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사건 조작 행동대
 
김용호
이회기
신태길
이홍훈
 
석궁사건 조작 은폐 공범들
 
박상길
지영철
노정희
민중기
 
김홍도
김용덕
 
박홍우 상처는
자해다
 
교수들의 분노
 
Site Map




'석궁사건(석궁시위)'에 대한 올바른 정의

'석궁시위'는 양아치 조폭집단인 법원에 대한 '국민 저항권' 행사이자, 사회의 기준을 세워야할 법원이 소수 특권층만을 위한 범죄집단으로 전락하도록 방치한 비겁한 인간들에 대한 '분노'의 시위다

'김명호가 왜 석궁시위를 하였는가?', '대법원은 왜 석궁 사건에서 증거조작할 수 밖에 없었는가?'를 생각해 봐라.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다(김훤주)

정확히 제대로 말하면,
대법원의 '석궁사건' 판결문은 조작된 증거에 근거한 '말장난'


지역에서 본 세상 2012/02/04 16:38


잘못된 과정에서 나온 결론이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영화 부러진 화살이 사실과 맞아떨어지느냐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어난다는 것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글을 읽고 또 엔하위키 내용을 보니 그 까닭이 조금 짐작됐습니다.

엔하위키에서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을 보면 마지막 결론으로 "김씨는 사법부의 증거 조작과 무리한 법 적용을 주장하나, 최소한 판결문만으로는 김씨에게 내려진 판결은 전혀 문제가 없는 판결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영화와 사실은 다르며, 사법부가 자의적으로 법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 제대로 된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영화를 맹신하여 김씨의 무죄를 주장한다든가, 김씨를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 싸운 영웅이라는 식으로 우상화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라고까지 했습니다.

이를 두고 한국일보는 "인터넷ㆍSNS '부러진 화살, 진실과 다르다' 커지는 목소리"라고 제목이 달린 기사를 1월 30일치에 내었습니다. 부제로는 "엔하위키 '판결문만으론 문제 없어'… 진중권 '김前교수의 퍼포먼스에 낚여'"라고 달았습니다.


"법원이 불공정한 재판 진행으로 피고인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를 유죄로 몰았다는 영화의 메시지가 객관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만큼,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대중의 자발적 목소리 형태로 분출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네티즌들이 집단지성으로 만들어 가는 인터넷 백과사전의 일종"이라는 꾸밈말까지 붙여가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엔하위키'(http://angelhalowiki.com)가 대표적이다. 이 사이트는 '피해자의 상처는 자해이며, 증거는 모두 조작됐다'는 김 전 교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해했다는 주장의 증거가 (오히려) 없다', '부러진 화살이 없다는 주장은 논점을 흐리는 것. 직접 증거가 없어서 법원의 무리한 처벌이라는 주장을 좇으면, 살인자가 칼로 사람을 죽인 후 칼을 바다에 버릴 경우엔 무조건 무죄가 된다'고 하는 식이다."라고 끌어와 썼습니다.

'대법원 판결문'의 권위를 넘어서야

그렇습니다. 제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까닭이 무엇인지 여기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법원 판결문을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판결문에 적혀 있는 내용을 사실로 간주하고 보면 영화 부러진 화살의 법정 안 장면이 그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러진 화살은 법원 재판 과정에 잘못이 많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증거나 증인 채택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진위를 두고 공방을 벌이기 마련인 검사와 피고인 사이 진술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재판 과정에 잘못이 많으면 당연히 판결에도 잘못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해서 나온 대법원의 엉터리 판결문을 기준으로 해서 법원이 재판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저질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부러진 화살이 사실과 다르다고 비판합니다. 제대로 비판을 하려면 대법원 판결문을 무턱대고 믿을 것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문이 과연 제대로 된 판결문인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대법원 또는 법관이 그래도 엉터리를 저지르기야 하겠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대법원도 사실 여부 판단의 근거로 대법원 판결문을 들이밀면서 부러진 화살 영화는 허구라 얘기합니다.


% 항소심에서 갑자기 사직한 이회기 재판장 뒤를 이어 재판을 진행한 신태길 부장판사(문성근 분).

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대법원 판결문에 사실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상식으로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재판 과정이 잘못돼 있는데 재판 결과가 반듯하게 나올 리가 없습니다. 대법원 판결문을 금과옥조로 모시는 대신 비판적인 눈길로 샅샅이 뜯어봐야 하는 까닭입니다.

1심 재판은 대법원 판결문도 인정한 엉터리

대법원 판결문을 한 번 따져보겠습니다. 그러면서 1심 판결에 대해서도 조금 얘기를 곁들이겠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 판결문이 말을 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만 한정해 놓고 보더라도 대법원 판결문이 이중으로 잘못됐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김명호 성균관대학교 전 교수와 박훈 변호사는 2008년 3월 14일 항소심에서 이른바 석궁 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다음 대법원에 상고합니다. 여러 상고한 까닭 가운데에는 1심 재판 과정이 잘못됐다는 엉터리였다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문을 봅니다.

"[형사소송법] 제282조에 규정된 필요적 변호 사건에 해당하는 사건에서 제1심의 공판 절차가 변호인 없이 이루어진 경우, 그와 같은 위법한 공판 절차에서 이루어진 소송 행위는 무효이므로, 이러한 경우 항소심으로서는 변호인이 있는 상태에서 소송 행위를 새로이 한 후 위법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항소심에서의 진술 및 증거 조사 등 심리 결과에 기하여 다시 판결하여야 한다."

널리 알려진대로, '필요적 변호 사건'이란 징역 3년 이상에 해당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는 경우로 반드시 변호사를 붙여야 합니다. 대법원 판결문에도 있듯이 이렇게 중형이 선고될 수도 있는 필요적 변호 사건은 형사소송법 제282조는 "변호인 없이 개정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 취지입니다.

널리 알려진대로, 석궁 사건에서 김명호 교수는 2007년 9월 18일과 10월 1일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김 교수에게는 변호사가 있지 않았고, 그래서 재판은 변호인과 피고인이 모두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됐고 10월 15일 징역 4년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진행된 1심을 두고 대법원 판결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원심(항소심)은, 이 사건이 필요적 변호 사건임에도 제1심 법원이 제8회 공판 기일과 제9회 공판 기일에 변호사 없이 개정하고 증거 조사를 실시하고 그 증거들을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은 위법이 있다고 인정한 다음 이를 이유로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다시 심리하여 판결을 선고하였는 바, 형사소송법의 관련 규정 및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이러한 조치는 정당하다."

이렇게 해서 1심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음은 대법원 판결문조차 "위법이 있다고 인정한 다음 이를 이유로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라 함으로써 제대로 밝혀졌습니다. 이로써, "영화 부러진 화살이 다룬 항소심이 증거·증인 채택을 하지 않았지만 1심에서 충분히 다뤘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여기저기에서 제기되는 주장은 헛소리 이상이 될 수 없게 됐습니다.

전혀 '다시 심리'하지 않고 엉터리로 판결한 항소심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이어지는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입니다. 중요한 대목입니다. "다시 심리하여 판결을 선고하였는 바, 형사소송법의 관련 규정 및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심(항소심)의 이러한 조치는 정당하다." 항소심은 '다시 심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위 법리에 비추어보면' 원심의 이러한 조치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위 법리란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항소심에서의 진술 및 증거 조사 등 심리 결과에 기하여 다시 판결하여야 한다.'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파기된 제1심 재판에 기대지 않고 항소심에서 진술을 듣고 증거를 조사한 결과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항소심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에 비춰 말하자면 항소심에서는 '진술 및 증거 조사와 관련해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증거·증인 채택과 사실 조회 등등에 대한 김명호 교수와 박훈 변호사의 요구를 묵살한 것밖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 항소심을 함께한 김명호(오른쪽) 교수(안성기 분)와 박훈 변호사(박상훈 분).

항소심은 2007년 11월 12일 시작됐는데 12월 10일과 12월 17일, 2008년 1월 28일 네 차례는 이회기(영화에서 이경영) 부장판사가 재판장을 맡았고 영화에 주로 나오는 재판장인 신태길 부장판사(영화에서 문성근)는 2월 25일과 3월 10일 두 차례만 공판을 진행했습니다.(3월 14일 재판은 선고만 했고요.)

이회기 재판장 시절인 12월 17일과 이듬해 1월 28일에는 홍성훈 송파경찰서 경찰관과 안만영·이동복 잠실지구대 경찰관과 박규주 서울대병원 외과 의사 증인 심문이 있었고 신태길 재판장 시절인 3월 10일에는 권영록 119대원과 김형석 송파경찰서 경찰관 증인 심문이 있었습니다.

핵심 증인인 석궁 사건 피해자 박홍우 부장판사(김명호 교수의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을 맡았던)에 대한 증인 신청은 기각됐으며, 이날 출석한 증인들은 주변 인물인 셈입니다. 물론 이날 출석한 증인 심문서도 공소 내용과 상반되는 증언이 있었으나 신태길 재판장은 변론을 종결했습니다.(이는 뒤에 따로 다룹니다.)

박홍우 부장판사 증인 신청, 핏자국 감정 신청, 석궁 실험 신청, 석궁 발사 화살 위력에 대한 감정촉탁 신청, 사건 당시 현장 CCTV 존재 여부 사실 조회 신청 등이 거부됐고 2월 25일 재판은 녹음·녹취마저 합당한 까닭 없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원 판결문은 원심(항소심)이 정당하다고 엉터리로 적혀 있습니다.

저는 김명호 성균관대학교 전 교수가 억울하게 교수 지위 확인 소송에서 패소했다든지 그이가 일으킨 석궁 사건이 정당하다든지 아니면 그이가 훌륭한 인물이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그러한지에 대해서 아직은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얘기하는 바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 '헌법과 법률에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신속한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헌법 제27조)를 김명호 교수가 누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공판중심주의를 어겼어도 정당하다는 엉터리 대법원

대한민국은 공판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저는 6년 정도 법원을 드나들며 취재를 해 봤습니다. 공판중심주의(公判中心主義)란, 공판에서 진행되는 소송 절차를 중심으로 재판을 해야 하며, 법관의 심증 형성(心證形成)도 공판에서 나오는 당사자(피고인과 검사)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가 있고 참고인(피해자나 증인 포함) 진술 조서가 있고 여러 가지 증거를 검사가 제시했을 때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바로 증거 능력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서 피고인과 검사 사이에 공격과 방어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공방은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된 법정(공개주의)에서 법정에서 직접 심리한 믿을만한 증거에 근거(직접심리주의)해야 되며, 법원(재판부)은 이런 모든 과정을 당사자(피고인과 검사와 증인)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 진행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1심 재판은 대법원 판결문조차도 잘못(위법)이 있다고 한 만큼 다시 거론할 까닭이 없으며, 다만 항소심을 살펴보면 되는데 이 또한 1심 못지 않게 엉터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직접 심리한 믿을만한 증거"도 없고 "당사자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 진행"한 적도 없습니다.

작가 서형이 밝힌 항소심의 엉터리 판결 현장

석궁 사건 항소심 판결은 2008년 3월 17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있었습니다. 신태길 재판장은 판결문을 읽었습니다. 2007년 8월 28일 1심 8차 공판부터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법정에 들어가 재판 과정을 기록했던 작가 서형은 자기가 쓴 책 <부러진 화살> 120쪽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신태길 재판장은 재판 과정이나 수사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내용들로 가득 찬 판결문을 읽어내려갔다." 법관의 심증 형성은 공판에서 나온 당사자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를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신태길 재판장이 어디서 이런 심증을 형성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어집니다. "판결문은 피고인(김명호 교수)이 안전 장치를 푼 석궁을 들고 계단에서 내려와 박홍우 부장판사를 향해 '주저함이 없이' 석궁을 발사했다며 피고인에게 상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넉넉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주저 없이 발사했다고 이야기를 한 바가 없었다. 박홍우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김명호 교수가 판결문처럼 주저함이 없이 석궁을 발사했다면, 피고인 김명호에게는 '상해의 고의'가 아니라 '살해의 고의'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석궁의 위력은 화살이 박홍우의 몸통을 관통해 버릴 정도이기 때문입니다.(송파경찰서 발사 실험 결과 1.5m앞에서 쐈는데 두께 2cm 합판을 뚫고 15cm 튀어나갔습니다.)

다시 이어집니다. "안전 장치를 풀어두었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건 이야기한 사람도, 물어본 사람도 없었다. 박홍우는 손으로 석궁을 잡은 적이 없다고 진술한 바 있다. 손으로 잡지 않았기에 우발적으로 발사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홍우가 손으로 잡지 않았다는 것을 신빙할 만한 근거는 무엇인가? 신태길 재판장은 수사 과정이나 공판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박홍우 손에 상처가 없다'는 점을 들어 박홍우가 석궁을 잡은 적이 없다는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법정에서 나오지 않은 내용으로 항소심 판결문을 채운 신태길 재판장의 영화 속 모습.

서형의 기록이 옳을까? 형해화된 공판 조서가 옳을까?

서형의 이런 기록이 틀렸다고 이야기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항소심 판결문과 공판 조서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 여섯 공판 가운데 2월 25일 공판은 기록이 없다시피 합니다.

세 쪽짜리 공판조서가 있을 뿐인데 이를테면 피고인이 오랫동안 주장했던 내용을 '피고인, 재판장에 대하여 석명을 위한 발문 요구' 이렇게 열아홉 글자로 표현을 했습니다. 이회기 재판장이 그만둔 자리에 신태길이 들어오면서 녹음·녹취를 법원이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서형은 법정에서 공판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해 블로그 서형 인터뷰(http://2bsi.tistory.com)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면 2월 25일 사정은 서형의 기록만 있는 셈인데, 이에 대한 사실 여부 확인은 당사자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은 있겠습니다. 하하.

'유리한'을 '불리한'으로 둔갑시킨 대법원 판결문

대법원 판결문이 엉터리임을 보여주는 초절정 핵심은 서형이 펴낸 단행본과 정지영이 만든 영화 제목이기도 한 '부러진 화살'을 두고 "피고인(김명호 교수)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거물"이라고 한 데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문은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거물이라고 규정한 다음 "(그래서) 수사기관에서 (부러진 화살을) 일부러 폐기 또는 은닉할 이유가 없으므로 증거 조작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 2011년 12월 14일 창원서 열린 시사회에 나온 정지영(왼쪽) 감독과 박훈 변호사.

그러나 '부러진 화살'은 검찰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거물일 따름이고 피고인에게는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거물입니다. 상식으로 생각해 봐도 화살이 부러진 상태에서는 사람 몸에 들어가 박힐 수 없습니다. 또 사람 몸에 들어가 박힌 상태에서는 화살이 부러질 까닭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석궁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박홍우 부장판사와 김명호 교수가 몸싸움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 과정에서 박홍우 판사 몸에 박혀 있던 화살이 부러질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릅니다. 박홍우 판사의 상처 깊이가 1.5c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화살에 충격이 주어졌다면 그냥 빠질 뿐이지 부러질 리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건 당시 김명호 교수를 체포하고 석궁과 화살을 압수한 송파경찰서에서 해 본 실험과도 맞지 않습니다. 박홍우 판사 진술대로 계단 3~4개 위에서 석궁을 쐈더니 2cm 두께인 합판을 관통하고도 모자라 15cm가 튀어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박홍우 부장판사 배꼽 왼쪽에 난 상처는 깊이가 최대 1.5cm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검찰 공소장에 나오는 표현 "기다렸다가 다가가 (김명호 교수가) 박홍우에게 화살 1발을 발사하고"와는 상태가 다름을 알게 해주는, 피고인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거물일 따름입니다. 김명호 교수가 박홍우 판사를 다치게 하지 않았고, 다치게 했더라도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다는(이른바 고의성은 없다는) 증거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식과 사실에 따라 대법원 판결문을 다시 쓴다면 이렇게 돼야 마땅합니다. "피고인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고 검찰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거물이므로 수사기관에서 일부러 폐기 또는 은닉할 이유가 충분한 만큼 이를 증거 조작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하고……." 그렇지 않습니까?(이어집니다.)

자해 주장과 핏자국 감정 요구는 양립 가능하다

제가 알기로 진중권씨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김명호 교수와 박훈 변호사가 박홍우 부장판사 옷에 묻은 핏자국과 박홍우의 피가 같은지 여부를 감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박홍우가 자해를 했다고도 주장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언어도단이고 자가당착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합니다. 진중권씨 말대로 박홍우 판사가 자해를 했다면 자기 옷가지에 일부러 다른 피를 묻힐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판 과정을 들여다보고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진중권씨 주장이 엉터리임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렇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박홍우 판사 몸에 상처가 났다고 했습니다. 길이 2cm에 깊이 1.5cm입니다. 그런데 석궁을 쏘면 위력이 두께 2cm짜리 합판을 뚫고 15cm가 더 나갈 정도입니다. 그리고 불완전 장전 상태에서 석궁을 쏘면 발사가 되지 않고 흘러내린다는 증언(이것도 1심에서 나왔지 항소심에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발사된 화살에 맞았다면 치명상을 입었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화살로 말미암은 상처는 전혀 없었어야 맞습니다. 따라서, 경찰 수사에서부터 법원 재판에 이르기까지 박홍우 판사랑 석궁을 잡고 몸싸움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화살이 발사됐는지는 몰라도 일부러 쏘지는 않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하는 피고인으로서는 의심이 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 박홍우 판사랑 석궁을 붙잡고 몸싸움을 벌였다고 한결같이 주장하는 김명호 교수의(안성기 분) 영화 속 모습.

먼저 박홍우 판사 몸에 실제로 상처가 나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찰과 검찰 수사 기록에는 상처(박홍우 판사 몸에 났다는)를 찍은 사진조차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김명호 교수와 박훈 변호사로서는 박홍우 판사의 것이라는 옷가지에 묻은 피와 박홍우 판사의 피가 정말 같은지 확인해 보자고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개연성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실험과 증언을 따르면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 때문에는 그런 조그만(길이 2cm, 깊이 1.5cm) 상처가 날 수 없는만큼, 박홍우 판사가 자해를 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핏자국 유전자 검사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물론 저도 개연성은 높지 않다고 보지만, 어쨌거나 사건이 일어난 다음 박홍우 판사는 자기 발로 걸어서 자기 집에 들어갔다가 10분쯤 있다가 나왔습니다. 이는 자해를 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은 됩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문은 이와 다릅니다.

증인 진술과도 맞지 않는 대법원 판결문

대법원 판결문은 "(목격자들은) 박홍우의 옷을 들추니까 시뻘겋게 피가 묻어 있어서 경찰과 소방서에 바로 신고했다는 것이고, 출동한 소방관의 진술에 의하면 배꼽 부위에 상처가 있었고 출혈로 인하여 속옷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그 사이에 피고인 주장처럼 위 박홍우가 스스로 자해를 할 시간이나 기회를 갖기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입니다.

대법원 판결문에 나오는 이런 정황은 항소심 법정에서 증언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항소심에 나온 증인은 모두 일곱 명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시뻘겋게 피가 묻은 정황을 진술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이렇게 적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와는 다른 진술이 있기까지 합니다. 2008년 2월 25일 항소심 6차 공판에서 현장에 출동했던 권영록 119 대원은 박훈 변호사가 "구급 활동 일지에 '피의자가 1~2m 전방에서 석궁으로 활을 쏘았다고 하며, 화살이 복부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고 함'이라고 적혀 있는데 박홍우한테서 직접 들은 말인가요?"라고 물은 데 대해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화살이 박홍우 판사 몸에 꽂히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검찰은 반대 신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항소심 재판부 신태길 재판장은 이에 대해 충분히 증거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엉터리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 판결문 또한 이에 대한 검토 없이 이렇게 적었습니다.

제발, 실사구시(實事求是) 좀 하시기를

진중권씨가 1월 29일 트위터에 올린 글을 봤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부러진 화살이 실화냐 하는 논쟁은 일단락 된 것 같다."입니다. 말하자면 진중권씨는 줄곧 허구라고 주장해 왔는데 이것이 충분히 받아들여졌다는 뜻입니다.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영화에 허구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사실에 대해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조차 허구라고 한다면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영화 속 법정 장면은 100% 사실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사실이라는 말은, 법정에서 실제로 있었던 행동과 발언이라는 뜻을 넘어섭니다. 피고인 김명호가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고 성격이 괴팍하다 해도 재판을 제대로 받을 권리는 있는데 그 권리가 철저하게 짓밟혔다는 측면에서 일관되게 취사선택한 사실들이라는 뜻까지 담겨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진중권씨가 이어지는 트위트에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대변하기에 석궁 재판은 적절한 소재가 아니었"고 "영화에서 얻어진 사법 개혁의 정당성은 허구로 빚은 정당성에 불과"하며 "실제로 사법 폭력이 저질러진 사례들을 사용했어야 그 정당성이 현실성을 띠겠"다고 한 대목이 안타깝습니다.

재판을 재판장이 자기 마음대로 진행하고 피고인의 권리를 묵살하고 제대로 된 증거 조사 없이 판결을 내리는데 어떻게 사법 폭력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까? 석궁 사건과 석궁 재판은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석궁 사건은 진중권씨 말대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대변하기에 적절한 소재가 아닐지 모르지만 석궁 재판은 그런 불신을 대변하고도 남을만큼 적절한 소재입니다.

저는 진중권씨처럼 잘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1963년에 태어나 진중권씨와 같은 시대를 살아왔으며 진중권씨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운동판에서 한 번도 주류에 몸담지 않고(또는 못하고) 30년 가까이를 비주류로 살아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태껏 제게는 진중권씨가 나름대로 각별하게 여겨졌습니다.

저는 진중권씨가 지금껏 보수와 진보에서 모두 넘쳐나는 '조건 없는 제 편 감싸기'와 '자기가 좋아하는 존재에 대한 성찰 없는 열광'을 경계하고 비판해 온 데 대해 아주 훌륭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부러진 화살을 두고 한 발언들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를 소중히 여기면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부러진 화살에 대해 실사구시를 해 보시지요. 그리고 제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제시에서든 논리 전개에서든 제 글이 틀렸다면 그에 걸맞게 근거를 대면서 짚어주시면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부러진 화살이 허구라는 주장은 거둬 주시기 바랍니다.(이어집니다.) 2012. 2.6

합리적 의심은 할 수 없을 정도여야 한다는데

김명호 교수 석궁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은 먼저 들머리에서 "형사 재판에 있어서 심증 형성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한다고 한 다음 이른바 합리적 의심이란 "논리와 경험칙에 기하여 요증 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성 있는 의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낱말이 어렵고 문장이 비틀려 있어 정확한 뜻을 알기가 힘들지만, 어쨌든 합리적 의심은 ①논리와 경험칙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②요증 사실(要證事實=당사자가 증명해야 하는 사실 관계)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어야 합니다.

요증사실이 어려운 말인데요, 그것이 당사자(검사나 피고인)가 증명해야 하는 사실 관계라면 간단하게 말씀드려 '증거라고 제출된 발언이나 물건'이 될 수 있겠고, 그러므로 한 번 더 간단하게 하자면 '증거'가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이란 '앞서 제출된 증거와 상반돼서 동시에 성립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보기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저물 무렵에 김훤주가 동쪽으로 가는 모습을 김주완이 봤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주완은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무슨 옷을 입었는지는 자세히 보지 못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여기서 ⓐ는 요증사실이고 ⓑ는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이 됩니다. 저녁 무렵에 서쪽이 아닌 동쪽에서 햇빛이 쏟아질 까닭(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제출된 증거와 상반되는 다른 증거가 나왔을 때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할 수 있는 의심이 합리적 의심이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합리적 의심을 부추기는 대법원 판결문


% 김명호 교수가 제시한 합리적 의심을 대법원 판결문은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김명호 피고인과 박훈 변호사는 법정에서 석궁 위력이 엄청나서 완전 장전된 상태에서 발사되면 사람 몸 정도는 관통해 버린다는 사실과, 불완전 장전 상태에서는 제대로 발사되지 않고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아 박홍우 부장판사의 몸에 화살이 꽂히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다고 다퉜습니다.

합리적 의심입니다. 석궁의 엄청난 위력과 박홍우 부장판사의 몸에 났다는 조그만 상처는 도저히 양립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합리적 의심에 대한 반증이 대법원 판결문에는 없습니다. 박홍우 부장판사의 피묻은 옷가지에 대해 적어놓은 대목이 유일한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 분석 감정 결과 위 박홍우가 입고 있었던 검정색 조끼, 흰색 속옷 상의, 연하늘색 내의, 흰색 와이셔츠 등에서 혈흔이 발견되었고 유전자형 분석 결과 모두 동일한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되었다.(피고인은 조끼와 속옷에 모두 혈흔이 발견되었는데 중간에 입은 와이셔츠에 혈흔이 없기 때문에 수사 기관에서 증거를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압수된 증거물에 의하면 속옷과 내의에는 복부 부위에 다량의 출혈 흔적이 육안으로 확인되지만 조끼에는 육안으로 혈흔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소량의 흔적만 보이는 점, 처음 위 박홍우를 목격한 경비원은 위 박홍우의 옷을 들추니 다량의 혈흔이 보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와이셔츠 혈흔이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는 속옷과 내의에서 다량의 출혈 흔적이 확인된다는 사실의 증명력이 훨씬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


% 항소심을 처음 맡은 이회기 재판장(영화에서 이경영)은 김명호 교수의 문제 제기를 나중에 맡은 신태길 재판장처럼 막무가내로 탄압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려 놓은 판결문을 저는 처음 봅니다. 쟁점을 확실하게 흐려버리는 뛰어난 재주를 부렸습니다. 먼저 검정색 조끼, 흰색 속옷 상의, 연하늘색 내의에는 화살로 뚫렸다는 구멍 근처에 피가 있는 반면 흰색 와이셔츠는 구멍 근처에는 피가 없고 이상하게도 오른쪽 팔 부분에 피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가렸습니다.



다음으로, 옷가지 핏자국에서 '동일한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됐다고만 했지 그것이 박홍우 판사의 피와 동일하다는 얘기는 못하고 있습니다. 박홍우 판사가 상처를 입었다는 증명이 없습니다. 또 옷가지의 피가 박홍우의 피와 같다는 증명이 있어야 다음(상처가 났는데 그것이 화살 때문이냐 아니면 자해 때문이냐 등등)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도 말씀입니다.

뒷부분 "와이셔츠 혈흔이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는 속옷과 내의에서 다량의 출혈 흔적이 확인된다는 사실의 증명력이 훨씬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증명력'인지 알 수 없습니다. 증명된 것은 '여러 옷가지에 동일한 남자의 피가 묻어 있다' 뿐입니다. 그 피가 박홍우 판사의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꼼수'까지 부리는 대법원 판결문

대법원 판결문은 김명호 교수가 자기 발언이나 뒤집는 믿지 못할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체포 당할 당시에 범행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국민의 이름으로 판사를 처단하려 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으며, 범행 직후 고등학교 동창인 언론사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국민의 이름으로 담당 판사를 상대로 일을 저질렀으니 이를 보도해 달라고 통화를 하였다."고 한 다음 김명호 교수가 말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이렇습니다. "피고인은 구금되어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부터 위 박홍우에게 석궁을 고의로 발사할 생각은 없었고 위협만 할 생각이었는데 몸싸움 과정에서 석궁이 발사되어 위 박홍우가 상해를 입게 되었다고 진술을 바꾸고 있다."

김명호 교수는 경찰과 검찰에서 그리고 법정에서 '고의로 발사하지는 않았다'고 한결같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원 판결문은 김명호 교수가 수사를 받기 전에 했던 말을 장황하게 서술함으로써 김명호 교수가 '나쁜 놈'처럼 비치게 만들었습니다.

상식으로 보더라도, 2007년 1월 15일 박홍우 판사 집 앞에서 체포될 때까지 있었던 10분 동안 했다는 발언보다 그 뒤 2008년 3월 14일 항소심 판결까지 1년 넘게 걸린 세월 동안에 나타난 일관성이 더 중요합니다.

게다가 다른 정황도 있습니다. 동료 이경호 교수의 발언입니다. 이경호 교수는 송파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건 직후 김명호 교수랑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통화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서형 작가가 펴낸 책 <부러진 화살> 42~43쪽에 나옵니다.

"김 교수가 판사하고 싸움이 붙었는데 별로 다친 것 같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데, 옆에서 경찰이 끄라고 한 것 같아요. 전화가 끊겼어요. 그런데 궁금해서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받아요. 잠실지구대래. 어떻게 된 거냐고? 박홍우 판사를 찾아가서 겁만 줄려고 했는데, 활을 잡는 바람에, '활이 뭐야?' 그랬죠. 난 김명호 교수가 석궁을 갖고 있었던 걸 몰랐어요. '내가 석궁을 가져갔어.' 그래요. 황당했죠. 활을 잡아서 뒤엉켜서 하다 보니깐 화살이 나갔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대요. 다친 것도 같고 안 다친 것도 같고. 하여튼 일어나서 툭툭 옷을 털면서 자기 집에 갔대요. 그 정도 이야기하다가 딱 끊겼어요."

공판중심주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대법원의 자백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이경호 교수의 말이 더 믿음직스럽습니다. 형사 사건으로 경찰이나 검찰에서 수사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직감만으로도 알 수 있는 무엇이 있습니다. 저는 1985년 이적표현물 제작 배포와 1989년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테러 규탄 총파업으로 두 차례 수사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대목은 대법원 스스로가 공판중심주의를 어기고 지키지 않았다는 자백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법관은 공판 과정에서 제출된 증거나 진술된 증언을 중심으로 삼아서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없을 정도 수준에서 판결에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문은 이 대목에서 김명호 교수가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열넉 달 동안이나 일관되게 해온 진술을 수사받기도 전에 했다는 말 몇 마디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이 대목은 법정에서 나오지도 않은 내용을 바탕삼아 심증을 형성했다는 대법원의 자백일 따름입니다.(이어집니다.)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라는 요지로 계속 글을 쓰려니 좀 시덥잖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법원은 제가 아무리 떠들어도 여전히 전혀 꼼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 적는 내용이 옳든 그르든 대법원은 이에 반응하는 자체가 자기네 권위가 다치는 노릇이라고 여기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부러진 화살을 다룬 대법원 판결문이 엉터리임을 보여주는 물증은 곳곳에 있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대법원 판결문이 엉터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밝혀진 마당에, 더 이상 씨부렁거려 봐야 제 입만 아프겠다 싶은 것입니다.

1. 박홍우 판사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화살을 맞고 다쳤다는 박홍우 부장 판사는 2007년 1월 15일 사건 당시 경찰 수사에서 김명호 교수가 화살이 장전된 석궁을 들고 계단 위에서 아래로 1m50cm 앞에서 조준해 쐈으며 "죽여 버린다"며 달려들어 몸싸움을 했으며 사람들이 달려와 떨어진 다음 화살을 빼냈다고 했습니다.

반면 김명호 교수는 계단을 내려갔는데 박홍우 판사가 석궁 앞부분을 잡는 바람에 서로 석궁을 뺏으려고 몸싸움을 했고 그러는 사이 화살이 우발적으로 발사됐으며 둘이 같이 넘어져 있는데 사람들이 달려와 둘을 떼어놓았다고 했습니다.

김명호 교수의 진술은 경찰과 검찰 수사에서 법정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습니다. "화살이 장전된 석궁을 들고 다가가 몸싸움을 했으나 일부러 쏘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더하고 빼고 할 대목이 없습니다. 매우 단순합니다.

그러나 박홍우 판사의 진술은 그렇지 않습니다. 박홍우 판사가 1월 15일 경찰에서 한 진술(앞에서 세 번째 단락)은 1월 25일 검찰 조사에서 바뀝니다. "1.5m 앞에서 쐈는지 여부와 조준해서 쐈는지 여부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박 판사는 "홍성훈 송파경찰서 경찰관이 1월 19일께 찾아와 "상처를 진료한 서울대 병원 의사 박규주가 '현재의 상처만으로는 화살의 방향을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진술을 바꿨다"고 2007년 8월 28일 1심 여덟 번째 공판에서 증언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검증이 1심 공판에서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어진 아홉 번째와 열 번째 공판과 마지막 선고 공판이 피고인과 변호인이 없는 상태에서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항소심에서는 김명호 교수와 박훈 변호사가 이를 검증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답이 나왔습니다. 항소심 공판에서 박규주 의사는 "저는 방향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없다"고 했으며 홍성훈 경찰관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박홍우 판사가 밝힌 진술을 바꾼 동기는 거짓입니다. 그러면 과연 누구 말이 더 믿음직스러운가요?

게다가 1월 15일 경찰 조사에서는 몸에 박혔다는 화살을 뽑은 시점에 대해 "김명호 교수와 몸싸움을 벌인 다음"이라 했으나 1월 25일 검찰 조사에서는 "몸싸움을 벌이기 전에"라고 자기가 열흘 전에 한 말을 뒤집었습니다. 따라서 박홍우 판사 진술이 훨씬 더 신빙성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원 판결문은 이에 대한 해명 없이 △화살에 맞은 것을 발견하고 화살을 빼냈으며, △몸싸움을 하면서 현관 바깥쪽으로 탈출 시도를 하고 △구조 요청을 한 사실, △함께 굴러 넘어졌는데 피고인이 배 위에 올라타 죽여버리겠다고 말한 사실 등을 "비교적 일관성 있게 진술하고 있다"고 엉터리로 적었습니다.

엉터리는 하나뿐이 아닙니다. 피고인이 "배 위에 올라타 죽여버리겠다고 말한 사실"이 있다는데, 이 또한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입증되지가 못한 것입니다. 1심에서 아파트 경비원은 당시 정황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1층 입구에 두 분이 머리를 맞대고 일어나려고 하는 것인지 싸우는 것인지는 모르겠고, 우편함 쪽에는 박판사님이, 올라온 계단 쪽에는 김명호 교수가 있었다". 김명호 교수가 배 위에 올라탔다는 얘기는 없고 둘 다 넘어져 있었다고만 했습니다.

박홍우 판사의 운전기사도 배 위에 올라타 있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차를 세우고 달려가면서 봤는데 두 분이 엉켜 있으면서 몇 개 안 되는 계단을 우당탕탕 내려오고 현관 앞에서 넘어졌다. 서로 멱살인지 멱살 부위를 맞잡고 있었다."

2. 박홍우 판사 몸에서 피가 났다고?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목격자들은 서로 몸싸움하던 피고인을 위 박홍우로부터 격리시킨 다음 위 박홍우의 옷을 들추니까 시뻘겋게 피가 묻어 있어서 경찰과 소방서에 바로 신고했다는 것이고, 출동한 소방관의 진술에 의하면 위 박홍우는 배꼽 부위에 상처가 있었고 출혈로 인하여 속옷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고 했으나 이 또한 정확하지 않습니다.


% 서형 작가.

항소심 재판을 끝까지 지켜보고 기록으로 남긴 서형 작가(책 <부러진 화살>을 펴낸 사람)는 2월 7일 경남도민일보 블로거 인터뷰에서 "사건 당일 현장에 있었던 사람 가운데 박홍우 판사 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고 얘기한 사람은 한 명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출동한 소방관'은 전혀 다른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항소심은 어느 얘기가 맞는지 증거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원 판결문은 항소심이 심리 미진도 없고 채증 법칙과 관련한 위법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을 수 있습니까?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소방대원의 구급 활동 일지 기록입니다. "피의자(김명호)가 1~2m 전방에서 석궁으로 활을 쏘았다고 하며, 화살이 복부에 맞고 튕겨 나갔다고 함"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은 권영록 소방대원은 "박홍우 판사한테서 직접 들은 말"이라고 법정에서 증언했습니다.

3. 고의로 쐈는데 화살이 부러졌다고?

고의로 겨냥해서 석궁을 쏘면 박홍우 판사 몸에 났다는 크기 정도 상처는 절대 날 수 없음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제대로 쏘면 경찰 실험 결과에서 두께 2cm 합판을 뚫고 15cm나 더 나가버린 데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러진 화살이 사람 몸에 상처를 낼 수 있는지, 아니면 사람 몸에 상처를 낸 화살이 부러질 수 있는지에 대한 증명이라도 있었어야 하는데 이 또한 없습니다. 1심 재판에 불려나온 고영환이라는 석궁 전문가는 "화살이 앞 가늠쇠에 맞아서 부러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러진 화살이 양복과 조끼과 와이셔츠와 내복과 런닝셔츠를 뚫고 길이 2cm, 깊이 1.5cm 상처를 냈다는 증명이, 항소심 재판 과정 어디에서 있지 않은 것입니다.

또 부러진 화살은 화살촉이 뭉툭했다고 하는데 이 뭉툭한 화살촉이 양복을 비롯해 여섯 겹 옷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증거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영환이라는 석궁 전문가는 "화살촉은 콘크리트 벽 같은 데나 단단한 벽에 맞으면 열처리가 안 돼 있기 때문에 뭉그러진다"고 1심 법정에서 증언했습니다.

그렇다면 김명호 교수가 쏜 화살이 박홍우 판사 몸에 박혔다가 부러졌을 개연성은 없을까요? 일단 몸싸움하는 과정에서 부러졌을 수 있는데, 이는 박홍우 판사가 몸싸움을 벌이기 전에 화살을 뽑았다고 검찰에서 진술을 바꾸는(경찰에서는 몸싸움을 벌인 다음이라 했습니다) 바람에 검토해 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처럼 박홍우 판사의 진술이 오히려 김명호 교수 진술보다 미심쩍고 박홍우 판사 몸에 피가 났다는 증명도 충분하지 않고 부러진 화살로 말미암아 박홍우 판사 몸에 상처가 날 수 있다는 입증도 돼 있지 않은 상태인데도 대법원 판결문은 항소심 재판이 제대로 진행됐다고 적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항소심에서 채택된 증인들은 모두 김명호 교수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습니다. 절차가 완전 엉터리였던 1심에서도 김명호 교수의 '고의성'을 뒷받침할만한 증언은 나온 적이 없습니다. 아파트 경비원과 운전기사 출동한 119 소방대원들, 그리고 석궁 전문가들이 모두 그랬습니다.

그랬는데도 1심은 "박홍우에게 다가가 석궁에 장전된 화살 1발을 박홍우에게 발사하고"라면서 "상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넉넉하게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항소심은 여기서 더 나아가 "박홍우를 향하여 주저함이 없이 석궁을 발사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상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에 넉넉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이런 엉터리를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대법원의 지시하에 증거조작이 시작되었기 때문) "원심(항소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심리 미진 또는 채증 법칙과 관련한 위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앞에서 적어 보여드린 그대로, 합리적 의심을 해소할 수 없는 증거들이 수두룩한데도 말씀입니다.(끝)

2012. 2.11 김훤주(* 부분 수정과 주석)

"석궁사건, 상해냐 과실상해냐 증명 문제, 화살 없어 상해죄 성립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