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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멋대로 하는 지배블록이 있다
(토론회, '김명호 교수사건 재판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08.5.30, 참여연대 느티나무 홀)

강내희(중앙대 영문학과)


작년 2007년 10월 15일의 1심 판결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금년 3월 14일의 항소심에서도 같은 형량을 선고받아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김명호 교수 사건은 따지고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거나 기억하는지 모르지만 김명호 교수는 수학자이다. 수학자라면, 그리고 교수라면 당연히 연구실에 있어야 한다. 그런 그가 지금 감옥에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김명호 교수가 대한민국 사법부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고등법원 판사 박홍우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김명호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징역 4년이라면 보통 사람에게는 어마어마한 형량이다. 그런 형량을 선고한 것을 보면 대한민국 사법부는 김명호 교수와 박홍우 판사 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명징한 판단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사건을 어처구니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법부가 유죄판결의 근거로 제시하는 모든 증거나 이유가 도대체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언어도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상식은 우리에게 법원의 그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판단과 결론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김명호 교수에 의해 상해를 입게 되었다는 박홍우 판사의 주장 자체가 입증되지 않았다. 자칭 ‘피해자’의 진술이 입증되지 않았다면 타칭 ‘가해자’가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을 이유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김명호 교수는 지금 감옥에 있다.

김명호 교수는 흔히 ‘석궁교수’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사건은 ‘석궁사건’으로 또는 ‘석궁테러’로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불리기도 한다. ‘석궁사건’이라는 표현을 쓰는 쪽은 그에 대해 우호적이거나 아니면 중립적인 반면, ‘석궁테러’라는 표현을 쓰는 쪽은 그를 범인 취급하는 편이다. 전자의 경우 그는 ‘석궁사건’의 주인공 또는 희생자로 인식되고, 후자의 경우 그는 일종의 테러범으로 인식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명호 교수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은 그를 석궁사건을 일으킨 행위자, 또는 석궁사건으로 인한 희생자로 보는 해석보다는 ‘석궁테러의 주범’으로 보는 해석이 재판에서 승리했음을 보여준다.

김명호 교수가 ‘석궁사건’의 주인공 또는 희생자가 아닌 ‘석궁테러의 범인’이 되는 데에는 과정과 요건이 필요했다. 여기서 그것들을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문제의 과정이 대한민국의 경찰 및 사법권력, 보수언론 등에 의해서 관리되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해야 한다.
사실 오늘 토론회를 위해 박훈 변호사가 제출한 발표 내용에도 나와 있듯이, ‘석궁테러’는 커녕 ‘석궁사건’마저 성립하지 않는 것이 이번 사건의 모습이다. 우선 피해자라는 고등법원 판사 박홍우의 진술은 진술자의 정체성이 과연 판사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오락가락 그 자체이고, 경찰이 수거했다는 증거물 또한 현장보전이 전혀 되지 않아서 경찰과 검찰에 의한 증거 조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인데다가 재판과정은 재판과정대로 아마 대한민국이 지속하는 한, 최악의 판결 사례로 남을 만큼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명호 교수는 지금 감옥에 있다. 자신이 연루되었는지 되지 않았는지 불분명한 한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석궁테러의 범인으로 둔갑해버렸기 때문이다.

2007년 1월 15일 고등법원 판사 박홍우가 김 교수가 쏜 석궁에 맞아 상처를 입었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현직판사에 대한 ‘석궁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퍼졌다. 처음 언론이 ‘석궁테러’라는 표현을 쓴 것은 ‘피해자’ 박홍우의 진술만 받아 적은 경찰이 발표한 사건 개요를 그대로 수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며 자신은 석궁을 쏜 적이 없다는 ‘가해자’ 김명호 교수의 발언이 소개된 뒤에도 주요 언론은 ‘테러’라는 표현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쓰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의 일방적인 사건 성격 규정을 언론이 수용하자 사법부도 '얼씨구나' 하고 춤을 췄다. 1월 19일 사법부는 전국 법원장 회의를 열어 석궁사건을 “사법부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고 “엄단”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고 나선 것이다. 이후 김명호 교수가 박홍우 판사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재판에 대해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하지만 그 내용이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번 사건은 결국은 ‘석궁테러’로 규정되었고, 2007년 10월 15일, 2008년 3월 14일에 있었던 1심 재판과 2심 재판에서 김 교수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대법원에 상고를 해둔 상태이다.



이 모든 것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재판과정에서 재판부에 의해서는 의도적으로 무시되었지만,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난 진실은 ‘석궁테러’는 커녕 ‘석궁사건’조차 과연 일어났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김명호 교수가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그가 유죄라서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자의 일방적 주장만 수용되고, 증거 아닌 증거가 제시되어도 아무런 실증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는 재판 아닌 재판이 진행된 결과일 뿐이다. 이 정도 되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사법부가 썩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언론이 썩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에는 멋대로 하는 지배블록이 있기 때문이다.

김명호 교수 사건과 관련하여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 하나 있다. ‘석궁교수’가 되기 전 김명호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재임용에 탈락한 교수였다. 오늘 김명호 교수가 감옥에 있는 것은 바로 이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왜 재임용에 탈락했는가?
1994년 성균관대의 입학시험에 제출된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 원인이었다. 수학자 김명호 교수가 이후 학교에서 쫓겨나고 급기야 오늘 감옥에 갇히게 된 원인은, 그가 잘못된 일을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한 데 있다. 그가 대한민국 사법부에 의해 ‘석궁테러’의 범인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그가 ‘석궁교수’가 되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가 ‘석궁교수’가 된 것은 그가 재임용에 부당하게 탈락했기 때문이고, 그가 재임용에 부당하게 탈락한 것은 그가 자신이 속한 대학의 중대한 실수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가 감옥에 있는 것은 그가 옳은 일을 했기 때문인 것이다 !

김명호 교수 사건의 본질은 한 교수가 정의로운 행동을 했으나 우리나라의 사법제도가 그런 점을 묵살하고, 그를 범죄인으로 만든 데 있다.
한국의 사법제도는 어떻게 정의로운 한 인간을 죄인으로 낙인찍을 수 있는가?
오늘 사법제도가 정의로운 인간을 죄인으로 만드는 구도로 작동하고 있고, 오늘 우리 사회가 사법제도로 하여금 그런 만행을 저지르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와서 한국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하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지만, 이는 착각이다. 절차상으로나 형식적으로 보면 우리사회가 민주화된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그 민주화가 전혀 실질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실질적 민주주의의 차원에서 보면 형식적, 절차적 민주화는 실질적 비민주주의, 사회적 불평 등을 호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김명호 교수의 의로운 행위는 한국사회의 불평등 구조, 실질적 비민주주의에 의해서 합법적으로 그의 교수직을 박탈해도 되는 지탄받을 일, 그를 4년이나 감옥에 가둘 판결의 합법적 이유가 되었다. 사법절차와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요건이 개인의 기본권 옹호라는 더 실질적인 민주주의적 가치를 짓밟는 장치이자 수단으로 바뀐 것이다.

김명호 교수 재판의 본질은 이렇게 보면 사이비 민주주의 대 실질적 민주주의의 투쟁이다. 김 교수가 4년의 징역을 받은 것은 그가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꿰뚫어보고, 실질적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투쟁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균관대의 입시 오류에 대해 눈감아 주기보다는 의롭게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대학을 개혁하고자 했다. 그는 입시오류의 폭로로 성균관대학이 입을 불이익 이전에 입시를 통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수험생들 전체의 권익을 먼저 생각했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괘씸죄에 걸려 학교에서 쫓겨나고, 법원에서 자신의 권리를 되찾으려 했으나, 사법 권력이 오히려 대학권력의 편을 드는 것을 보자 그는 적당하게 타협하지 않고 사법 권력에 대해서도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가 사법 권력과 타협했더라면 혹시 재임용에서 구제를 받았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사법 권력이 보인 잘못된 행태, 예컨대 대법원장의 직무유기나 위법 행위와 같은 문제들을 낱낱이 지적함으로써, 자신의 사적인 이해에 큰 손해가 올 수 있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드디어 그는 박홍우를 징치하기 위해 석궁을 들고 항의를 하러 갔는데, 그로 인해 그는 지금 감옥에 있다. 그리고 감옥에서도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한국 사법제도와 온몸으로 투쟁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명호 교수가 석궁을 든 것은 모든 부당한 것들, 모든 더러운 것들, 모든 나쁜 것들, 모든 있는 것들에 맞서 일어난 행위, 저항의 행위였다. 비록 그 모습은 황야의 의인처럼 외로운 것이었지만 그의 뒤에는 각종 사회 권력의 희생자로 내몰린 못난 사람들, 비천한 사람들, 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 동성애자와 같은 수없이 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서 있다고 봐야 한다. 의인은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따라서 결코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니다.

김명호 교수가 근거도 없이, 사실관계와는 무관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관점에서 보면 필연적이다.
사회구조적으로 그는 다른 소수자들과 함께 사법부를 자신의 통치 기구로 활용하고 있는 우리 사회 지배블록의 통제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가 사법부에 의해 구제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착각이다.
오늘의 사회 구조 속에서는 사법부의 맹성을 기대할 수가 없다. 어찌 그것이 사법부만의 맹성으로 이루어지겠는가.
사법부가 바뀌려면 우리 사회의 성격 자체가 바뀌어야만 한다.

김명호 교수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사회의 변혁까지 겨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입시오류 지적, 대학당국으로부터의 징계, 재임용 탈락, 사법부에서의 패소, 석궁 시위, 그리고 최근의 항소심에서의 4년 언도 등으로 이어지는 김명호 교수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우리 사회 전체의 성격을 시정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성격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운동에 더욱 진력해야 한다! 김명호 교수의 재판 결과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