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쁜 약 vs 나쁜 수학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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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



무엇을 위한 혁신운동인가?

정부는 최근 들어 각종 혁신운동을 외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혁신 운동인가? 수직상하적인 체계 속에서 엄격한 행동강령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면, 사회의 부조리가 줄어들까? 그래서 자국민 보호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우리 국외 대사관들 직원의 행위 방식이 크게 변할까? 아니다. 정부 기관이 실제 사례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지만, 정부 기관의 최고 미덕인 공익 보호와 갈등 중재 능력이 활성화된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각종 행동강령을 만들고 시민들에게 정직을 강조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눈에 띄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면, 각국에서 내부고발 사례를 분석하고 보호하려는 정책 따위는 애시 당초 합당한 근거를 가질 수 없다.

포비스(Forbes)에서 올해의 얼굴로 선정한 미국 식약청 과학자 그래햄은 2004년 11월 18일 국회 청문회에 서게 된다. 식약청 중견 과학자로서 그의 임무는 판매 중인 제약품의 감시다. 그는 해당 제약품의 긍정적 치료효과뿐만 아니라 부작용을 수시로 검토해야 한다. 문제의 발단은 비옥스(Vioxx)라는 관절염 치료용 항염증제였다. 심장마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옥스의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확신한 그래햄은 위험분석(risk analysis)에 들어갔다. 그가 연구결과를 공표하려고 했을 때 식약청 정책 결정자로부터 압력이 있었다. 그래햄이 식약청 직원이 지켜야 할 준수사항을 어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준수사항은 어디까지나 공익에 반하지 않을 때 의미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한 준수사항이 현재 판매 중인 제약품의 치명적 부작용을 은폐하는 데 도용된다면, 식약청은 시민의 건강이 아니라 제약회사의 이권을 보장하는 단체가 된다. 직장을 잃어버리게 될 위험에 처한 그래햄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급기야 국회 청문회에 서게 된 것이다. 비옥스는 전량 회수되었고,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리콜’ (recall)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그래햄의 내부고발 사건은 식약청의 의사결정과정(decision making process)을 공론화시켰고, 정부 기관과 시민 단체는 여러 제도 개선안을 찾았다. 비옥스는 치명적인 부작용의 명시와 함께 새로운 제도 틀 안에서 판매 허가를 올해 다시 받았으나, 해당 제약회사는 여전히 판매를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햄 내부고발 사건과 김명호 교수의 사건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이 있는가?

첫째, 둘 다 전문 지식의 평가를 요구하는 내부고발 범주에 속한다. 제역품의 위험 분석에 동원되는 지식은 복합적이다. 그 위험분석에는 분자생물학에서 집단 통계학까지 동원된다.

둘째, 둘 다 해당 소속 집단이 공익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는 증거에 바탕을 둔다.

셋째, 둘 다 조직체계 내의 상부 집단의 압력을 받았다.

그래햄의 내부고발이 공론화되자, 익명의 여러 식약청 관계자의 허위보고가 미국 정부 책임 입안회, 곧 ‘GAP'(Government Accountability Project)에 접수되었다. 강제 해직당한 김명호 교수가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게 되자, 성대 측은 다음과 같이 파렴치한 답변을 법원에 제출했다.(참조: 법정 증언)

“학교의 문제를 그것도 잘못이 없는 문제를 큰 잘못이 있는 것처럼 외부에 유포한 사항은 학교를 곤경에 처하게 하려는 의도이고 해교 행위라 생각되며 학교 당국도 이에 단호히 대처한(주: 정직3개월) 바 있습니다. 우리들의 하나같은 걱정은 자기가 속하는 학교의 문제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극히 비정상적인 염려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입시 문제의 가정 자체가 모순을 함축하는 데 정상적인 문제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개보다도 못하다. 개는 잘못을 하면 대부분 꼬리를 감춘다. 사이언스(Science)에 실리면 마치 위대한 과학자가 탄생한 것처럼 보도하는 국내 언론매체의 조잡함은 따지지 말자. 적어도 사이언스는 과학자 집단에서 공인된 만큼 날조와 허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사이언스마저 김명호 교수의 부당 해직을 ‘올바른 대답에 대한 치명적 희생’ (The High Cost of a Right Answer)로 묘사하고 있다.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은폐한 자들은 학교 해교 행위를 운운하는 조직폭력배 두목의 발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시민 건강권과 맞물린 비옥스의 부작용 은폐가 수학 문제 오류 은폐보다는 훨씬 공익에 반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망각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은, 교육이 사회 갈등 속에서 양심적 행위의 실제 제도적 기반이라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지저분한 은폐가 통용되는 현실에서 그리고 모범 사례가 교육부에 의해 외면당하는 현실에서 시민의 의식과 참여 정신을 탓하는 것은 책임 회피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비옥스의 위험분석은 상식적 차원에서 명백한 위험성을 함축하지 않는다. 질병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모든 약품은 긍정적 효과와 부작용을 동시에 수반한다. 심지어 어떤 경우 질병은 문화적 습성과 연관되기도 한다. 술잔 돌리기 문화가 간염 발생의 복합적 원인 중에서 결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면, 사회의 간염 보균자 수의 통계적 감소는 새로운 약품 개발로 이뤄질 수 없다. 제약품의 치명적 위험에 대해서는 항상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다. 비옥스가 올해 다시 판매 허기를 얻은 것은 단순히 식약청이 제약회사의 편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식약청이 치명적 부작용 속에서도 고통 감소를 원하는 소비자층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시민은 그 위험성을 제대로 알 권리가 있다. 이 차원에서 그래햄의 내부고발은 이해되어야 하며, 그의 덕에 비옥스의 부작용은 선전과 판매에서 명시화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내부고발이 식약청 의사결정과정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했기 때문에 중요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김명호 교수가 지적한 입시 수학 문제의 오류는 위험성 분석에 근거한 비옥스의 부작용 평가와 달리 명백하다. 김명호 교수에 대한 가해행위는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파렴치한 짓이다.

그래햄 사건과 김명호 교수의 사건 사이에는 어떤 중요한 차이가 있는가?
내부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래햄은 직장을 잃지 않았지만, 김명호 교수는 아니다.
그래햄이 사회의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면, 김명호 교수는 아예 일부에게는 배반자로 낙인찍혔다. 둘 다 국내외적으로 전문가 집단의 지지가 있었지만, 김명호 교수의 호소는 국가가 외면했다.

식약청 과학자 그래햄의 내부고발 사건 초기에 식약청 관계자들의 압박이 있었음에 주목하라. 이러한 압박이 먹혀들지 않은 이유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전문 단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햄 사건에 개입한 두 단체는 ‘내부고발자 협회’ (Whistleblower Center)와 위에서 언급한 GAP의 적극 개입이었다. 또 법원과 국회의 중재 의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해당 기관의 관계자들의 진지한 관심과 적극적 행동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시민 단체마저도 이제는 정치적 이권과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념에 맞지 않는 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는 듯하다.

사회의 복잡성 때문에 전문 지식 평가가 필요한 내부고발은 제도 개선의 증후군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이를 인식한 국가는 해당 기관에서 내부고발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내부고발 전문 연구기관, 보호 정책 그리고 아울러 법적 장치를 개발한다. 우리는 그저 조직체계 구성원들의 활동 제한을 위한 행동강령과 성적표 짜기에만 바쁘다. 일이 잘 안되면 시민 의식을 탓한다.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지하철은 우리 지하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정부 기관은 선진국의 모범 사례를 운운하면서 실제 문제 해결이 필요할 때 침묵한다. 제국주의자의 꿈을 실현하려는 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미국보다 우리 시민 의식이 떨어진다고 나는 여기지 않는다. 아니 시민 의식을 따지는 것은 매우 유치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정책 개선과 의지다. 우리의 정부 기관에는 양자가 결여되어 있다. 교육부 관련 지방 교육청 내부고발로 해고당한 사람조차 교육부가 구제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부가 교육의 현실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며, 해당 부서의 중재 능력 대신에 업적 성과를 숫자로만 평가하는 정부가 자국민 보호를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햄 사건을 볼 때 부러울 수밖에 없다.

혹자는 10년 지난 사건에 김명호 교수가 다시 법적 이의를 제기 하는 것에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런 구제책이 없었다. 정부의 내부고발에 대한 인식 부족 그리고 내부고발 유형 분석 및 의미조차 연구해 놓지 못한 이 땅의 지식인들의 무책임함을 떠나, 소위 ‘정부 혁신 운동’의 일환으로 각 기관마다 각 종의 구제책이 현재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그러한 구제책이 있어도 해당 기관의 중재 의지와 능력이 결여된 상태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해당 기관은 시민에게 그저 ‘서류 보충 요구 기관’일 뿐이다. 훌륭한 경찰이 결정적 단서로 범인을 추리한다면, 미숙한 경찰은 신분증 조사로 범인을 잡으려고 한다. 내 눈에는 우리 정부 기관의 우두머리들은 미숙한 경찰로 보인다.

교육부는 해직 교수 구제책을 최근에 마련했지만 실제로는 구제 의지가 없다. 교육부가 김명호, 전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 및 전 계명대 이호영 교수 등의 사건을 철저히 외면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각기 성격이 다른 사건이지만, 이들은 최소한 재임용 승진 절차에 필요한 학문 업적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사건을 외면한다면, 교육부가 마련한 해직 교수 구제책은 선을 지향한다지만 실제로는 악에 도용될 여지가 크다. 모든 해직 교수가 정당한 행위에 대한 보복으로 직장을 잃은 것은 아니다. 잘못하면 사학비리에 관여한 교수들이 새로운 교육부 행정 정책에 의해 구제될지도 모른다. 무릇 훌륭한 택시 기사는 목적지도 잘 알아야 하지만 이에 합당한 운전 능력을 지녀야 한다. 제대로 된 정부 기관은 정책 개발이 아니라 정책 실현을 위한 중재 능력을 중요시한다. 김명호 교수의 법적 진행 과정을 바라볼 때 우리 정부 기관에는 정책 실현에 필요한 중재 능력과 의지가 없다.

그래서일까? 이 사건의 담당 판사(주: 이혁우)와 성균관대 측 변호사(주: 이재원)가 동일 대학, 곧 성균관대 출신이라는 사실마저 나에게는 석연치 않다. 나의 쓸데없는 의심일 것이다. 경제 성장에 의해서 사회의 갈등이 풀리고 삶의 질이 올라가지 않는다. 다른 선진국도 어느 정도 경제 수준에 도달한 이후 시민 사회의 질을 높이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고, 사회 갈등 해소에서 정부 기관의 중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이제 우리도 그 중요성을 깨닫고 김명호 교수 사건을 재평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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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5월 16일 현재 칩거 중인 진주에서 이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뭘까? 시민 의식은 586 컴퓨터 성능에 해당한다면, 정부 기관의 정책과 해당 관료들의 수준은 386 컴퓨터 성능일지 모른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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