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둘러싼 서울대 정운찬 총장의 ‘두 얼굴

[한겨레 2003.10.10(금) 이유진 기자

김민수 교수 복직요구 시위 18일 오전 국회 교육위의 서울대학교 국정감사에서 고교 등급제로 논란을 벌인 정운찬 총장(오른쪽 끝 안경 낀 사람)과 의원들이 점심식사를 하러 회의장을 나오자, 1998년 서울대 조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해 6년째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김민수 전 교수(왼쪽 끝 안경 낀 사람)와 학생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간호사들을 폭행, 성희롱해 병원 보직 해임과 교수·의사 겸직 해제, 2개월 감봉조처 등의 징계를 받은 이아무개(54)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교수의 병원 겸직을 허가하겠다고 9일 밝혔다. 이 교수는 국가인권위로부터 ‘특별인권교육’ 권고까지 받은 인물이다.

정 총장은 “날마다 이 교수를 찾는 전화를 걸어오는 환자들의 진료받을 권리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벌써 8개월이나 지난 일인데다 임상교수가 환자를 보지 않으면 교수로서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며 동정론도 폈다. 지난 7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 교수가 병원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 지 불과 석 달만이다.

정 총장이 이런 말을 한 날 총장 집무실 밖에서는 김민수 전 서울대 미대 교수가 열흘 넘게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다. 지난 1998년 재임용 심사에서 ‘연구실적 미달’을 이유로 탈락한 김 전 교수는 “미대 원로 교수들의 친일행적 거론에 따른 보복”이라며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고, 5년째 무학점 강의 등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다. (참조: 김민수 교수 연구 실적심사표들)


1998년, 김민수 교수의 재임용을 바라는
교수 일동에 참여한 정운찬

그러나 정 총장은 김 전 교수 사안에 대해서는 “대법원에 계류 중이어서 바깥에서 논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을 아끼며 “(나한테 이러지 말고) 차라리 미대 교수들이나 대법원에 가서 로비를 하라”고 ‘충고’까지 해왔다.

이 교수와 김 전 교수의 사안을 한데 놓고 비교하면 둘 가운데 한사람은 그 자체를 매우 모욕적으로 받아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 교수와 김 전 교수 두 사람에 대한 정 총장의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평소 “학내 문제는 서로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지론을 펼쳐온 그에게 이런 이중적 태도가 어떤 ‘합리성’을 갖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대법원 패소 => 파기환송 => 서울고법 패소한 후의, 표리부동한 정운찬의 태도
[경향신문 2005-02-01 18:48]

서울大 총장 “부담 무릅쓰고 김민수교수 재임용”

“김민수 교수와 관련된 일을 다음 총장에게 절대 넘기고 싶지 않았다.”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1일 김민수 전 미대교수의 재임용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말 못할 속내를 털어놓았다.

2002년 취임 당시 정총장은 그의 개혁적인 성향으로 인해 김교수의 복직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사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총장 취임후 최근까지 김교수 복직에 대해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일부에서는 “실망이다” “정운찬이 변절했다”며 정총장을 공격했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는 얼마 전 김교수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총장에 대해 경고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정총장은 이때마다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면 입장을 정리하겠다”고만 대답할 뿐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정총장은 1일 경향신문 기자와 단독회견을 하면서 지난 2년6개월간 여러 비난의 목소리에도 불구, 말을 아꼈던 이유를 털어놨다. 정총장은 “김교수가 제기한 소송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서울대가 먼저 소송을 끝내자고 제의하긴 무리였다”면서 “또 법원판결이 내려지면 교수들을 설득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총장은 김교수에 대한 서울대 일부 교수들의 부정적인 태도 때문에 원만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법원 판결이 내려진 지금도 서울대 일부 구성원들은 김교수가 학교로 돌아오는 것을 반대한다”며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김교수 재임용 결정은 스스로도 상당한 위험을 무릅쓴 것”이라고 밝혀 학내반발이 만만치 않았음을 시사했다.

‘의사결정의 민주화’를 중시하는 정총장 특유의 스타일도 오히려 오해를 증폭시켰다. 김교수 복직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입장을 모두 수렴해 조율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지연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정총장은 이 점에 대해 “총장이라고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라며 “학내의 반발을 무마하는 것도 총장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정총장은 “김교수가 7년이나 기다린 점에 대해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재임용은 꼭 이루어질 것이니만큼 김교수가 나를 믿어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김교수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이 결국 서울대를 위한 일이자 국가를 위한 일 아니겠느냐”며 “다른 교수들도 이런 심정을 이해해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일을 통해 서울대는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며 “인사행정에서의 절차적 문제를 더 신중히 해야한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을 맺었다.

  • 김민수 사건, 서울고법 판결문
    〈김동은기자 dek@kyunghyang.com〉



    신정아 "정운찬, 호텔 바서 만나 대놓고 내가 좋다고…"

    신정아가 쓴 '신정아 사건', 유력인 실명 거론 파문 예고

    강양구 기자 2011.03.22 14:57:00

    신정아 씨가 입을 열었다.

    지난 2007년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임하던 당시 박사 학위(미국 예일 대학)가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나 큰 파장을 일으켰던 신정아 씨가 그간의 전말을 밝힌 <4001>(사월의책 펴냄)을 펴냈다. '4001'은 신 씨가 2007년 10월부터 2009년 4월까지 1년 6개월간 복역하며 가슴에 달았던 수인(囚人) 번호.

    신정아 씨는 이 책에서 예일 대학 박사 학위 수여의 전말, 연인 관계였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만남부터 파국, 동국대 교수 채용 과정과 불교계와의 관계, 정치권 배후설과 청와대와의 인연, <문화일보> 누드 사진의 전말 등 그간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특히 이 책에는 이른바 '신정아 사건'의 전후에 관계된 이들이 실명 또는 (누구인지 짐작이 가능한) 가명으로 언급되고 있어서 또 다른 논란을 낳을 전망이다. 변양균 전 정책실장은 물론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 정운찬 전 총리(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주요 언론의 전·현직 기자들이 그들이다.

    ▲ 신정아 씨는 이른바 '신정아 사건'의 전말을 밝힌 <4001>(사월의책 펴냄)을 펴냈다. '4001'은 신 씨가 2007년 10월부터 2009년 4월까지 1년 6개월간 복역하며 가슴에 달았던 수인(囚人) 번호. ⓒ프레시안(최형락)
    서울대 미술관장 제안한 정운찬 "신정아 씨는 사랑하고 싶은 여자"

    우선 신정아 씨는 이 책에서 정운찬 전 총리가 서울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던 중 서울대학교 미술관장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제안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 전 총리가 신 씨에게 지속적으로 사적인 만남을 강요하며, 더 나아가 연인 관계를 요구한 정황을 폭로해 또 다른 진실 공방이 예고된다.

    정운찬 전 총리는 "신정아 씨는 미술관 운영에 관해 조언을 받기 위해 만나본 미술계 관계자 중 하나였고 관장 후보로 거론된 것이 아니다"라며 "처음 만난 30대 초반 인물, 그것도 사립미술관 큐레이터를 몇 년 한 것 외에는 별다른 경력도 없는 사람한테 200억 원짜리 서울대 미술관의 관장 자리나 교수직을 제의한다는 게 상상이 되느냐"고 해명했었다.

    그러나 신정아 씨의 설명은 다르다. 신 씨의 설명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05년 초여름 '갤러리 인' 양인 사장의 소개로 서울대학교 총장실에서 처음 만났다.

    신정아 씨는 "(이 만남 이후로) 정 총장은 (서울대 미술관에는) 나이 많은 관장보다는 젊고 추진력 있는 내가 적격이라고 했다"며 "당시 미술사 전공 교수도 한 사람 필요한 상황이니, 미술사 교수 임용과 동시에 미술관을 맡기면 내 나이가 어려도 문제될 게 없을 거라고 했다"고 전했다.

    신정아 씨는 "(정 총장은) 다만 젊은 내가 관장을 하게 되면 다른 교수들에게서 말이 나올 우려가 있으니 관장을 공석으로 두고 부관장으로서 미술사 교수가 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며 "어찌 되었건 서울대 미술관 개관을 책임진 정 총장이 나를 유일한 대안이라고 하니 정말이지 기쁜 일이었지만, 일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신정아 씨는 정운찬 전 총리가 지분거린 사실을 폭로했다. 신 씨는 "언론을 통해 보던 정 총장의 인상과 실제로 내가 접한 정 총장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며 "내가 보기에는 겉으로만 고상할 뿐 (정 총장의) 도덕관념은 제로였다"고 회고했다. 정 전 총리가 늘 밤 10시가 다 된 시간에 만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상황도 구체적이다.

    신정아 씨는 "정 총장이 밤늦은 시간에 만나자는 것을 매번 거절하는 것이 죄송해서 처음에는 점심 때 뵙자고 여러 번 완곡하게 말씀드렸지만, 정 총장은 낮에는 일정이 너무 바빠 저녁식사 후에나 가능하니 그 시간에 만나자고 했다"며 "만나자는 장소는 대개 (방배동 근처) 팔레스 호텔에 있는 바였다"고 설명했다. 신 씨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정 총장은 안주 겸 식사를 시켜놓고서, 필요한 자문을 하는 동안 처음에는 슬쩍슬쩍 내 어깨를 치거나 팔을 건드렸다. 훤히 오픈되어 있는 바에서 시중드는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마당에 그 정도를 성희롱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불쾌한 표정을 짓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수십 분 정도를 견디다 보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여러 사람들이 정 총장을 만나러 몰려오는 것이었다.

    내가 늘 저녁자리를 빨리 빠져나가자 정 총장은 나와 먼저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사람을 만나려는 것 같았다. 한국은행 사람들이나 서울대 교수들, 심지어는 신기남 국회의원까지 동석을 한 적이 있었다. 정 총장은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다른 일정이 있다면서 먼저 자리를 떠서는 곧장 밖에서 다시 나에게 연락을 해오는 것이었다." (101~102쪽)

    신정아 씨는 "(이런 상황을 견디다 못해) 고민 끝에 서울대 교수직과 미술관장 제의를 거절했다"며 "서울대에 가게 되면 (정 총장과) 사적으로 공적으로 더욱 얽히게 될 테니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 씨에 따르면, 정운찬 전 총리의 지분거림은 계속되었다.

    "(서울대 자리를 거절하고 나서) 팔레스 호텔에서 만났을 때는 아예 대놓고 내가 좋다고 했다. 앞으로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고, 심지어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날 내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정 총장은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돌발행동을 내 앞에 보여주었는데, 그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서빙하는 아가씨의 눈치를 보아가며 한 행동이었으니 술에 취해 실수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웬만하면 서로 껄끄럽지 않게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나는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104쪽)

    신정아 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정 총장은 내게 서울대 교수직을 제안한 일이 전혀 없다고 딱 잘라 부인을 했다"며 "그러던 중 검찰이 확보한 통화 기록에 정 총장과의 통화 사실이 수도 없이 드러나 있었고, 그 중에는 정 총장이 잇달아 여러 통의 전화를 했는데 내가 전혀 받지 않은 기록들도 나와서 검찰이 당황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진성호 기자 "택시를 타자마자 윗옷 단추를 풀려고…"


    발행일 : 1999.04.19 / 문화 / 37 면
    '4년전 삼풍백화점 사고 때 9시간 가까이 콩크리트 더미에 묻혀 있다 구조됐...' - 진성호 기자
    신정아 씨는 이 책에서 전·현직 기자들의 사적인 인연을 실명을 언급하며 거론했다. 특히 신 씨는 사건이 나고 기자들의 돌변한 모습을 해당 기사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배신감을 토로했다. 대다수 기자는 실명으로 등장하나 딱 한 사람 익명으로 등장한다. 바로 전 <조선일보> 진성호 기자다.

    신정아 씨는 "(1999년 봄) 진성호 기자가 한 전시를 앞두고 크게 기사를 실어주었고, 전시 오픈에 임박해서는 또 한 번 기사를 써주었다"며 "그래서 전시회를 도운 미술계 분들이 모여 진성호 기자와 함께 식사를 하고 하얏트 호텔의 헬리콘 바에 가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신 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일행은 자연스럽게 폭탄주를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함께 일어나 노래를 부르다보니 어쩌다 몸이 약간씩 부딪히는 일이 있었는데, 진성호 기자는 그럴 때마다 내게 아주 글래머라는 소리를 했다. 화가 치밀었지만, 술자리였고 다들 즐거워하는 분위기여서 맘대로 화를 내기가 어려웠다. 적당히 피해서 나는 자리에 앉아버렸다.

    그러나 진성호 기자는 계속 나를 끌어당기며 블루스를 추자고 했다. 다른 분들 때문에 정색을 하고 판을 깰 수가 없어서 그냥 꾹 참고 분위기를 맞추기로 했다. (…) 진성호 기자는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아예 더듬기로 한 모양이었다. 허리를 잡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손이 다른 곳으로 오자 나는 도저히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로 피해버렸다.

    (…)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성호 기자는 나를 껴안으려고 했다. 겨우 그를 밀치고 룸에 들어간 나는 정말로 화가 나서 집에 가겠다고 하고 가방을 들고 나와 버렸다. (…) 호텔 로비에 나와 모범택시를 타는데, 진성호 기자와 우리 집의 방향이 같다면서 다들 택시를 같이 타고 가라고 했다.

    (…) 진성호 기자는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달려들어 나를 껴안으면서 운전기사가 있건 없건 윗옷 단추를 풀려고 난리를 피웠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그날 내가 입은 재킷은 감색 정장으로 단추가 다섯 개나 달려 있었고 안에 입은 와이셔츠도 단추가 목 위까지 잠겨 있어 풀기가 아주 어려운 복장이었다.

    (…) 진성호 기자는 그 와중에도 왜 그렇게 답답하게 단추를 꼭꼭 잠그고 있느냐는 소리를 했다. 결국 나는 크게 화를 내면서 진성호 기자의 손을 밀치고는 택시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 기사도 눈치를 챘는지 호텔을 벗어나자마자 길거리에 차를 세워주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앞만 보고 죽어라고 뛰었다." (93~94쪽)

    신정아 씨는 "진성호 기자는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내게 여러 차례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고 나는 그 정도로 덮기로 했다"며 "(그런 일이 있고 나서부터) 나는 옷도 헐렁한 셔츠만 입었고, 청바지에 운동화만 신고 다니며 더 이상 치마를 입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 진성호 기자는 조선일보사를 퇴사하고, 지금은 여당의 유력 정치인으로 알려져 또 한 차례의 논란이 불가피하다.

    신정아와 노무현, 그 인연은…

    이 책에서 또 눈길을 끄는 부분은 신정아 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언급한 부분이다. 신 씨는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는 말만으로도 사람들은 또다시 내가 돌아가신 분의 이름에까지 먹칠을 한다고 손가락질할 것 같다"며 "하지만 노 대통령님부터가 그런 눈치를 보지 않으셨을 것"이라며 두 사람의 인연을 털어놓았다.

    신정아 씨는 "(외할머니의 소개로 처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부터) 대통령은 '어린 친구가 묘하게 사람을 끄는 데가 있다'고 하시면서 더 큰일을 하기 위해 한 번 세상에 나서보지 않겠느냐고 물어오셨다"며 "(그 뒤로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나 기자 회견을 하실 때마다 가끔씩 내게 크고 작은 코멘트를 들어보려고 하셨다"고 주장했다.

    신정아 씨는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 내연의 관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나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사코 나의 귀국을 반대했다고 한다"며 "이미 추락할 만큼 추락하여 바닥까지 온 터에 굳이 귀국을 해서 더 다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신 씨는 "그래도 어른인 똥아저씨(변 전 정책실장)가 책임을 지는 쪽이 낫다는 것이 대통령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신정아 씨는 "하지만 이제는 정치권까지 들끓고 있었고, 당시 한나라당 대표인 강재섭 의원은 특검을 주장하고 있었다"며 "나는 황송하게도 내가 특검 감이 되는지는 잘 몰랐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게 되면 결국에는 아무 관계도 없는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다칠 것 같았고, 특히 내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청와대가 욕을 먹게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신정아 씨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07년 9월 16일 자진해서 귀국한 데는 이런 사정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진실 검증 거치면 파장 만만찮다

    이 책 <4001>은 2007년 7월부터 2010년 8월까지 신정아 씨가 매일매일 기록한 200자 원고지 8000매 분량의 일기 중에서 1300매 분량을 추려서 엮은 것이다. 실제 사건이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은 탓에, 책도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하다. 신 씨의 주장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른바 '신정아 사건'의 전말을 한눈에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 책에서 신정아 씨가 주장한 몇 가지 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 자체로 파장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지난 2007년 언론이 보도한 '신정아 사건'의 상당수가 진실과 다르다는 게 신 씨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신 씨는 "예일대 박사 학위는 브로커와 예일대 관계자가 짜고서 자신을 속인 것"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해왔다.

    그런데 최근에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예일대-동국대 소송 과정에서 계속 드러나고 있다. 신정아 씨의 학위기, 학위 증명서 원본, 예일대 관계자들이 '신정아를 모르는 것으로 하자'고 주고받은 이메일이 미국 법원의 허가 아래 이뤄진 예일대 압수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예일대-동국대 소송은 조만간 그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이 책의 또 다른 포인트는 신정아 씨가 1997년 금호미술관 전시 통역자로 경력을 시작해 2007년 전락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 부분이다. 진실 검증이라는 혹독한 과정을 견뎌낸다면, 이 부분은 훗날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문화 엘리트들의 실제 삶이 어떤지 그 속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사료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있다.

    ▲ <4001>(신정아 지음, 사월의책 펴냄). ⓒ사월의책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의 5년간에 걸친 내연의 관계를 기록한 부분에 가장 먼저 눈이 갈 듯싶다. 신정아 씨는 "똥아저씨"라고 부른 변 전 정책실장과의 5년간의 사적인 연애 이야기를 약 30쪽에 걸쳐서 적나라하게 털어놓았다. "꽃뱀"이라는 자신을 향한 낙인에 대한 부정의 몸짓으로 보이지만, 독자에 따라서 불편할 이들도 상당할 듯하다.

    한편, 이 책에는 재야 운동을 했던 외할아버지와 부부의 연을 맺지 못 한 채 신 씨의 모친을 몰래 낳은 외할머니가 수차례 등장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신정아 씨를 직접 연결시킬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외할머니가 누구인지를 놓고, 신정아 씨는 끝까지 침묵을 지킨다. 앞으로 이 책이 화제가 되면서, 그 외할머니의 존재가 밝혀질지도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