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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피스토'는 강단으로 돌아가고 싶다
86년 시국선언으로 19년째 '거리의 교수'...독문학자 장희창 교수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윤지형(besanso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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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에서 포즈를 취한 장희창 교수
ⓒ2005 윤지형

여기, 올해로 나이 쉰하나의 사내가 있다.

그의 '일터'는 부산 해운대 신시가지의 한 아파트 서재이고, 그의 일은 언어와 책, 그리고 원고지인 컴퓨터 자판과 씨름하는 것이다. 아침마다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없으니 직업은 없다고 해야 할 테지만 그렇다고 실업자라고 할 수 없다. 그의 왕성한 번역 활동에 비춰보면 그를 번역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가까운 지인들은 그를 보통 '장 교수'라 부른다.

1986년 교수시국선언 참여 '해직'…동의대 “합법적 '재임용 탈락'” 주장

하지만 그는 이미 19년째 교수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해직 교수'다. 그는 전두환 독재 정권 말기인 1986년 봄, 동의대 독어독문학과 전임강사 신분으로 직선제 개헌을 촉구하는 교수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가 이듬해 2월 '해직'되었다.

당시 그의 해직에 반발해 7명의 동료교수가 농성에 나섰으나 이들도 이런 저런 불이익을 입고 말았다.

그러나 동의대 학교 당국은 그가 정치적인 이유로 '해직'된 게 아니라 교수 재임용제에 의해 합법적으로 재임용 '탈락'되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 교수는 학교를 떠나라"는 이사장
'재임용 심사 평정은 학교 마음대로'라는 학장


비틀거리기 시작한 전두환 정권의 심장을 겨눈 전국적인 교수 시국선언이 있자 동의대 이사장은 200여명이 참석한 교수회의 석상에서 마이크를 잡고 "소위 민주화 운동한다는 교수들은 이 학교에서 나가 주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재임용 '탈락' 이유를 묻는 교수 장희창에게 당시 총장은 "나는 문교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고.

또 장 교수에 따르면, 그에게 탈락 등급인 D급 평정을 내렸던 학장이 밝힌 재임용심사 근거는 이랬다. "재임용 심사 평정은 학생들 학점이 교수 마음대로인 것처럼 학교 마음대로다. 근거를 제시할 순 없다. 그리고 나도 학교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장 교수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은 학교측이 재임용 탈락과 관련해 한번도 공식적인 통고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겨울 방학 내내 이런 저런 압력은 있었지만 탈락과 관련해선 그저 '소문'만 나돌았을 뿐이었다. 때문에 그는 87년 새 학기가 시작된 3월 중순경까지 학교로 출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잡일을 보는 관리인 한 분이 몹시 미안해하는 얼굴로 '위에서 시키는 일'이라며 그의 연구실 문 앞에 달린 문패를 떼어갔다. 그것으로 학교는 그를 공식적으로 '탈락'시킨 셈이었고, 그는 거리의 교수가 되었다.

'재임용 심사 평정표'의 어이없는 낙제 점수

▲ '인간 관계의 원만성'에 D를 매기면서 '銳氣(예기)가 한창 盛(성)함' '融合力(융합력)이 弱(약)한 편임'이라는 의견을 달아놓았다. 그럼에도 '연구 능력'은 A로 매기고 '潛在力(잠재력)은 있는 편임'이라 했다.

ⓒ2005 윤지형
그해 말 그는 학교를 상대로 재임용 탈락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입성한 문재인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았다. 그런데 지루하게 진행되던 재판 과정에서 판사가 직접 학교측에 요구해 제출 받은 자료들 중에서 밝혀진 '재임용심사 평정표'는 그를 아연실색케 했다.

그러한 평정표의 존재 자체도 놀라웠지만 다른 무엇보다 평정표의 각 항목들은 더 놀라운 것이었다.

큰 항목은 일곱 개였는데
우선, 그는 1) '교수로서의 기본적 자질' 항목 중 '건강 상태'만 A등급을 받았고 나머지 '교육자로서의 인격과 품위', '인간관계의 원만성'에선 최하등급인 D를 받았다.

2) '학문 연구 능력과 실적' 3) '교수(강의) 능력과 실적' 두 개의 항목 중 '연구 능력', '외국어 능력', '교수 능력', '교수의 열의'와 '수업 열의 상태' 등에는 A등급이 매겨져 있었지만, 4) 학생지도 능력과 실적 5) 국가 사회에 대한 기여도 항목의 총 8개 항 모두에서 그는 D등급을 받았다. 그것들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 D로 가득찬 평정표
ⓒ2005 윤지형
'학생지도에 대한 열의·자세'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력과 실적' '학내·외 행사참여 및 지도 실적' '국가 사회발전에 학문적으로 참여한 실적' '국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감'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기여도' '건전한 국가관의 확립' 등.

당시 전두환 정권 체제에서 이러한 항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두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는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올바른 국가관을 가지지 못했다'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퇴학 교수'가 된 셈이다.

"교권은 중요하지만 계약 기간 안에서만 존재한다"?
20세기 한국의 판사와 16세기 셰익스피어 시대의 판사


그를 더욱 참담하게 만든 것은 1990년 2월 재임용 탈락 무효 확인 소송에 대한 재판부의 결정이다. "교권은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교권도 계약 기간 내에서만 존재한다"는 요지의 판결문은 문학 연구자인 그에겐 또 다른 의미의 폭력으로 다가왔다.

그때의 심경을 그는 계간지 <당대비평>(2000년 가을호)에서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고리 대금업자 샤일록 영감은 '법의 정의와 계약의 신성함'을 내세우면서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한 채무 보증인에게서 계약대로 한 파운드의 살점을 도려내겠다는 억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판사, 즉 16 세기 영국 시민사회의 건전한 양식은 신성한 '계약'에도 불구하고 안토니오라는 인간을 우선 구해 놓고 보았다. (판사는 계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피는 흘리지 말고 살점만 도려내라고 명령함으로서 샤일록을 굴복시킨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부산 고등법원 양oo 판사는 신성한 '계약'을 존중한 나머지, 샤일록 영감의 편을 들면서 장희창이라는 한 인간을 강단에서 내팽개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해직 과정을 세 문장으로 간명히 정리했다. "나는 군사 정권 물러나라고 도장을 찍었다. 그러자 정권을 등에 업은 사학 재단은 앞장서서 나를 거리로 내쫓았다. 이어서 법원은 그러한 조처를 법을 내세워 정당화하였다."

거리의 교수가 되어도 그의 본업은 연구, '방황' 후 독문학 번역 작업에 열성

▲ "내게 주어진 19년간 의 '자유 연구 시간'을 너무 많이 그냥 흘려 보낸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그는 말한다.
ⓒ2005 윤지형
해직 후 몇 년 간은 그도 어쩔 수 없이 절망하고 '방황'했다. 술도 많이 마시고 생활을 위해 임시방편으로 입시 학원가도 들락거렸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본업'일 순 없었다. 독문학자, 특히 괴테 연구자인 그는 본업인 연구에 몰두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생계에 작으나마 보탬도 되었을 다수의 번역서가 세상에 나왔다.

괴테의 <색체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하여, 후고 프리드리히의 <현대시의 구조>,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독일작가동맹 의장이기도 한 안나 제거시의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원제는 '약자들의 힘'), 밀란 쿤데라 외 지음의 <책 그림책> 등이 그것이다.

그뿐 아니다. 그는 7년여에 걸쳐 <엑크만의 괴테와의 대화>(200자 원고지 5천여 매 가량) 번역을 거의 완성, 세상으로 내보낼 날만 기다리고 있다.

그가 서양 고전 번역에 열성을 다하는 까닭이 있다.

"일본과 비교할 때 우리 나라는 독일 고전들이 제대로 번역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본은 벌써 명치유신 이후에 동서양 고전 번역을 국가사업으로 진행했지요. 독일 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우선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이 제대로 번역된 독일 고전들을 읽게 하고 싶습니다."

<게걸음으로 가다>로 다시 만난 '메피스토펠레스'와 '행동하는 양심' 귄터 그라스'

▲ 귄터 그라스
ⓒ2005 독일 뤼벡 신문
그의 별명은 일찍부터 메피스토펠레스다. <파우스트>를 단순한 스토리로만 읽으면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영혼 구원을 놓고 벌인 신과의 내기에서 보기 좋게 패배한 악마일 뿐이지만 사실 메피스토의 악마성은 '소크라테스의 등에'와 같은 것이다. 세상에 만연해 있는 불의와 부정, 무명(無明)을 외면하지 말고 언제나 깨어 발언하고 행동하라고 우리에게 쉴새없이 각성의 침을 쏘아대는 존재가 바로 메피스토인 것이다.

그가 메피스토펠레스인 것은 그가 깨어있는 양심적 지성인이고자 해서 강단에서 쫓겨났기 때문만이 아니다. 거리의 교수가 된 지 19년이 된 이 마당에도 그의 메피스토적 지성의 힘, 그 기질, 그 악마적(!) 생명력이 조금도 시들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2002년 3월, 그는 독일로 날아가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가 주재한 그의 신작 소설 <게걸음으로 가다> 번역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것은 20세기의 마지막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행동하는 양심'으로 잘 알려진 그의 소설을 보다 정확히, 보다 빨리 번역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하루 15시간 강행군을 통해 그 번역본을 일본에 앞서 한국의 독자에게 선물했다. (<민음사>, 2002년 5월 출간)

독일 나치즘이 불러온 비극적 역사를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동시에 그러한 광기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역사와 비판적 상상력의 결합'을 통해 형상화시킨 <게걸음으로 가다>에는 작중 화자가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이 소설은) 마치 뒷걸음질치며 옆으로 비켜가는 듯하지만 사실은 상당히 신속하게 전진하는 게걸음의 방식과도 유사하게 서술해야 할지 모르겠다."

게걸음과 소걸음으로 걸어온 '천리'… 이젠 강단으로 돌아가야

▲ 귄터 그라스의 <게걸음으로 가다>
인간 장희창, 독문학자 장희창의 삶은 어쩌면 게걸음으로 걸어온 삶인지도 모른다. 그의 걸음은 '뒷걸음치며 비켜가는' 걸음이었다. 그 게걸음이 자신의 안일이나 출세를 위해 곡학아세하는 비겁한 걸음과는 정반대의 길이었음은 물론이다. 귄터 그라스의 말로 다시 비유컨대 그 걸음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사실은 상당히 신속하게' 진실과 참된 지성을 향해 '전진하는' 걸음일 터이다.

"명쾌한 실사구시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그라스도 문화란 돈과 권력과는 반대편에서 꽃핀다고 했습니다"고 힘주어 말하는 장희창 전 동의대 교수는 최근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이른바 무하마드 깐수란 이름의 '간첩'이자 전 평양외국어대, 전 말레이대, 전 단국대 교수인 정수일씨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를 꼽았다.

또 한번의 해를 넘겨버린 정부 차원의 해직 교수 복직 논의는 아직도 오락가락하고 있지만 그가 복직과 동시에 새로운 '천리길'을 갈 의욕에 불타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남다른 학문적 열정이 강단에서 젊은 후학들과 더불어 만개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동의대에서는 장희창 교수에 이어 '입시부정 사건'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영문학과의 김창호, 불문학과의 박동혁 교수도 해직시켰다. 두 교수는 법원에서 해임 무효 판결을 받고도, 장희창 교수와 마찬가지로 아직 복직되지 못하고 있다. 동의대 입시부정 사건과 '89년 5.3 동의대 사태의 진실, 그리고 세 교수의 해직의 연관성에 대한 취재는 후일로 남긴다.
2005/01/08 오후 9:06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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