소사실을 그대로 진실로서 단정하고 반드시 유죄를 선고했어야만 합법적인 판결인가?

피고인이 석궁 발사연습을 하고, 공공연히 처단하겠다고 공언했고, 안전장치를 풀고 장전한 상태에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피해자에게 다가갔다면, 복부에 박혔던 화살이 부러졌건, 끝이 뭉툭해졌건, 산산조각이 났건,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아갔건간에, 다른 사정 모두 무시하고 무조건 화살이 석궁에서 벗어나 직접 피해자에게 박혔다고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하였어야 하는가? 형사소송법에 그렇게 하라고 규정되어 있느냐? 대한민국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분명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규정되어 있다.

말해 보라!! 그리고 위 가상의 판결문이 어떤 점에서 잘못된 판결인지 지적해 보라!!

위 가상의 판결문에서 제시하는 ‘의구심’이 아주 비합리적인 과대망상인가? 한 인간이 4년을 감옥에서 썩느냐 마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판단을 하기에 앞서, 이러한 의심을 하고, 이러한 의심을 기초로 ‘공소사실이 진실이라고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단순히 한심하고 소심한 기우(杞憂)에 불과하단 말인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은 하지 마라. 재판에서는 그런 말이 통할 수 없다. 판결문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글인가? 판사들이 보는 관점이 다 다르니,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면 다른 판사가 담당했다면 무죄가 선고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재판이다. 한 인간의 인생이 송두리째 박살날 수도 있는 “형사재판”이다. 보는 사람마다 다른 결론이 날 수 있다면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가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된다는 말밖에 더 되는가?

재판은 뽑기가 아니다.

어떤 피고인에 대한 유무죄의 인정여부는 피고인이 어떤 판사를 만나냐는 사주팔자에 의해 좌지우지 될 것이 아니라,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이 있는지 여부를 가리는 채증법칙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더냐.

대한민국 형사절차법은 판사들에게 유무죄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묻고 있지 않다. 유무죄의 판단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입증의 문제이고, 이는 “판사 개개인의 생각”에 의해 좌우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의 인정분야는 판사들의 생각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은 양형을 결정할 때나 동원하는 것이다.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채증법칙을 정확하게 지킨다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같은 사건을 10명의 판사에게 판단하도록 하더라도 같은 결과가 도출되어야 한다. 현실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10명 중 8명은 같은 결과를 도출하여야 할 것이고, 3심을 모두 거친면서 그 오류는 차차 시정되어야 하기에, 최소한 마지막 결론은 동일해야 할 것이다.

같은 사건을 10명의 판사에게 판단하도록 하면, 판사의 주관적 관점에 따라 결론이 제각기 틀리다고 하면, 재판은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른 ‘뽑기’가 될 수밖에 없다. 형사재판이 ‘뽑기재판’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형사절차법이 엄격한 채증법칙을 강조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렇게 채증법칙을 엄격하게 지킨다면, 사실 거의 대부분의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를 그렇게 엄격하게 지킨다면 어떤 사건을 진정 유죄로 본다는 말이냐는 성토가 이어질 법도 하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것은 범죄의 입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무능하고 게으른 검찰의 탓이지, 국민들의 탓이 아니다. 왜 국민들이 검찰의 무능함으로 인해 피해를 보아야 하는가? 그런 징징바리는 검찰에 가서 하던가, 아니면 국회에 가서 법률을 고쳐달라고 떼를 써야 할 문제일 뿐이다.

사법부는 법률에 어떠한 규정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조건 법률에 따라야 할 집단이지, 법률을 어기거나 자기들 입맛에 맞추어 자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률이 정 맘에 들지 않으면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면 되지 않느냐?

만일, 피해자가 판사가 아니었다면 부러지고 마모된 화살을 그토록 송두리째 완전히 무시할 수 있었을까? 만일 판사가 자기 아들을 시험에 떨어뜨린 교수를 찾아가 석궁을 쏜 후 “대학의 밀실채점을 응징하였다!!”고 외쳤어도, 모든 다른 정황을 무시하고 똑같이 판단했을까?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분명히 채증법칙을 위배한 위법한 판결이었다. 그리고 대법원마저도 이를 옹호해 주었다.

분명히 고의성을 확신할 수 없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는 사정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그것을 모두 무시하였다. 재판이 개판이라는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뭐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냐? 국민들이 조선시대에 살던 글자도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으로 아는 처사이다. 적어도 피고인의 고의성을 전제로 한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어야 한다.

그럼 피고인에게는 아무 죄도 없었단 말인가?

그건 아니다.

분명 위험한 흉기인 석궁을 들고 판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단하겠다는 목적에서 말이다. 그리고 어떤 경로에서이건간에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다. 결론에는 변함이 없다. 위험한 물건인 석궁을 휴대한 상태에서 팔꿈치와 옆구리에 상해를 가했으니, 폭처법상 흉기휴대상해가 될 수는 있었겠지.

결국 "흉기휴대상해"라는 죄명에는 영향이 없어 주문에는 표시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석궁을 고의로 발사하였느냐?"는 점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어야 하는 사안이 아니었는가? 최대 쟁점은 "석궁을 고의로 발사하였는가?"이니까 말이다. 만일 석궁발사의 고의성이 부정되었더라도, 이론적으로는 징역 4년형을 선고할 수 있었다. 근데 왜 석궁발사의 고의성을 그대로 밀어붙였냐는 말이다.

만일...
법원이 피고인에게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고자 했다면, 게다가 피해자가 판사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콩밥 맛이 어떤지 보여주고 싶었다면, 검찰에게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여 옆구리와 팔꿈치의 열상에 대해서는 흉기휴대상해를.. 석궁을 발사한 사실에 대해서는 “과실치상죄”를 적용하였어도 충분하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구태여 모든 사실을 외면하고, 아주 무리하고 유치한 방법을 동원해가면서까지 피고인을 끝까지 "고의범"으로 몰고 갔다.

왜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이유는 1편에서 나오지 않았느냐.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대법원의 주도하에 피고인을 미리 테러범으로 낙인을 찍어놓았기 때문이다. 사법부 스스로 ‘사법부에 대한 테러’, ‘법치행정에 대한 심각한 위협’ 등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단어를 사용해 가면서까지 피고인을 테러범으로 낙인찍는 설레발을 쳐놓았고, 이미 대대적으로 보도가 나간 뒤였다.

그런데 사법부 스스로 재판을 해 보니 결론이 "과실치상"이라니?? 사법부 수뇌부들이 모여 “테러범”으로 낙인찍은 자가 스스로 다시 재판을 해보니 “과실범”으로 판명났다???

이미 저질러놓은 언행과 배치되고, 미리 찍어놓은 낙인에도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즉 만일 피고인을 과실범으로 다루게 되면 다른 이도 아닌 사법부의 수뇌부들이 부여한 "테러범"이라는 이름에 결코 어울리지 않고, 결국 사법부는 국민들의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사법부는 이 점을 의식한 것이다.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던 것이다. 결론은 미리 정해져 있었고, 온 국민이 그 결론을 알고 있다.

그래서 “밀어붙였던” 것이다. 그래서 "찍어눌렀던" 것이다. "고의범"으로 말이다.

사법부는 채증법칙을 분명히 위반했다. 다른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충분히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깔아뭉개었다. 그것도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는 너무 티가 나는 초보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떳떳하게 말하고 있다. 심지어 판사들마저도, 그리고 교수, 변호사 등의 명함을 내밀고 있는 전직 판사들까지 동원해 가면서 말이다.

얼마나 치사하고 치졸하며 유치한 발상인가. 아직도 석궁재판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국민들을 호도할 셈인가? 사법부는 국민들을 조선시대에 살던 “어리석은 백성”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일각에서는 피고인이 “피해자가 자해를 했다.”는 주장이 말이 안된다고 하면서 사법부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일부 판사들마저도 이런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 글을 정독한 사람도, "그렇다면 피해자가 자해를 하였다는 취지인가?"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 역시 피해자가 자해를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하고 혈흔감정신청 기각이 적법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자해를 했는지 안했는지 여부는 본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

왜일까?? 이러한 논리를 동원한 항변은 그야말로 “궤변”이다.

왜 그런지는 다음 편에서 다루겠다.

<제4편 재판 後>

사법부는 지금도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벌써 25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영화를 관람했고, 곧 300만 관객을 넘길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필자 역시 영화를 개봉하던 날 가서 관람하였는데, 필자가 느꼈던 점은 무언가 ‘몸을 사렸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메시지가 좀 약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길에 목격한 주변 관객들의 평은 달랐다. 법관을 선거로 뽑아야 한다, 사법부가 원래 저런 곳이다, 등등... 다들 몹시나 흥분하고 분개해 있었다.

아무래도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그 정도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석궁재판보다 훨씬 심각하고, 훨씬 리얼하며, 훨씬 충격적인 결말을 야기한.. 알고 나면 정말이지 기절하고도 남을 사법테러 사건들이 주변에 널리고 널렸건만, 고작 석궁사건 정도에 그토록 큰 충격을 받다니... 작금의 사회적 파장 역시 필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것은 사실이다.

여하튼...
대법원은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던 것은 분명하다. 대응매뉴얼까지 배포하였다는 사실이 어쩌다보니 언론에까지 흘러들어가지 않았느냐.. (덕분에 영화 흥행에는 꽤나 도움을 주는 케이스가 되고 말았다)

영화가 개봉된 이후 평가는 둘로 나뉘었다.

1. 사법부는 정말 쓰레기다.
2. 실제 사건기록을 보지 않고서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처음에는 사법부를 욕하는 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피고인의 홈페이지와 당시 2심을 변호하였던 변호사가 공판기록을 공개하고 나니. 사법부를 옹호하는 입장에 좀더 무게가 실리는 듯 했다.

“실제 공판기록을 보니, 피고인이 진상이더라.”
“피해자가 자해(自害)를 했다는데, 그게 말이 되냐?”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는데, 피고인이 활쏘기 연습을 엄청나게 많이 하고 갔다고 하더라.”
"범죄자를 미화하는 것 아냐?"

거기에 소위 ‘평론가’라고 불리우는 꽤나 유명한 자가 필리핀에서 “공판기록 다 봤다. 영화는 허구이다. 믿지 마라.”면서 눈으로 보지 않은 영화를 손가락으로 평론하고 있고, 이에 그치지 않고, 본인 스스로 법률에 대해 문외한이면서 마치 재판이 무엇인지 아는 것처럼 ‘경험칙’ 운운하며 변호사를 상대로 논쟁을 하자고 떠들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진실공방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일각 과거에 법복을 입은 경험이 있는 자들이 기다렸다는듯이 ‘교수’나 ‘변호사’ 이름으로 공공연히 언론에 나와서 마치 전문적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양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꾸며서 하는 말이.. “해당 판결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국민들이 법에 대해 잘 몰라서 오해하는 것이다. 영화가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부 판사들까지 가세하여.. 본 사건과 전혀 다른 사례를 들어가며 석궁재판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공방을 펼치고 있고, ‘엔하위키’에는 법대 2학년 정도의 수준으로 보이는 자가 ‘비전공자가 보면 잘 모를 수도 있다.’는 말로써 자기는 '전공자'라고 과시하며 "판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자, 많은 이들이 이를 ‘리트윗’ 하면서, 진실공방은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자...어떤가?

필자가 앞에서 아주 장~~황~~~하게 설명하였다시피, 석궁재판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인가?

재판 시작 전부터 헌법에 위반하고, 재판 과정에서 지켜야 할 기본원칙을 뭉개고, 재판 결과 또한 채증법칙에 전면 위배하여 고의범으로 몰고가지 않았던가?

도대체 석궁재판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 (뭐 그 중에는 법률에 대해 문외한인 자들도 다 아는 것처럼 끼어들고 싶어하고 있으나, 별 의미없는 자들이기에 일단 그들은 논외로 하고..)

그들은 형사재판의 기본원칙은 고사하고, 최소한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기초지식이라도 있는 자들인지 되묻고 싶다.

그래놓고 “일반인들은 법에 대해 잘 모르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일변하고 있는 것이다.

법에 대해 잘 모르니까? 웃기지 말라고 해라. 그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연막탄일 뿐이다.

법에 대해 잘 몰라서 이 정도로 욕먹고 있는 것에 그치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다
.

사법부가 어떠한 방식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지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한번 살펴보자.

그들이 가장 전면에 내세우는 주장이 무엇이더냐?

“그럼 피해자(박홍우 판사)가 자해(自害)라도 했단 말이냐?”

그럴듯한 궤변이다.
명색이 판사인데, 교수 한 명 내몰려고 배에다가 화살을 스스로 꽂았을 리는 없지. 그런데도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해를 했다!”고 줄곧 주장하고 있으니, 얼마나 꼼수를 부리기 좋은 소스인가.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해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해를 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피해자를 재차 증인으로 신청하였던 것이며, 같은 취지에서 “피해자의 혈흔이 아닐 수도 있다.”면서 혈흔감정신청을 하였으니..
만일 피해자가 자해를 하였을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만 있다면, 증인신청과 증거신청을 차례로 기각하였더라도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논리가 성립 가능하지 않겠느냐.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은 석궁발사연습 사실 등도 가미하면서 영화가 의도적으로 이를 숨겼다고 강변하면, 국민들 입장에서는 “아...당시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오인할 만도 하다.

실제로 논쟁 과정에서 사법부를 옹호하는 입장에 있던 자들도, 위와 같은 정말 그럴듯한 궤변에 말려 다시 생각을 바꾸는 자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하지만....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이지 치사하기 그지없는 꼼수가 아닐 수 없다.

왜일까???

그들은 국민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형사재판"과, 국민들이 좀더 잘 알고 있는 "민사재판을" 혼동시켰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고의적으로 말이다.

변호사의 자문을 거쳤다는 영화에서도 실수로 “피고인”을 “피고”로 잘못 표현하는 장면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국민들에게는 형사재판보다 민사재판이 훨씬 익숙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는 “피고인”보다는 “피고”라는 말이 더 친숙하고, "피고인"이라는 단어는 생소하다.

원고, 피고, 증인신청... 뭐 이런 말은 대부분 다 아는 단어들이니지만, 공판, 피고인, 공판검사, 뭐 이런 말들은 많이 생소할 것이다.

자...그럼 어떤 방식으로 국민들이 속고 있는 것인지 살펴보자.

사법부를 옹호하는 자들의 논리는...
1. 검찰 주장 ->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석궁을 쏘았다.
2. 피고인 주장 -> 피해자가 자해하였다.

"위 2개의 주장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설득력이 있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피고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면 무죄이고, 피고인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으면 유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영화에서 다룬 일부 내용이 아니라 사건 전말을 다 파헤쳐 보면... 당연히 판사인 피해자가 자해를 할 리는 없고, 피고인은 석궁발사연습까지 하며 마음먹고 간 자이니.. “피해자가 자해를 하였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러므로 피고인의 증거신청을 기각하고 유죄를 선고한 판결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이러한 논리는 - 참으로 통탄할 일이지만 -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자....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다.

형사재판은 말이다... 원고와 피고, 두 대립당사자들의 주장 중에서 원고의 주장과 피고의 주장 중 누구의 주장이 맞느냐를 판단하는 "민사재판"과는 전혀 다르다!!!! (엄격히 따지면 민사재판도 원고와 피고 중 누가 진실을 말하느냐를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변명을 들어보고, 그 변명이 말도 안되는 개소리임이 분명하면, 가차없이 유죄를 선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일까?

초등학생들도 아는 “묵비권”이 있다. 그 내용은 다들 알 것이다. “말 안해도 된다.”는 것이다. 말 한 마디 안해도 전혀 불리하게 처우받지 않는다.

경찰이 범인을 검거할 때에도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강요받지 아니할 권리가 있으며...”라고 말하지 않는가? 미란다의 원칙 말이다.

그런데.... 피고인의 변명의 신빙성으로 유무죄를 판단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느냐?

A는 묵비권을 포기하고 수사에 협조하면서 변명을 하였는데, 그 변명이 전혀 설득력이 없어 결국 유죄로 처벌받았다. B는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는데, 끝내 검사는 범죄사실을 입증하지 못하여 무죄가 선고되었다.

A는 그나마 수사에 열심히 협조하면서 변명하였는데, 그 변명이 말이 안된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바람에, 말 한 마디 안한 B보다 훨씬 불리한 결과가 야기되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이게 말이 되는가?

말도 안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법원은 이렇게 말하였다.
“형사재판에서 유무죄의 판단은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의 문제이지, 피고인의 변명에 대한 당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피고인의 변명에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하여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아서는 아니된다.” (판례를 찾아보기 귀찮아서 그냥 머릿속에 있는 판례의 취지를 적은 것이니, 실제 판례와 문구가 다를 수도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묵비권을 행사하지 않은 자에게 묵비권을 행사한 자에 비해 불리한 결과를 감수하게 해서는 안된다.

형사재판의 입증책임은 무조건 “검사”에게 있다. 단 0.1%도 모자라지 않은 순수한 100% 모두 검사에게 입증책임이 부여된다.

쉽게 말해서...
피고인이 “무죄”임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가 “유죄”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깟 입증책임이 뭐가 대수냐고? 대수다. 민사재판에서도 “입증책임”의 문제는 승패와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사실상 입증이 불가능한 사실이 요건사실이 되어버리면, 입증책임을 지는 자가 패소하게 된다. 그 정도로 입증책임은 중요한 것이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와 보자.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해를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피고인이 “피해자가 자해를 하였다”는 주장사실에 대한 입증에 실패하면 유죄를 달게 받아야 하는가?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해를 하였음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0.000001%도 없다.

피고인의 주장은, 그가 뭐라고 말하였건간에, 법적으로는...말이다.. “석궁을 쏘았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否認)하는 발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즉... 피해자가 자해를 하였는지, 화살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알아서 날아갔는지, 외계인이 UFO를 타고 내려와 화살을 내리꽂았는지, 도대체 그 원인은 모르지만, 여하튼 나는 석궁을 쏘지 않았다는 말...그것일 뿐이다.

그리고 피고인은 석궁을 쏘지 않았는데, 피해자의 옷에 구멍이 뚫려있고, 피가 묻어있으니, 피해자가 자해를 하면서 증거를 조작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 뿐이라는 점이다. 즉 석궁을 쏘지 않았는데도 피가 묻어있는 결과를 야기한 그 인과관계에 대하여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서 한 가지의 "가능성"을 제기한 것 뿐이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자해장면을 보았다고 주장한 것도 아니었고, 석궁재판이 피해자의 "무고혐의"를 다투는 재판도 아니지 않았더냐. 그런데 뜬금없이 "피해자가 자해하였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신빙성의 판단이 왜 등장하느냐는 말이다.

피고인이 피해자가 자해를 했다고 말했건, 화살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날아갔다고 했건, 외계인이 UFO를 타고 와서 찔렀다고 했건.. 이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의사의 표시일 뿐이라는 것이다.

피고인이 “외계인이 UFO를 타고 나타났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하더라도.. 피고인이 “외계인이 UFO를 타고 나타났다.”는 점을 입증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피고인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을 따질 이유도 없고, 더 나아가 그러한 주장의 신빙성이 유죄의 인정근거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못믿겠다는 자도 있을 수 있으니 부연설명을 하겠다.

형사재판 과정은 다음과 같다.

경찰과 검찰에서는 피의자에 대한 수사기록을 작성한다. 피의자신문조서와 각종 증거문건들을 첨부한 거대한 분량의 수사기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단 기소가 되고 나면 해당 수사기록들이 모두 판사한테 넘어가느냐? 아니다. 공소장만 넘어간다.

그 이후 피고인에게 증거에 대한 동의(同意)와 부동의(否同意) 절차가 진행된다. 피고인에게 증거 중 동의할 곳과 동의하지 않을 곳을 결정하도록 한다는 말이다.

수사기록 중에는 다른 사람들의 진술조서도 많다. 고소인의 진술, 참고인의 진술 등등...

당연히 피고인은 자신에게 유리한 자의 진술조서에는 동의하지만, 고소인과 같은 자신과 적대적인 자의 진술조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면 일단 검찰은 피고인이 동의한 증거만을 법원에 송부한다.

그럼 고소인 등 피고인에게 적대적인 자들의 진술조서는 폐기하느냐? 아니다.

검찰은 그들을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세운다. 피고인이 100명의 진술을 부동의 하였고.. 검찰에서는 100명의 진술조서를 모두 증거로써 판사 앞에 내놓고 싶다면 법정에 100명의 진술자들을 모두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

그들을 증인으로 불러서 무엇을 하느냐?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물어보느냐? 아니다.

검찰은 증인에게 그 요지만을 물어본 후... 그들이 작성한 진술조서를 펴들고,
“이거 증인이 작성한 것 맞지요?”
“이거 증인이 직접 찍은 지장 맞지요?”
“진술내용 다 확인하고 지장 찍은 것이 분명하지요?”

이게 주요 내용이다. 그래야만 증거로 채택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기껏해야 그거 물어보려고 멀리서 사람 불러놓고 증인신문을 진행하는 것이다. (물론 변호인이 있다면 반대신문이 진행되지만, 적어도 검찰 입장에서는 말이다)

100이면 100 모두 나와서 “제가 진술한 것이 맞습니다. 제 도장입니다. 진술내용 다 확인하고 도장 찍었습니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왜 굳이 법정까지 데리고 와서 선서하고 증인석까지 앉히냐는 말이다.

이유는 단 한가지다.
“피고인이 부동의 했으니까”

피고인이 부인한 증거는 검사가 입증해야 한다. 무조건이다. 왜냐...검사가 100% 입증책임을 부담하므로... 그러니까 쓸데없는 사람들이라도 법정에 불러세워서 진술조서 펴가면서 도장이 니 도장이 맞느냐를 물어보는 ‘시간낭비’에 가까운 요식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석궁사건에서 부장판사 신분의 피해자가 경찰과 검찰에서 진술 다 했는데, 뭐하러 구태여 또다시 법정까지 나와 증인석에 앉았겠는가? 피해자의 진술조서에 대해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의 진술이 아닌 물건 따위는 어떻게 되는가?

물건 자체를 동의하지 않을 수는 없다. 석궁과 화살...그것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취지”는 얼마든지 부인할 수 있다.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해를 했다.”는 주장을 하였지만, 이는 곧 피고인이 고의로 석궁을 발사하였다는 검찰의 "입증취지"를 부인한 것이고, 이는 단지 검찰에게 "피고인이 고의로 석궁을 발사하였음을 입증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는 부인(否認)의 의사표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현 논쟁상황은 어떠한가?

마치... “피해자가 자해를 하였다.”는 피고인의 주장에 대하여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구하는 당부의 판단으로 몰려가고 있지 않은가?

이는 국민들이 대립당사자 구도의 민사재판에 익숙한 나머지, 형사재판도 민사재판과 동일하게 입증책임이 “분배”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피해자가 자해하였을 리가 없다.”는 이유로 사법부를 옹호하는 자들 중에 상당수는... 그러한 착각에서 비롯한 잘못된 논리단계를 밟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법률에 대해 잘 아는 자들도 이에 가세하여... 의도적으로... 국민들의 그러한 착각을 유도하거나 이를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형사재판을 민사재판인 것처럼 교묘하게 포장하여, 피고인의 주장이 말이 안되니, 검찰의 주장이 맞다는 논리를 구성하고, 피해자가 자해하였음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신청은 "자해했을 가능성이 없으니 필요 없었다"는 말로 합리화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민사재판구도에 익숙한 국민들은 위 궤변에 홀려들기 십상이다. 그럴듯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법률은 어려우니 설명하기는 어렵다..”면서 국민들을 무식한 백성들로 치부하고 “자세히 알려고 하면 설명이 복잡하다.”면서 이에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뭐가 어려운가? 필자의 글이 이해하기 어려운가? 설명해 주기 힘든가?

아니다. 어려워서가 아니다. 숨기기 위함이다.

형사재판을 민사재판으로 포장하여 국민을 기만하려는 수작이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참으로 참을 수 없는 파렴치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기껏해야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해봐야...
석궁에 맞아봤습니까?
이게 전부이다. 대한민국 최대 법무법인 중 하나의 '대표'자리에 있는 전직 판사의 입에서 말이다. 그게 그들이 구사할 수 있는 논리의 최대 한계치이다.

왜 대한민국 사법부는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헌법까지 위반하면서 설레발을 치고, 법률을 위반하면서까지 증거신청을 묵살하고, 채증법칙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사법폭력을 저질렀을까?

재판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같은 식구인 판사에게 석궁을 쏘았기 때문에?

필자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

사법부는 제2, 제3의 석궁이 두려웠던 것이다. 유죄로 몰아 엄단함으로써, 제2, 제3의 석궁사태를 막으려 했던 것이다.

당시 재판의 문제점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사법부였기 때문에,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대응매뉴얼까지 배포하였던 것이고, 국민을 호도하기 위한 궤변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진정 사법부가 억울해서 그랬을까?

아니다.

사법부는 분명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석궁사건 발생 직후부터 현재까지도 말이다.

사법부가 떳떳하다면 석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사법부는 왜 제2, 제3의 석궁을 두려워했을까? 그것은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대한민국 사법부는 아직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을까? 자중하겠다고 말하면서 그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국민 속으로’라는 행사까지 개최하였지만,
‘국민 속이러’라는 야유를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도대체 국민들은 왜 그렇게도 판사들을 싫어하는 것일까?

봐라..
진실을 "은폐"하고, 이를 위해 국민을 "기만"하면서, 말로만 자중하겠다고 떠들고 있으니, 누가 알아주겠는가?

사법부의 문제점은 국민과의 소통이 적어서 야기된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싫어하는 것은 그들의 권위의식이다. 권위의식은 곧 그들의 엘리트의식, 특권의식, 그리고 자만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판사들에게 그 정도의 능력이라도 있으면. 비록 그것이 자만심이라 할지라도 존중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판사들의 능력이라고 해봐야...사실 국민들과 크게 다를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준엄하다.", "신성하다"는 등의 단어로써 권위만을 세우려 하고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하기로 한다.

<제5편 판사>

판사는 신(神)이 아닌 인간(人間)이다.

대한민국에서 판사가 되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신(神)만이 통과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말 어려운 과정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려운 사법고시를 패스해야 하고, 그 어려운 사법고시를 패스한 우수한 두뇌들이 경쟁하는 연수원 과정에서도 높은 점수를 획득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 누구라도 판사로 임용되고 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매우 뿌듯해 할 것이다.

하지만, 판사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다.

판사가 되었다고 하여 인간이 아닌 신(神)이 되는 것은 아니다. 판

사 역시 인간(人間)이다. 그런데 판사들은 법복을 입으면 신(神)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필자가 겪은 대부분의 판사들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물론 정말이지 겸손하고 훌륭하여 나도 모르는 존경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판사도 보았다. 하지만 정말 아쉽게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러한 판사들의 착각은, 좋게 말하면 권위의식, 나쁘게 말하면 ‘오만함’으로 이어진다.

현 사법부의 판결을 신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판사들의 오만함이다.

왜 그럴까??

법학의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이론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래서 법학은 어렵고, 사법고시에 합격하기란 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실상 실무에서는 "법학"이라는 그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법학에서 다루는 이론들은 거의 다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런지 한번 살펴보자.

민사재판이건, 형사재판이건간에 판단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아쉽게도 법률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사실관계”이다.

우선 민사소송에서는
“A가 B에게 돈을 빌렸는가? 빌렸다면 얼마를 빌렸는가?”라는 사실관계에 대한 공방이 대부분이다. 사실공방을 위해 준비서면을 제출하고 사실관계의 입증을 위해서 확인서를 제출하고, 증인을 출석시켜 신문하기도 한다. 법률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증인은 없다. 모든 공방이 끝나고, A가 B에게 돈을 빌린 사실이 인정되었다면, 남은 것은 법률판단인데, 대부분의 사건이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라는 식으로, 그 법률판단은 아주 간단하다.

형사재판은?
더욱더 간단하다. 석궁사건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때렸는가, 강간하였는가, 사기를 쳤는가, 횡령하였는가, 절도를 하였는가, 마약을 먹었는가?” 등에 관한 사실판단, 즉 유무죄에 대한 판단이 대부분이다. 사실판단이 끝난 결과 피고인이 피해자를 때리지 않았다면 무죄를 선고하면 되고, 피고인이 피해자를 때렸다면 폭행죄에 맞는 형량을 산정하여 선고하면 끝이다. 즉 "형법상 어떠한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있느냐" 여부에 대한 "사실판단"이 실무의 95% 이상을 차지한다. 나머지 법률 판단은 어떠한 법령을 적용하느냐는 아주 간단한 문제에 한정된다.

그럼 판사가 하는 일은
민사건 형사건 90% 이상이 “사실판단”의 문제이다. 즉 이런 저런 증거들을 취합하여 “A가 B에게 돈을 빌린 사실이 있을까?” 또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진짜로 성폭행 하였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판사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왜냐?

아쉽지만 판사들이 통과한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에는 그런 과목이 없기 때문이다. 헌법, 민법, 형법, 상법, 행정법 등에 그런 내용이 있는가?
없다.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에는 채증법칙의 원리들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사법연수원에서 아주 약간의 테스트를 하지만, 빈약하기 그지없다.

판례를 공부한다고?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케이스의 사건은 거 어디에도 없다.
“한 대기업 사장 비서가 강간을 당했는데, 알고보니 바지가 너무 타이트하여 스스로 바지를 벗지 않고서는 도저히 벗길 수가 없더라. 그래서 강간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판례를 배웠다고 치자. 그 판례를 배운 자가 판사가 되어, 타이트한 바지를 입었던 여자가 강간죄의 피해자로 나서는 사건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없다.
민사사건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대여금’ 사건이라도 케이스는 모두 다르다. 현출되는 증거, 다투는 사실관계, 그들 사이에 벌어졌던 일 등등...전부 다르다. 판례를 수천만개 공부했다 한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똑같은 사건은 만날 수가 없다.

즉 제아무리 판사라 해도.. 자기가 직접 보지 않은 사실을 “추론”해 내는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에 판사가 된 것이 아니다. 단지 “법률”에 대한 지식이 타인에 비해 뛰어나다는 점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판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판사들이 직접 법정에 나가면,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 배우고 익혔던 법률이 아니라, 자기가 보지 못한 “사실”에 대해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판사는 단지... “피고가 원고에게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한다.”는 지식, “피고인이 피해자를 강간했다면, 처벌해야 한다.”는 지식만을 습득한 자일 뿐이고, 현출된 증거들을 모두 종합하여 “피고가 원고에게 돈을 빌렸는가?” “피고인이 피해자를 강간하였는가?”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은 테스트도 거치지 자들이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판사라고 하여 신(神)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인간인 이상... 제아무리 판사라 해도, “XXXX년 XX월 XX일 XX시 XX분에 XXX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라는 사실에 대하여 알 수는 없고, 결국 현출된 증거나 정황으로써 이를 추론해 내야 하는데, 그러한 추론능력은 다른 일반 시민들과 차이가 없다.

사법고시에 패스하고 판사가 되었다고 셜록홈즈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추리소설을 열심히 읽은 초중등생들보다 그 능력이 뛰어나다고 단정할 수 없고,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판사들의 추론능력은 미국 배심원들보다 못하다는 평가도 있지 않은가.

판사들은 지금도 열심히... “A라는 사실, B라는 사실, 이에 더해 C라는 사실을 종합해 보면 당시 D라는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또는 분명하다).”고 열심히 판결을 하고 있긴 한데.. 당췌 그 논리의 연결고리를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떤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 때도 있고, 단지 ‘잘못 생각해서’ 그럴 경우도 있다)

실제 필자가 겪은 판사들은 사실관계를 추론해 내는 능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경우를 매우 많이 보았다. 젊은 시절 공부만 해서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떤 경우에는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경로’만을 생각해서, 특수한 다른 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정말이지 ‘기초적인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추론과정을 통해 도저히 발생될 수도 없는 결과를 도출해 놓고 “그것이 분명하다.”고 기재한 판결문을 내놓는 사례도 수없이 보아 왔다.

뭐 사법부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국한된다마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보” 수준이었다. 절대 과장이 아니다. 심지어 고등법원, 대법원 판결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아무리 바보라도 매일같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을 하다보면, 적어도 10년 정도 같은 일을 하다보면 경험이 쌓이고 쌓여 매우 날카로운 시각이 있을 법도 한데.. 경력이 오래 된 판사들 역시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맨날 밥먹듯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나봐야 똑같다면, 일반인보다 월등히 떨어지는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그 “소질”조차도 없다고 봐야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자들이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권을 전적으로 거머쥐고 있다. 그것도 “법관의 양심”과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그 어떠한 견제도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무소불위의 권력은 곧 “유무죄”의 판단권한을 전속됨을 의미하고, 피고인에게 유죄인가, 무죄인가 하는 판단은 합법적으로 피고인을 감금하고 심지어는 생명조차 앗아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결과로 직결된다.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그저 평범한 능력을 보유한 자가, 타인의 죄를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대한민국 법률은 왜 그러한 위험천만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일까? 사실판단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 전혀 검증되지도 않은 일개 인간(人間)에 불과한 자들에게, 법률은 왜 피고인의 생명조차 앗아갈 수도 있는 사실판단과 이에 대한 죄를 심판할 수 있는 어찌 보면 신(神)에게 부여했어야만 했던 무서운 권한을 전속시켜 놓은 것인가?

국민을 사지(死地)로 몰아가기 위함이었던가?

아니다.

적어도 법률은 인간(人間)에 의한 판결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방지장치를 분명히 만들어놓았다.

형사소송법을 보라. 수사단계에서부터 판결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규정들이 피고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다. 그리고 정말이지 “쓸데없는 잔소리”라고 여겨질 정도로 철저하고 아주 엄격하디 엄격한 채증법칙을 수없이 규정하고 있다.

왜냐? 판사라는 인간(人間)에게, 피고인이라는 다른 인간(人間)의 죄를 심판하는 권한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판사가 신(神)이라면, 아니 신(神)에 필적하는 능력을 가진 자라면, 전혀 걱정할 것이 없겠지. 하지만 판사 역시 인간(人間)이기 때문에, 오판의 가능성이 언제나 상존하고, 그렇기 때문에 법률에서 정한 정말이지 엄격한 절차에 따라서 증거의 채부를 결정하고 유무죄를 판단하라는 것이다.

그 뿐인가? 수많은 대법원 판례들이, 법률에는 규정되어 있지 않으나 행여나 있을 오판의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채증법칙의 이론들을 수없이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다만..그러한 중요한 “당부”와 “원칙”을.. 초등학교 교과서나 문학서적이 아닌.. “법률”로써 규정해 놓았다. 따라서 “법률”에 대해 가장 열심히 공부한 자가 그러한 원칙을 가장 잘 알 것이기 때문에, 법률을 열심히 공부하였다고 인정된 자에게 “사실인정”의 권한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잘 아니까 잘 지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법률이나 이론이 아무리 좋으면 뭐하겠는가? 판사들이 법률이나 이론을 너무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판사들이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우려는 예전부터 현실화 되어 있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별다른 계기가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판사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과신하고, 법률에서 정한 채증법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그저 “내가 봤을 때 유죄이다.”라는 생각에 함부로 타인의 죄를 속단하는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피고인들이 아무리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다고 하소연해도, “또 그 소리냐?”라고 생각하면서 지레 거짓말일 것이라 생각하고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그리고 검사들이 허접하기 이를데 없는 증거들에 기초하여 기소한 사건에 대하여서도, 사건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알아서 잘 기소했을 것이다.”는 유죄의 심증에 기초하여 사건을 보고, 피고인의 주장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를 않는 사례도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들의 예단에 맞춘 시각으로 사건을 보고 법률에서 정한 채증법칙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에 따라 결론을 내리고, 피고인이 주장한 여러 가지 정황들 중에서 자신의 생각에 반박 가능한 주장만을 나열하여 반박한 후, 이를 기재한 종이 몇 장을 “판결문”이랍시고 내어놓는 경우를 보아오지 않았는가?

석궁사건의 판결문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영화로 유명해지지 않았다면, 이는 그냥 “평범한 판결문”으로 영원히 남았을지도 모르지.

물론 판사들이 “고의적”으로 그러한 잘못된 판결들을 쏟아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판사가 특히 검사를 좋아하고, 피고인들이 미워하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물론 그런 생각을 가진 판사들도 꽤 많기는 하다)

적어도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판사들의 오판의 가장 큰 이유는 “자만과 오만”이다. 자신들의 판단능력을 너무나도 맹신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판사들에게 “사실 판단능력”이 뛰어남을 인정해 준 사실이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사실판단권한”이라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받은 자들이 판사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능력이 뛰어남을 인정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판사들이여, 자성해 보라. 지난 날을 돌아보라. 이러한 착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지 않았는가?

“나는 그러한 착각을 해 본 적이 없고, 오만함과 엘리트의식, 권위주의에 물든 적이 없다!!”고 양심껏 자신있게 외칠 수 있는 판사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판결은 피고인이라는 한 인간의 인생을 무참히 짓밟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법률은 판사들에게 “적어도 너희들 팔 한 짝을 걸 수 있을 정도의 확신”이 있을 때에만 유죄를 선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9999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단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주 기초적이고 기초적인 기본이념이란 말이다!

"잡초를 뽑다보면 잔디가 뽑힐 수도 있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형사법은 잡초를 내버려두는 한이 있더라도, 설령 그 잡초가 남아 주변의 잔디들을 해한다 할지라도, 잡초가 아닌 잔디를 뽑아서는 안된다고 외치고 있다. 판사들은 “神”이 아니기 때문에 잡초인지 잔디인지 분간하는 능력이 없으니, 철저하게 살펴 잡초인지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만일 잡초인지 잔디인지 잘 모르겠다면 뽑지 말고, 잡초가 분명하다 해도 잡초라는 증거가 없다면 뽑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을 지키고 있는가?

대한민국 판사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잔디밭 속에서, 자신들이 잡초를 분간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착각하고, 잡초라는 의심만 들면 제멋대로 잡초로 단정하고 여기저기서 애꿎은 잔디를 마구잡이로 뽑고 있다. 저 잡초들 사이에 무참히 뜯겨져간 잔디들도 함께 뒤엉켜서.. 뿌리가 뽑히고 허리가 잘려나간 엄청난 고통에 울부짖으며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은 완전히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법률은 판사들에게 “정의”를 실현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판사는 그저 법률이 시키는대로 엄격한 채증법칙에 기초하여 사실을 인정하라고만 요구하고 있다.

진범이 분명하더라도, 증거가 없다면... 제아무리 검사가 죽을 고생해서 겨우 잡아놓은 놈이라 해도 과감하게 놓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판사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증거가 없어도 감방에 처넣으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증거가 명백하지 않은 사건에서의 유죄판결은, "잡초로 오인된 억울한 잔디"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마약범들은 항상 마약을 먹지 않았다 한다. 모발검사에 양성반응이 나오면 모두들 “다른 약물을 먹어서 그렇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똑같은 변명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 중에는 진짜로 ‘약물을 복용하여’ 양성반응이 나온 자도 있을 수 있다. 매일 똑같은 변명이라 하더라도, “또 그 소리냐?”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각 사건마다 새로운 시각으로 ‘진짜 약물을 먹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판사들은 진정 그래왔는가?

자신들의 생각에만 기초하여, “혹시 아니면 어쩌지?”라는 진지한 성찰 없이 색안경을 쓰고 피고인을 대한 사실이 없는가? 잘못된 “정의감”에 물들어, 자신의 능력을 맹신하고 채증법칙도 위배한채 유죄를 인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단 한 번이라도.. “만일 저 피고인이 억울하다면, 내가 저 피고인의 입장이었으면 어찌되었을까?”라는 진지한 고민을 한 적이 있는가?

내가 판단하는 이 결정이 만일 잘못된 것이라면... 피고인이라는 한 인간과 딸린 식솔들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이 정말이지 처참하게 갈가리 찢겨져 나가는 그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민한바 있는가?

나는 아무 죄가 없는데, 나를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생면부지의 자가 법정에 앉아서, 나를 범죄자로 노려보더니, 자기는 가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실에 대하여,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거만한 눈초리로 쏘아보면서 “니가 그랬다!!”라고 외치면, 그 기분은 어떠하겠는가를 생각해 보았는가?

내가 갑작스럽게 감방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 누구도 부럽지 않게 잘 살던 내 가족들이 흩어지고,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가 나 때문에 식당에 나가서 손발이 부르트도록 죽도록 일하고, 금과옥조 키우던 어린 자식들은 내팽겨쳐서 나에 대한 반항심에 비행의 길로 접어들어 문제아가 되고, 늙은 부모님께서 근심하다 병이 나서 중환자실에서 연명하다 사망하였다면, 출소해봐야 변호사 선임비에 가족들 생활비에 빚더미에 오른 살림에 전과자 낙인이 찍혀 취직조차 되지 못해 평생 빚쟁이들에게 쫓기면서 달동네에서 살아야 한다면, 내가 수십년간 피눈물 닦아가며 쌓아온 모든 것이 판사의 오만에서 비롯된 찰나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그 모든것이 순식간에 송두리째 무너져내린 것이라면, 만약 판사 당신들이 그 입장에 처했다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아무 고민 없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판사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느냔 말이다.

판사들도 “사건에 대해서 정말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변명하고 싶겠지.. 사건에 대한 결정에 앞서서 다른 판사들에게도 물어보고 고민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물론 당사자들의 안위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판사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러한 고민이 사건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의 인생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기껏해야 “상급심에서 깨져서 인사점수에 불리하게 작용하면 어떡하지?”라는 개인적인 영달과 관련된 걱정이 아니었느냐는 말이다!!!!

모든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타인의 죄를 심판하고, 타인의 합법적으로 감금, 살인까지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권한을 부여받았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책임도 막중하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판사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책임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심지어 그러한 책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준법”, 즉 법률을 지켜야 하는 책임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아니한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가 얼마나 그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가?

흔히 법원을 지칭하여 “준엄(峻嚴)하다.” 또는 “신성(神聖)하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 이유는 “타인의 죄를 심판”하는 神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법부를 지칭하는 것이지, 판사라는 인간을 표현한 단어가 아니다.

법정에서 방청인들이 판사가 등정할 때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갖추는 것은, 바로 판사라는 인간(人間)이 존경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법정 뒤에 박혀 있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로고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그들이 입은 신성한 법복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일 뿐이지, 결코 판사라는 인간에 대한 경의를 표함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판사들은 어떠한가? 사법시험에 패스하여 연수원에서도 좋은 성적을 보여 판사로 임용된 자신들에 대한 무식한 시민들의 유식한 자에 대한 존경심이라고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석궁사건 공판기록에도 나와있듯이,
판사들은 자신을 “판사님” “재판장님”이라고 불러야 함을 강요하고 있다. “판사”, “재판장”이라고 하면 당장 발끈하지 않는가? 판사의 이름을 불렀다고 즉결에서 감치하려고 협박하지를 않았더냐.

하지만 그들은 어떤가?
변호인을 “변호인님”이라고 부르기를 하냐, 피고인을 “피고인님”이라고 부르기를 하느냔 말이다. 나이 많은 피고인들에게조차 반말을 일삼는 판사들도 얼

심지어 같은 사법고시에 패스한 변호사들마저도 “쓰레기”, “바보” 취급하는 판사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하물며 일반 국민이야 어떻겠는가.

판사는 아침에 출근하고 법정에 앉으면 자리에서 일어나 경의를 표하는 방청인들이 즐비하고, 선처를 호소하는 피고인들이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있으며, 심지어 함께 공부하던 변호사들마저도 저 아래에 서서 피고인들과 함께 머리를 숙이고 있다. 법정을 신전(神殿)으로 착각하고, 법봉을 모세가 들고 있는 성경으로 생각하고, 마치 자신들이 대단한 능력이 있는 神이라도 된 것인양 착각하기 얼마나 좋은 환경인가.

판사들은 무엇보다도 자만심과 오만함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혹자는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고 하면서 사법부의 부패를 걱정하고 있지만, 필자 생각에는 사법부에게 ‘부패’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 ‘자만심’이다.

현재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따지고 보면 판사들의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헛소리!!!)

사법부가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심지어 대한변협에서도 권위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권위의식을 버리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

사법부의 높은 눈을 낮춰서 국민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의 눈높이와 국민의 눈높이는 사실상 같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도 일반인과 똑같은 사실인정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결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사실인정능력이 뛰어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배운 지식은 사실인정능력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섣부른 판단이 실로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야 한다.

“잡초를 걸러내는 능력이 뛰어나서 판사가 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잡초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판단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야기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의 오판 하나가, 내가 판결문에 타이핑하는 글자 하나하나가 한 인간이 수십년간 피땀흘려 쌓아온 인생을 완전히 붕괴시킬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작금의 사법부를 향한 불신에 대하여 얄팍한 궤변으로써 사태를 무마하려고 들지 말고.. 국민을 호도하면서 애꿎은 영화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사법부가 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해 성찰하라는 말이다.

“국민 너희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뭘 안다고 주제넘고 나서는 것이냐.”는 인식, 그것이 불신의 씨앗이 아니고 무엇이겠냐는 말이다.

다시 영화 부러진 화살로 불거진 사태를 들춰보자.

사법부에서는 “사건기록 전체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 불만이자 영화를 비난하는 사유이다. 일방의 시각에서만 사건을 바라보아 진실이 왜곡되었다는 논리이다. 사건기록 전부를 보면 피고인의 유죄가 확실하다는 논리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건기록 전부를 보면 “진실”이 보이는가? 종이에 적힌 글자들과 사진만 보면 “진실”을 알 수 있는가?

다 안다고 착각하지 마라. 기록을 보건, 보지 않건, 어차피 진실은 神만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음 편에는 필자가 잘 모르는 분야이긴 하지만, 영화 <부러진 화살>과 관련된 일각의 비판론을 조금 씹어보도록 하겠다.

왜냐.. 사법부가 국민을 호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화를 씹고 있으니 말이다..

<제6편 영화>

영화가 진정 사실을 왜곡하여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가?

필자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또한 영화 <부러진 화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심지어 영화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감독 이름이 정진영인지 정지영인지도 헷갈릴 정도이다.

배우들 이름도 안성기 외에는 별로 기억나지도 않는다. 변호사 역할을 맡은 배우는, 미안하지만 필자는 TV 이건 영화이건 처음 보는 사람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를 할 정도의 수준에는 한참 미달이다.

하지만...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영화를 비난하고 나선 이상, 그리고 영화를 보지 않은 자들도 떠들고 있는 이상,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필자이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反論) 정도는 피력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자...
사법부는 분명 “예술적 허구”라고 했다.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허구”, 즉 “사실이 아니다.”는 것이다.

무엇이 사실이 아니냐. 제작진은 90% 이상이 실제 공판조서 내용 그대로라고 하지 않았더냐?

부러진 화살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작가는 오히려 실제 재판이 더욱 개판이었다고 한다.

당연하지.

많은 자들이 공판조서가 실제와 똑같다고 착각하는데.. 공판조서는 “법원”에 근무하는 “법원사무관”이 작성하여, 담당 판사가 “결제”까지 해서 나오는 서류이니, 그 자체가 “정화되어 걸러져 있는” 서류일 뿐이다. 실제 있었던 일보다 훨씬 미화되어 작성된 서류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법부는 그토록 미화된 서류에 기초한 영화를 두고서도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일방의 시각”에서 “사건의 일부”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허구”라고 주장하는가?
책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공판조서에 기초한 것이 아니더냔 말이다.

일방의 시각에서 일부만 보여주면 모두 허구인가?

장님이 코끼리 다리만 만져보고 “이것은 하마다!”고 외치면 허구일 수는 있다.

하지만 장님이 만지고 있는 것이 코끼리인지 하마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면, 장님이 다리만 만져보고 “이것은 하마인 것 같다!”고 외친다고 하여 그것이 허구인가?

사법부는 그 장님이 만져보고 있는 것이 코끼리 다리인지, 하마 다리인지 아주 정확하게 잘 알고 있다는 말인가?

뭐 사법부는 전지전능하여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산타클로스와 같은 존재라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해도.. 영화가 일방의 시각에서 일부 사실을 묘사하면 그것이 허구가 되고,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라는 말인가?

영화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예술작품 중 하나이다. 단지 이야기를 글로 하느냐 스크린에서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사법부의 논리에 따른다면, 1인칭 시점에서 바라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모두 허구이고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 된다.

왜냐고?
주인공의 시점, 즉 일방의 시점으로만 어떠한 바라보았으니 말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즉 작가는 신(神)의 관점에서 전개한 소설만이 진실하다고 평론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면 전지적 작가 시점 따위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럼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루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작가는 반드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당연히 일방의 시각에서 사건을 전개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3명의 주인공들이 각각 1인칭 시점에서 바라본 사건을 극화하고 있을 뿐이다.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사실은 피해자가 자해를 하였는데, 사법부가 만행을 부렸다."는 식으로 영화를 찍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또 다른 시각의 비판론을 살펴보자. “사건의 일부만 다루었다.” “사법부의 시각은 무시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한국과 네덜란드 경기에서 한국이 5-0으로 완패했다. 그런데 그 중 한국이 리드하는 5분만을 보여주면, 그것이 사실왜곡이 아니냐?”고 비꼬기도 한다. 도대체가 말이 되는 소리냔 말이다..

“일방의 시각에서만 표현했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들..

그렇다면..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반드시 북한군의 입장도 함께 다루어야 하는가?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는 연합군의 일방적 시각만을 묘사해서는 안되고 독일군의 시각도 함께 묘사해야 하는가? 베트남전을 묘사한 영화는 베트공들이 주인공의 무지막지한 살육에 처참히 희생되는 장면도 함께 스크린에 옮겨야 하는가?

“사건의 일부만 다루었다.”는 비판론들.. 그럼 결과적으로 패배한 베트남전에서는 모든 전투에서 미군이 패배하는 장면을 그려야 하는 것이지, 일부 전쟁에서 미군이 승리한 내용을 다루면 <한국:네덜란드> 축구경기와 같은 비유로써 비난받아야 하는가?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모든 전투에서 비기는 장면만을 다루어야 하느냐? 그리고 전쟁영화는 전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일들을 반드시 빠짐없이 다루어야만 하는가? 영화를 "조선왕조실록"으로 착각한 발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설령 한국과 네덜란드 경기에서 5:0으로 완파한 사실이 있다고 가정하자. 뉴스에서 한국이 잘 싸우는 장면만 방영하면서 마치 한국이 승리한 것처럼 보도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뉴스가 아닌 영화에서, 한국이 강적 네덜란드를 맞이하여 5분간 몸을 사리지 않고 고군분투 하는 장면을 다루면 그것이 곧 “사실을 왜곡”한 것인가?

영화 ‘실미도’는 실화를 바탕으로 범죄자들의 시각에서 그린 영화이다. 그렇다면 당시 그 범죄자들이 수용소로 끌려가기 전 저질렀던 참혹한 범죄현장을 낱낱이 묘사하고, 그들이 혹독한 훈련을 겪더라도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관객을 유도해야 하며, 그들이 수류탄으로 자살하는 장면을 보고도 ‘잘 죽었다.’는 감상평이 나오도록 해야만 국민을 호도하지 않는 제대로 된 영화란 말이더냐!!

영화 “웰컴투 동막골”은 인민군을 미화했으니, 감독이 이미 감방에 가 있어야 하는 것인가?

사법부가 영화를 비난할 이유가 있는가? 거기다 ‘평론가’라는 자가 법률도 모르면서 나대는 것이 과연 ‘평론가’가 할 일인가? 뿐만 아니라 법률지식이 있는 자들까지도 나서서 마치 “국민들이 호도될까봐” 매우 걱정하는 시늉을 하는 것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그럼 영화 “부러진 화살”은 어땠는가?

적어도 필자가 본 영화는.. 현재 만들어진 것보다 훨씬 더 신랄하게 사법부를 비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는 피고인이 “석궁을 쏘지 않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영화에서, 피해자가 자해를 하는 장면이라도 나왔던가? 하다못해 극중 피고인의 "상상"을 담는 씬으로라도 자해장면이 나왔냐는 말이다.

비록 1심이지만 당시 피해자가 법정에서 증언하는 핵심장면을 비중 있게 다루었는가? 옷에 난 구멍을 대조하는 장면이 나왔던가? 각 옷에 난 혈흔자국을 클로즈업이라도 했던가?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에 핵심쟁점이 되었던 그 수많은 의혹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매우 비중있게 다루었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던 그 첨예한 쟁점들은 적어도 영화에서는 매우 실망스럽게도 너무나도 “간략히” 처리되고 말았다. 필자가 “몸을 사렸다.”고 느꼈던 점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다.

피해자가 자해를 했다는 피고인의 핵심주장은, 변호사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으로 화면이 전환되면서, 피고인의 입이 아닌 변호사의 입을 통해 아주 간략히 처리되고 있다. 그것도 “피해자가 자해를 했다.”는 것도 아니라 “자해를 했을 수도 있다.”는 취지로써 말이다.

만일 영화가 관객을 ‘배심원석’에 앉히고, 사법부는 ‘무죄를 선고했어야 하는데 억지로 유죄를 선고했다.’고 말하고자 했다면, 1심 공판기록까지 모두 까뒤집어 의심나는 것들을 더욱 더 비중있게 다룰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을 ‘배심원석’에 앉히고 실체적 진실에 대한 의문을 던졌던 것이 아니었다. 또한 관객을 ‘피고인석’에 앉히고 “아! 열나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의도된 것도 아니었다.

영화는 관객을 배심원석이나 피고인석이 아닌 ‘방청석’에 앉혔다. 그리고 당시 재판을 ‘개판스럽게’ 진행하는 판사들의 그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줬던 것이다.

관객들은 유죄를 선고받고 분노했던 피고인이나 변호사의 입장에 대한 공감을 유도했던 것이 아니라, 재판 과정을 보다 참지 못하고 계란을 던지던 “방청객”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던 것 뿐이었다.

영화에서 극중 안성기가 유죄를 선고받고 울던가? 억울하다고 피를 토하더냔 말이다. 오히려 교도소에서 미소를 짓는 유쾌한 장면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재판결과에 대한 불만을 지적하고자 했다면, 허구적 요소를 더 가미해서라도 충분히 더욱더 신랄하고 재미있고 스릴넘치게 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공판기록 전부를 다 헤집어서 말이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서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가만 보고 영화가 어쩌네 저쩌네 하는 자는, 미술평론가가 그림도 보지 않고서 미술관을 나오는 관객들의 평가만 듣고서 그림이 어쩌네 저쩌네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사법부 역시... “혐오스럽다”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라면, 영화는 보지도 않고서 영화를 비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가 사건의 "일부"만 다루어서 불만인가? 그럼 필자가 앞서 다룬 법원장들의 헌법 위반사태부터 아주 뼈아프게 다루었다면 그 때는 "전부"를 다루었으니 영화가 아주 잘 만들어졌다고 칭찬이라도 했을까?

박변호사보다 훨씬 더 똑똑한 가상의 변호사를 내세워서, 법원이 헌법을 무시하고 있고, 공판중심주의에 위배하고 있으며, 채증법칙을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꼭꼭 신랄하게 지적하는 장면을 추가하고, 이에 판사들이 얼굴이 새빨개지는 장면도 넣어놓고서, “50%만 진실이고 50%는 허구입니다”라고 말했다면, 사법부는 하나도 괴롭지 않았을까?

사법부는 어차피 사실에 근거한 비율이 90%이건 50%이건 10%이건간에, 자신들의 과오가 가득 담긴 “석궁재판”을 다루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불편했을 것이고, 어떠한 영화가 나왔건간에 그 어떤 논리를 만들어서라도 무조건 비판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필자가 영화를 보고 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느꼈던 감상평이다.

[결론]

생업과 놀아달라는 어린 자식들의 성화에 치이면서 약 5일간에 걸쳐 짬짬이 작업하다 보니 길이 참으로 길어졌다. 지나치기 길 뿐만 아니라 단번에 내려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완성하고 나니 두서도 없고 읽기 매우 불편한, 분량만 늘어난 졸작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긴 글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사법부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중 30%도 채 반영되지 않은 것 같아 언제나 아쉽다.

석궁재판은 사법부의 의도적인 위법사례 중의 하나로서, 가히 “사법테러”라고 불러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건이다.

그런데... 사법부가 저지르고 있는 위법은 비단 석궁사건에 한정되지 않는다.

재판부가 ‘어리석어’ 잘못 판단하는 사례도 수없이 많다. 상급심에서 파기되는 사건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거꾸로 하급심에서 제대로 판단한 것을 상급심이 멍청하게 뒤집는 경우도 정말 많다)

하지만 재판부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석궁사건과 같이.. 정말 뻔히 드러나는 "고의적인 의도"로써 행해지는 “사법테러” 역시 결코 적지 않다.

그게 문제이다.. 정말이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법테러의 피해자들은.. 특히나 무죄를 받았어야 함에도 유죄를 받은 자들은 차라리 죽는게 나을 정도로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망가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필자가 최근 본 것만 꼽아도,
2011년 11월에 벌어진 1건의 형사재판..
2012년 2월에 벌어진 1건의 민사재판에서 또한 참혹한 사법테러가 벌어졌다.
당연히 모두 매우 고의적이고 전형적이며 아주 참혹한 "재판테러"이다. 물론 아직 확정된 사건이 아니지만, 위 사건들 역시 영화로 만들면 부러진 화살을 뺨칠 수준의 사건들이고, 이로 인한 피해는 김명호 교수보다 훨씬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메가톤급 사법테러임이 분명하다. 당연히 그 피해자들은 석궁이 아니라 기관총을 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 다른 이에게 말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판결이 확정되어 버리면 그 때 떠들어봐야 되돌릴 수도 없거니와 아무도 들어주지도 않을 것임을 두려워하고 있다. 떠들 수도 없고, 떠들지 않을 수도 없는 그 딜레마 속에서 속만 타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사법테러의 피해자들은 어두운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묻혀져 가고만 있는 것이다.

그 뿐인가? 그 밖에 아주 오래 전부터 보아왔던 수많은 사법테러들... 그리고 필자가 보지 못한 훨씬 더 많은 수많은 사법테러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로 인해 수많은 사법피해자들이 울부짖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비참한 법조현실인 것이다.

사법부는 석궁사건의 피고인과도 같은 부류를 "쌈닭"이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 쌈닭들은 말이다..태어날 때부터 쌈닭이 되었던 것이 아니라, 사법부가 만들어낸 것임을 왜 모르는가?

그들이 모두 법률을 몰라서 죄없는 사법부를 호도하고 있단 말이더냐!

사법부가 이토록 비난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필자가 사법부를 그토록 비난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수많은 사법테러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법을 지키지 않아서이다.”

사법부가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누가 법을 지킨다는 말이요, 스스로도 법을 지키지 않는 자가 누군가가 법을 지키지 않았다 하여 이를 심판할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필자는 사법부의 구성원도 아니고, 검사도 변호사도, 신문기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사법테러의 피해자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광분하는가?

사법부가 미워서?

아니다.

필자의 친구를 비롯한 몇몇 지인들이 판사로 재직 중에 있다. 그리고 사법부에는 분명히 정말 존경해야 할 판사도 있고, 훌륭한 판사도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만일 필자의 글이 사법부에 해악을 끼친다면, 필자의 지인은 물론이거니와 필자가 무척이나 존경하는 죄 없는 훌륭한 판사들에게도 누를 끼칠 수 있다. 사법부를 미워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원고료도 받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 밤잠을 아끼는 그 이유는 단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사법부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잠재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현장을 보고 있노라면, 그 피해가 실로 너무나도 막대하여 두려움에 오금이 저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 자신, 내 가족,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내 자식들이 나중에 어떤 일로 인해 법정에 가게 되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처참히 찢겨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법부가 계속하여 유지되고 있다면, 그리하여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계속하여 지속된다면, 그 누가 분쟁을 법대로 해결하려고 하겠는가? 그 누구도 사법부를 믿지 못하는데 말이다.

“사법불신”은 곧 "법치주의"의 적신호를 의미한다. 사법불신이 깊어진다면, 종국에 가서는 법치주의의 근간이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법이 아니라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야만시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필자가 출퇴근길에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길에 페인트로 그려놓은 두 줄의 ‘노란 줄’ 만 믿고서 안심하고 운전할 수 있는 것은, 길에 그려놓은 노란색 줄은 넘어서는 안된다는 “사회의 약속”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의 운전자가 사전에 미리 필자와 손가락을 걸고서 ‘서로 노란 선을 넘지 맙시다.’고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기로 하는 “사회적 약속”이 이미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약속 하나만 믿고서, 누군가 그것을 어긴다면 내 생명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안심하고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법률”이고, 법치주의가 중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신호가 아닐 수 없다. 거기다 사법부가 솔선수범하여 대한민국 헌법까지 유린하고 있는 법조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만 한다.

필자가 정말이지 국민들의 ‘십자포화’를 받고 있어 망신창이가 되고 있는 사법부를 이토록 극렬하게 비난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사법부는, 자존심 내세워 국민을 호도하는 일을 멈추고, 잘못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함으로써 불신의 골을 키우지만 말고, 잘못한 점은 깨끗이 잘못을 인정하라고 촉구하고자 함에 있다.

그리고 그 근간을 위협받고 있는 법치주의를 다시 굳건히 다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법부의 사명이 아니던가.

사법부는 솔직해져야 한다. 분명히 잘못을 하였는데, 그것이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데.. 그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애써 감추려고만 하면서, 그저 말로만 “앞으로 잘하겠다.”고 하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그저 “국민 속으로”가 아닌 “국민 속이러”라는 퍼포먼스를 한다는 비난밖에 더 있겠는가?

잘못을 시인하고, 솔직해져라. 그것이 진정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첩경인 것이다..

필자의 글이 어느 무명 네티즌이 늘어놓은 쓸데없는 넋두리로 무시되어 방대한 인터넷의 바다 한구석에 처박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의 목소리가 사법부에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키보드워리어들의 좋은 먹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글이 길지 않은가. 꼬투리는 어디서든 잡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상관없다.

단지 누군가가, 당장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이 글을 읽는 자가 있고, 그 중에는 단 한 줄이라도 공감하는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족하다.

반대의견을 얼마든지 개진해도 좋다. 어차피 세상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필자 역시 내 생각이 진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런 생각을 가진 소시민이 한 명 살고 있다는 것 뿐이다.

또한... 이 글을 퍼서 어디에다 어떤 의도로 어떻게 뿌리던간에 전혀 개의치 않겠다.

단지, 밤잠 설쳐가며 서투른 실력으로 키보드 두드린 성의를 봐서라도, 그 “출처”만큼은 명시해주었으면 한다.

이상 긴 글을 마친다.

posted by 법조현실(대전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