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한국의 지식 권력 II--한국 대학의 어두운 초상
(당대비평 2000년 여름호, 박성호)


교육 관료: 마피아가 장악한 대학

나는 올해 2월에 교수직에서 해직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 나뿐 아니라 함께 학교 재단의 등록금 횡령과 전횡에 저항했던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열 다섯 명 전원이 모두 해직되어 실업자가 되었다. 우리는 힘겨웠던 이태 동안의 저항을 통해서 부패 사립 대학의 배후에는 언제나 부패 교육 관료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한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다음에서 나는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겪은 이야기만을 하려고 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있다. 이 일은 어느 이름 없는 지방 대학에서 일어난 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이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처리 방식을 면밀히 살펴보면 부패 교육 관료들의 면면을 여실히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글이 과연 침소봉대에 지나지 않는지 아니면 전체를 가늠케 해 주는 한 단면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지방 사립대 교수로 지낸 4년

있는 그대로 말하겠다. 나는 연세대를 졸업했다. 학부 4년, 대학원 석사 과정 2년 반, 박사 과정 5년 반, 이렇게 꼬박 12년 동안 거의 매일 모교의 교정을 밟았다. 대학원생 시절에는 조교로 근무하면서 학교 직원과 교수님 사이를 오가며 대학 행정이 어떤 것인가를 일부나마 실무적으로 경험하기도 했고, 모교와 다른 대학의 강단에서 몇 해 동안 시간 강사로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6년 3월에 면접을 거쳐 전남 광양에 있는 한려대학교의 교수(정확히 말하면 전임 강사)가 되었다. 희한한 대학이었다. 개교한 지 2년째 되어 재직 교수가 50명이 넘는 대학이었는데도 대학을 나온 행정 직원이라고는 오직 서무과장 한 사람뿐이었다. 조교는 물론이고 아예 학과 사무실이란 것이 없었다. 여고를 갓 졸업한 급사 수준의 여직원 두어 명이 행정 인력의 전부였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학에서 일반 행정 직원과 기능직 직원과 조교가 해야 할 모든 일을 교수가 도맡아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임용 첫날부터 양복을 입고 내가 한 일은 배정받은 사무 집기를 4층에 있는 연구실까지 나르는 일이었다. 철제 책상과 의자, 비닐 소파 몇 개와 차탁 및 책장과 캐비닛을 옮기고 나니 쌀쌀한 3월 초의 날씨인데도 땀이 배어 나왔다. 그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연이어 입학식을 준비해야 했다. 망치로 못을 박아 연단을 제작하고 입학생들이 앉을 천 몇백 개의 의자를 나르고 학과별 피킷을 만드는 등의 모든 일이 전부 교수의 몫이었다. 입학식 이후에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모든 대학에서 하게 마련인 학과별 오리엔테이션과 신입생 환영회 같은 것말고도 신입생 주소록 작성과 컴퓨터 입력, 수강 신청 과목 입력, 학적부 작성, 하다못해 통학 버스 이용자 실태 조사 등이 모두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전산과 교수들은 그 외에도 학적 입력 프로그램과 성적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다. 이 모든 일을 하며 주당 15시간 이상 되는 강의를 했고 야간에도 강의가 있었기 때문에, 날마다 아침 9시에 출근하여 밤 10시에 퇴근했다. 사이사이에 학과 교수 회의와 전체 교수 회의에 참석하고, 공휴일엔 숙직과 당직을 서 가며 녹초가 된 몸과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직 정식으로 임명장을 받지 못해 신분이 불안정한 상태인데다가 함께 임용된 동료 교수가 호봉을 책정할 근거 서류를 제출할 때 과거의 고교 교사 경력을 추가로 기입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임명이 취소되어 눈앞에서 사라지는 일을 겪으니 근무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살벌했고 조마조마했다. 가령 임용 첫학기에 받은 공문 중 하나는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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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무기강 확립 및 학생 생활 지도 철저

근래에 나타나고 있는 교수 여러분의 근무 상황에 대한 다음 몇 가지 유의 사항을 통지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향후 반복되는 과오에 대해서는 응분의 책임을 감수하시기 바랍니다.

가. 전임 교원으로서 출,퇴근 시간을 엄수하시고 무단 결근 및 연구실 무단 이탈 행위를 일절 금하시기 바랍니다.
(중략)
마. 학생들의 강의실 내 청결 유지와 강의실 내에서 취사 행위 금지 및 부탄 가스, 신나, 래커, 페인트 등 위험물 반입 금지, 그리고 교내 음주 행위 등에 관한 학생 생활 지도를 철저히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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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가장 괴로웠던 일은 독립된 연구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강의실로 쓰이는 휑한 공간을 교수 네 명이 함께 사용해야 했다. 손수 나른 집기로 적당히 공간을 분할하고 그 안에 앉아 있노라면 쉴 새 없이 여기저기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며, 없는 직원 대신 사사건건 교수를 찾아 앞뒤 출입문으로 드나드는 학생들 목소리 등으로 도저히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건 연구실이 아니라 사무실이었다. 그 안에서 ‘연구’를 하라고? ‘연구 논문’을 쓰라고? ‘교수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한국 대학 교육의 경쟁력이 형편없다고? 궁금해진 나는 모교 총장실에 근무하는 분에게 여쭈어 보았다. 대답은 간단했다. 연세대에는 교수가 700명쯤 되는데 직원 수는 행정 직원 350명에 기술 직원 150명, 모두 500명이라고 했다. ‘그렇구나. 교수와 직원의 비율이 7:5란 말이지? 그럼 내가 근무하는 이 학교는 교수가 이제 80명이니까, 그 비율로 따지자면 직원이 57명 가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참 꿈 같은 이야기로구나.’ 이 대학 운영자의 속셈은 교수에게 강의뿐 아니라 일반 행정 직원과 기능직 직원의 일 및 조교 업무까지 전담시켜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자는 것이었다. 교수에 대한 대우가 이러했으므로 학생들이 처한 상황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거두절미하고, 근무한 지 2년이 지날 때까지, 그러니까 개교한 지 3년이 지나도록 도서관이 없었다. 3년이 훨씬 지나서 어디선가 소설책을 잔뜩 들여 와서는 강의실 하나를 막아 이른바 도서관이라는 것을 꾸며 놓기는 했는데(물론 책을 나르고 정리?분류하고 바코드를 붙이고 서가에 꼽고 도서 대출 프로그램을 짜고 하는 모든 일은 당연히 교수의 몫이었다), 그때도 백과사전 한 질이 없었다. 세상에, 우리 나라 초?중?고등학교를 통틀어 백과 사전 한 질도 없는 학교가 있는가? 그래서 나는 강의 준비를 하다가 백과 사전을 보려면 인근에 있는 시립 도서관으로 가야 했다. 복사를 하려면 신분증을 맡겨야 했는데 도저히 교수 신분증을 내보일 수가 없어 대신 주민등록증을 맡겼다. 이공계 학과는 변변한 실험 도구 하나 없이 어느 학과나 거의 분필과 맨입으로 강의를 해야 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강의실 안으로 물이 쉴 새 없이 들어와 강의를 중단하고 물을 퍼 내야 하고, 방음 시설이 전혀 안 되어 있어서 강의실 중간쯤부터는 교수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으며, 중?고등학교처럼 수강 과목과 강의 시간이 모두 고정되어 있어 학생의 선택권이 원천 봉쇄되어 있고(학생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자면 그만큼 시간 강사를 더 써야 하므로 인건비가 많이 드는 것이다), 실내 휴식 공간이 전무하여 화장실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대화를 나눠야 하는 학교, 동아리방 하나도 없는 학교…… 이런 사례를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호남의 대표적 악덕 사학 재벌

이 학교의 설립자는 누구인가? 이홍하 씨다. 이미 KBS와 MBC ‘뉴스데스크’의 ‘카메라출동’과 ‘ 시사매거진 2580’ 등의 고발 보도를 통해 비리가 온 국민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는 그는 일찍이 부인 서복영 씨와 함께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목욕탕 운영과 부동산 투자로 모은 돈으로 광주에 옥천여자상업학교(1981년)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광남고등학교(1985년)와 대광여고(1986년)를 잇달아 세웠고, 계속하여 서남대학교(1991년), 광주예술학교(1993년, 1997년에 광주예술대학으로 승격), 광양대학(1994년), 한려대학교(1995년)를 연이어 설립했다. 이어서 광주의 남광병원과 적십자병원을 인수했다.(1995년)

제대로 된 교육자라면 한 개인이 평생토록 학교 하나를 제대로 운영하기도 어려울 터인데, 이홍하 씨 내외는 기존의 고등학교 세 개말고도 불과 5년 만에 대학을 네 개나 설립하고 종합 병원을 두 개나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타고난 부자도 아니고 목욕탕 외에는 아무런 수익 사업도 하지 않은 그 부부가 어떻게 이 많은 학교를 세울 수 있었는가? 그것은 바로 국고 보조금과 학생 등록금을 횡령하여 다른 곳의 임야를 싼 값에 사들이고 그 땅에 또 다른 학교의 설립 인가를 받아 내며, 그 학교에서 들어오는 등록금으로 또 다른 땅을 사는 식으로 땅 장사?등록금 장사를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내와 동생과 매제를 비롯한 친인척과 수족 같은 심복이라 할 산하 고등학교 교사들을 허수아비 대학 이사로 앉혀 놓고 학교 운영에 관한 무소불능의 전권을 휘둘렀다. 예를 들어 부인 서복영 씨는 한려대 총장, 서남대 이사장, 대광여고 교장, 광양대/광주예대/광남고 이사, 남광병원 이사장을 겸임했으며, 한 매제는 다섯 학교의 서무과장 이사를 겸하고 있다. 한려대의 학생처장과 교무처장은 옥천여상 상업 교사 출신인데 대학 행정이 무엇인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오로지 ‘상전’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 하나로 졸지에 대학의 처장이 된 사람들이다.

교육 관료와의 유착

이홍하 씨가 이런 식의 ‘학교 장사’와 ‘황제 운영’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와 유착된 교육부 내 부패 관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착의 첫단추는 물론 학교 설립 때부터 시작된다. 대학을 설립하려면 대학을 운용할 수 있는 기본 자산이 있는가를 교육 당국에 입증하여야 하는데, 이씨의 경우 재산 출연 증거로 교육부에 제출한 은행 잔액 증명서의 위조 액수가 자그마치 500억 원이 넘는다.(한려대 452억, 광주예대 44억, 서남대 21억, 광양대 30억) 교육부는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에 이르는 허위 잔액 증명서를 5년 동안 해마다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준 것이다.

한려대 학부형 비상 총회에서 어느 학부모가 밝히기를, 자신은 과거 문교부 시절에 장관 비서실에 근무했는데 대학을 설립하려는 사람은 돈보따리를 들고 문교부의 고위 당국자를 만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나라의 교육을 책임 지는 부서에서 학생 정원이 6천 명이 넘는 대학의 설립을 인가해 주면서 수백억 원 대의 출연 재산이 있다는 상대방의 문서를 아무런 확인도 없이 달랑 위조된 증명서 한 장만 받고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는 사실이 과연 말이 되는가? 혹시 그 당시 담당 공무원은 장님이었는가? 아니면 숫자를 전혀 읽지 못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동일인에게 해마다 한 대학씩 연이어 네 번을 속아 줄 수 있는가? 은행에 전화 한 통도 할 줄 모르는가? 자기 집을 매매할 때도 그런 식으로 하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중대 과실을 단순히 ‘직무유기’라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유착 공생’이라 해야 마땅할 것인가?

한려대 교수협의회는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과 공동으로 이런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관료들을 교육부 역사상 처음으로 실명으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결과는? 공소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유야무야되었다.


양심적인 교수들의 저항→교육부의 감사→검찰 수사 결과

최초의 저항은 광주예술대학에 재직했던 9명의 양심적인 교수들이 교수협의회를 조직하면서 시작되었다. 교수들은 대학 설립자의 등록금 횡령과 전횡 때문에 학교가 황폐해 가니 제발 진상을 조사하여 조처해 달라고 교육부를 찾아가 호소했다. 문전박대였다. 교육부 관료들은 재단을 두둔하며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다. 해당 기관의 공무원들이 계속 그런 식으로 딴청을 부리자 교수들은 하는 수 없이 좀더 힘있는 상급 기관과 다른 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교수들의 진정서가 청와대와 감사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 계속 들어가자 버티다 못한 교육부가 마지못해 1997년 2월 감사에 나섰다. 당연히 등록금 횡령 여부가 감사의 핵심이었다. 감사반은 그런 사실을 발견할 수 없다고 결론 지었다. 3월에 그 대학 교수협의회로 보낸 교육부의 회신을 보면 “설립자가 학생 등록금을 유용한 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고, 오히려 법인 전입금 대폭 지원, 적극적인 시설 투자 등으로 학교 발전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일부 사항을 제외하고는 민원 내용 상당 부분이 법령 및 지침 이해 부족, 오해, 추측 및 과대 표현 등에서 비롯되어 조사에 따른 행정력을 소모시킨 일 등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비록 선의의 민원을 제기하였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상이한 경우 당사자도 관계 법령에 따라 처리됨을 인식하여야 할 것”으로 되어 있다. 한 마디로 “별다른 문제도 없는데 진정서를 남발하여 행정력을 낭비하게 했으니 너도 몸조심하라”는 취지의 반협박조 공문이었다. 그 공문은 교육부장관 명의였다.

그러나 아무리 덮고 감싼다고 해도 뒷간의 구린내가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교육부의 감사가 ‘혐의 없음’으로 끝난 지 불과 두 달 만에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놀랍게도 1년 9개월 동안 (1995년 7월~1997년 4월) 광주예술대에서 등록금 33억 원이 횡령된 것을 비롯하여, 이씨가 설립한 4개 대학에서 모두 426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학교 공금이 횡령된 사실이 밝혀졌다. 광주예술대는 학생이 200명도 안 되는 단과 대학이었는데 그 학교에서 33억 원의 공금을 횡령했다면 인건비와 최소 운영비를 제외한 전액을 학교 밖으로 빼돌렸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 426억 원 중 한려대에서 횡령한 금액은 110억 원이었다. 그뿐 아니라 1995년 7월 이전과 1997년 4월 이후에는 등록금 횡령이 전혀 없었겠는가? 그러니 이씨가 설립한 4개 대학이 하나같이 이름만 대학일 뿐 내실은 하나도 없는 부실덩어리인 것은 불을 보듯 환한 사실이었다. 그러면 학교에서 횡령한 학생 등록금과 국고 보조금은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가? 한려대의 공금은 이씨가 운영하는 서남대 부속병원 두 곳과 분교 설립용 터를 사들이는 데 들어갔다. 왜 한려대 학생들이 자기들이 낸 등록금으로 다른 대학의 부속병원과 분교 터를 사 주어야 하는가? 젊은 학생들에게 자선 행위의 고귀함을 가르치자는 것인가? 또 다른 등록금의 일부는 이씨와 그 아들의 이름으로 경기도 화성 땅을 사들이는 데 들어갔다. 서울 근교의 임야를 사들여 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내면 이제까지 해 왔던 식의 문어발식 학교 장사가 더욱더 번창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이씨는 그곳에 또 다른 학교의 설립 인가를 신청했다. 더욱 파렴치한 일은 이씨 내외가 10억 원이나 되는 학교 공금을 가지고 자기 두 자녀의 등록금과 전세금, 이씨 자신의 약값과 자기 집 공과금을 낸 사실이다. 세상에, 자기가 설립하여 운영하는 학교 학생들의 등록금을 빼내다가 자기 자식들의 등록금과 전세금을 내는 사람도 ‘교육자’인가? 그 결과 이홍하 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죄목 외에도 사문서변조, 변조사문서행사, 건축법 위반, 국토이용관리법 위반, 사립학교법 위반, 뇌물공여,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행사, 부동산중개업법 위반, 뇌물수수 등의 죄목으로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 2월의 형을 언도받았고, 부인인 한려대 총장 서씨는 징역 2년 6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씨는 구속 직후 1억 원의 보석금을 지불하고 풀려난다. 그 보석금의 출처 역시 의문이다. 그것이 학생들이 낸 등록금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러면 감사 결과 별다른 문제가 없다며 재단을 적극 두둔했을 뿐만 아니라 교수협의회를 은근히 위협까지 한 그 교육부 관료들은 어찌되었는가? 그 감사반원들이 그 후에도 교육부에 남아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물론 건재하다. 그때는 운동권 출신이라는 이해찬 씨가 장관으로 있을 때였는데, 당시 교육부 내에서 자체 징계를 받았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다. 광주예술대 교수협의회장은 당시의 감사반원 5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결과는? 역시 유야무야되었다. 교육부의 실태 조사


이번에는 한려대에서 교수협의회가 결성되었다.(1998년 5월) 그러자 ‘머슴들의 반란’에 격분한 이홍하 씨가 교수협의회 소속 황민 교수를 교내 기획실로 끌고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채 목을 조르고 주먹으로 입을 문지르고 정강이를 걷어차는 폭행을 가했고, 그 사건은 개교 이래 쌓이고 쌓였던 울분의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되었다. 학생들의 수업 거부 및 3개월간의 총장실 점거 농성, 이홍하, 서복영 부부 구속 수감을 위한 진정서, 서울 명동성당 단식 농성, 교육부 항의 방문, 국민회의, 한나라당 중앙 당사 방문, 이사장 이홍수 씨(서울에서 안과병원을 하는 이씨의 친동생) 항의 방문, 그리고 청와대를 비롯해 각계에 보내는 탄원서 운동이 이어졌다.

양심적인 교수와 학생 들의 한결같은 요구는 이홍하 씨 퇴진과 관선 이사 파견이었다. 이미 투자 원금의 몇 배에서 몇십 배를 학교 밖으로 빼돌린 이홍하 씨는 그만 물러나고 학교는 공익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부 저항의 강도가 드세고 한려대 사태가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자 교육부에서 ‘실태 조사’라는 명목으로 사무관을 포함한 5명이 내려왔다.(6월 8일~11일) 특별 감사가 아닌 실태 조사라는 안이한 대응 형식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광주예술대의 경우, ‘실태 조사’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형태인 ‘감사’가 이루어졌어도 결과가 그 모양이었는데, 학교측에서 내어 놓는 자료만을 훑어보고 가는 식의 실태 조사에서는 기대할 것이 아예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실태조사반의 L 사무관은 부패 재단과의 공생 관계를 온몸으로 증명해 주었다. 본래 이홍하 씨는 구멍가게식으로 학교 재정을 운영하여 자신이 설립한 4개 대학의 등록금을 모두 옥천여상 서무과에서 통합 관리했다. 등록철이 되면 광양에 있는 한려대와 광양대로 들어오는 등록금이 당일로 모두 광주에 있는 옥천여상으로 가고, 학내의 모든 지출은 다 옥천여상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식이었다. 실태조사반은 옥천여상에서 가져온 한려대 재단측의 지출결의서를 검토했다. 그 지출결의서들은 검찰이 조사에 착수할 경우, 이홍하 씨의 추가적인 등록금 횡령을 밝힐 수 있는 결정적인 물증이었다. 당연히 학생과 교수 들은 그 지출결의서를 학교 안에 둘 것을 요구했다. 학교 정관에도 법인 사무실은 교내에 두게 되어 있으므로 기존의 행태는 정관에 위배되는 편법이었다. 놀라운 것은 실태 조사를 끝내고 서울로 올라가야 할 사무관이 그날 밤을 꼬박 지새워 교수, 학생과 대치하며 그 지출결의서를 온몸으로 지켜 끝내 옥천여상으로 되돌려 주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공무원이 척 보면 한눈에 다 알 만한 명백한 부실과 범법의 교육 현장에는 애써 눈을 감으면서 몸을 던져 부패 재단을 감싸고 도는 모습을 보고 그저 암담한 생각밖에 없었다.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지도 감독 책임”을 운운할 기력도 없이, 그저 부패 재단과 한통속이 되어 놀아나지만 않는다면 양반이겠다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일은 그 다음이었다.


건국 이래 최초라는 ‘폐쇄계고 조치’의 내막

학내 분규가 터져 교육부가 실태 조사나 감사를 하게 되는 경우 평소 같으면 몇 가지 주변적인 시정 조치를 재단측에 지시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 부패 재단과 교육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한려대의 경우, 학생들의 수업 거부가 계속되어 전교생이 유급을 당할 위험에 처하게 되자 그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잇따랐고, 때마침 KBS와 MBC 등의 고발 보도를 통해 이홍하 씨의 비리가 계속 방영되면서 교육부의 직무 유기에 대한 비난 여론이 갈수록 비등해졌다.

이에 위기를 느낀 교육부는 기상천외한 조치를 들고 나왔다. 건국 이래 최초로 한려대와 광주예대에 대해 폐쇄계고 조치를 내린 것이다.(1998년 8월) ‘폐쇄계고’란 무엇인가? 1년 동안의 계고 기간을 준 뒤에 학교 폐쇄 여부를 결정 짓겠다는 것이다.

그때는 바야흐로 IMF 한파가 온 나라를 꽁꽁 얼어붙게 하던 때였고, 5개 시중 은행이 강제 퇴출되면서 부실하면 은행도 망하고 대기업도 망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국민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던 시기였다. 교육부의 영악한 중간 관료는 바로 그 사회 분위기를 이용했다. “대학도 부실하면 교육계에서 강제로 퇴출시킨다”는 비장한 개혁 조치를 단행한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내막을 모르는 언론은 교육부에서 보도 자료로 내놓은 “한려대의 은행 잔고가 43,724원뿐”이라는 사실을 대서특필하여 교육부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면서도 폐쇄 조치의 숨은 뜻은 간파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은 너나 없이 실직 위험이라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던데다가 은행도 문을 닫는 판국에 이름도 모르는 부실 지방 대학이 폐교되는 것쯤은 관심사가 아니었고, 설령 관심이 있다 해도 교육부의 결정을 당연한 구조 조정 조치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른바 4년제 종합 대학 명의의 은행 잔고가 4만여 원밖에 안 남게 된 까닭은 불과 달포 전에 실태 조사를 했던 교육부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등록금을 모조리 학교 밖으로 가져가 옥천여상에 두는 터라 학교 명의의 통장에 돈이 남아 있을 턱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지출결의서가 그 학교를 빠져나가 엉뚱한 하급 학교로 가도록 도와 준 장본인들이 눈 가리고 아웅 하면서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인 것이었다. 은행 잔고가 4만여 원밖에 안 남았다는 학교에서 80명이나 되는 교수의 월급을 그 뒤에도 계속 지급했고 지금도 지급하고 있는데, 그 돈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단 말인가?

‘건국 이래 최초’라는 대단한 꼬리표가 붙은 폐쇄계고 조치의 내막을 이해하는 열쇠는 그 다음부터이다. 교육부는 이씨가 설립한 4개 대학에 대한 이른바 ‘종합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광주예대와 한려대의 학교 폐쇄는 설립자 및 법인에서 최종 결정”한다고 못박고, 친절하게도 덧붙이기를 “학교 폐쇄를 위하여 설립자가 동의하는 이사진 구성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처음부터 문제의 핵심은 교육부가 범죄자 이홍하 씨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하는 점이었다. 공무 집행 기관으로서 객관적 입장에 서서 이홍하 씨 문제를 처리하는가, 아니면 설립 인가 때부터 그와 맺어 온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계속 이홍하 씨를 감싸고 돌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두 대학 폐쇄계고 조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실 운영의 주범인 이홍하 씨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도리어 학교를 통폐합할 수 있는 결정권을 맡긴 것이다.(한겨레, 1998년 8월 12일자 참조) 이런 것을 일러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다고 하는가?

폐쇄계고 조치의 진짜 알맹이는 바로 그 다음이다. 교육부는 ‘종합 정상화 방안’에서 “(이씨가 설립한) 5개 법인을 2개 법인(대학 유지 법인, 고등학교 유지 법인)으로 통합”하고 “광주예술대 폐교 재산을 서남대학에 투자하며, 한려대학교 폐교 재산을 광양대에 투자”하도록 밝히고 있다. 교육부는 친절하게도 ‘5개 법인을 2개 법인으로 통합’하도록 이홍하 씨에게 일러 준다. 이것이 바로 비리 재단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제재 조치처럼 보이는 ‘법인 해산’의 실내용이다. 겉으로는 ‘법인 해산’, ‘법인 해체’ 하며 마치 이것이 가장 무거운 처벌이라도 되는 듯이 여론을 속였지만, 실상은 “여러 법인으로 나누어 놓아 문제가 자꾸 복잡해지니, 아예 두 군데로 뭉뚱그려 가지고 해먹어라”고 길을 가르쳐 준 것이다. “밥상을 일곱 개나 차려 놓고 이 상 저 상 옮겨 다니며 돈을 빼먹을 게 아니라, 아예 두 개로 몰아 가지고 한 입에 털어 넣어라”고 새로운 밥상을 차려 준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폐교 후 잔여 재산 귀속 문제에서 교육부와 이홍하 씨의 유착 및 공범 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광주예대는 폐교되었고, 남은 재산은 고스란히 이홍하 씨가 설립, 운영하는 서남대학교로 넘어갔다. 교육부의 지침대로 “설립자가 동의하는” 관선 이사진이 파견되어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가 여론을 의식하여 끼워 넣기식으로 관선 이사에 포함시켰던 전남대 송기숙 교수와 같은 양심 인사는 도저히 올바로 관선 이사직을 수행할 수 없음을 토로하며 이사직을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광주예대 학생 200명은 등록금 횡령과 부실 교육이라는 피해에다 모교가 사형당하는 불명예를 뒤집어썼고 교수 27명은 직장을 잃었다. 그 중에는 물론 설립자의 비리를 줄기차게 고발했던 교수협의회 교수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홍하 씨로서는 손해를 본 것이 하나도 없다. 학교를 운영하는 동안에는 등록금을 횡령하여 배를 불리고 문제가 불거져서 더 이상 예전처럼 해먹을 수 없게 되면 교육부와 협의하여 자신이 동의하는 관선 이사진과 폐교 절차를 논의하고, 그래서 결국 남아 있는 재산을 송두리째 다 챙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땅을 학교 부지로 승인받으면서 뛰어올랐을 땅값 상승분은 또 얼마인가? 아니, 그렇게 따져서는 안 되고, “시끄럽게 떠드는 그 교수들”만 아니었으면 계속 등록금을 횡령할 수 있었을 테니 손해도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 426억 원의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구속된 바 있는 이홍하 씨에 대한 이 나라 교육부의 처리 방안이다. 교육부가 부실 운영 책임이 있는 사학 운영자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합법적으로 학교 운영권을 넘겨 주는 데 앞장선 것이다.(문화일보, 1998년 8월 20일자 참조) 말하자면 교육부가 악덕 사학 재벌의 돈놀이 기관 노릇을 한 셈이다.

그러므로 이홍하 씨의 4개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종합 정상화 방안’이란 ‘악덕 사학 재벌 살리기와 교수, 학생, 학부모 죽이기’로 요약된다. 퇴출되어야 할 것은 광주예술대가 아니라 이홍하 씨였는데, 그는 재산을 유지하며 멀쩡히 잘 있고, 그의 비리를 고발한 교수와 학생 들만 쫓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학교 정상화 방안이 아니라 ‘범죄자 재산 지켜 주기 방안’이요 ‘교육 말살 방안’이었다.

이와 같이 사립 대학과 관련하여 교육부가 언제든지 견지하고 있는 금과옥조는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사유 재산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직전 교육부장관이었던 김덕중 씨도 상지대 문제와 관련하여 “사립 대학에는 주인이 있어야 한다. 주인은 설립자이므로 설립자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는 취지의 망발을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슬그머니 말꼬리를 돌린 적이 있다. 대학이 사유 재산일 수 있는가? 교육부 관료의 머리로는 교육 공(公) 개념이 텅빈 공(空) 개념인가? 그런 식의 사고 방식이 옳다면, 전체 대학 350개교 중 82.6%를 차지하는 289개교가 사립 대학인 우리 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차라리 교육부를 해체하고 재정경제부에서 사립 대학을 총괄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아예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비리 사립 대학을 철저하게 감독하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낫지 않겠는가? 참으로 사유 재산을 존중하려면 폐쇄 후 학교의 재산을 처분하여 그 동안 등록금을 횡령당하고 부실 교육의 피해를 입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려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교육부의 조처는 회사가 망할 때 기업주는 살아 남고 무고한 종업원들만 희생되는 것이 옳다고 하는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국민일보 1998년 8월 4일자 사설 참조) 이런 천민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자들이 교육 행정을 담당하고 있으니, 이 나라 교육계가 이처럼 요지경인 것이 아닌가?!

또한 교육부의 폐쇄계고 조치와 잔여 재산 귀속 결정은 비리 대학에 몸담고 있는 여타의 교수들에게 사실상 “너희도 교육자의 양심이다 뭐다 하여 시끄럽게 굴면 다 이렇게 직장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나팔이다. “이 나라는 아직도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면 직장에서 쫓겨나는 나라”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는 노골적인 협박이다. 이렇게 양심적인 교수들의 입을 막고 목을 비틀면 장차 이 나라 고등 교육계에는 비겁한 기회주의자만 남게 되지 않겠는가?

교수협의회의 힘겨운 저항


환경이 모질어지면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단련되어 강인해지든지 아니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식으로 추악해지든지 둘 중의 하나인 모양이다. 이홍하씨가 구속되고 그의 비리가 매스컴을 타고 전국에 널리 알려지면서, 이제는 실상을 파악한 교육부가 양심적인 관선 이사를 파견해 주어 학교가 정상화되기를 기대했던 한려대 교수협의회는 교육부의 폐쇄계고 조치라는 뜻밖의 봉변을 당하여 망연자실한 채 안팎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교수협의회를 탈퇴하지 않으면 재임용에서 탈락시킬 것이라는 학교측의 협박은 기본이었고, 빈대를 잡으랬지 누가 초가삼간 태우랬냐며 너희 때문에 학교가 망하게 되었다는 동료 교수들의 비난도 뒤집어썼다. 심지어는 이홍하 씨의 주구 노릇을 하기로 작심한 어용 교수도 다수 생겨났다. 그들은 실제로 “우리 모두 단결하여 매교자 교협 교수 몰아 내고,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학교 정상화 이룩하자! ‘한려대학교 매교자 명단’ ○○○, ○○○, ○○○, ○○○,…-…○○○”, “교협 교수 몰아 내면 학교 정상화 실현된다! 교협 교수 추방하여 학교 정상화 앞당기자! ‘한려대학교 매교자 명단’ ○○○, ○○○, ○○○,…-…○○○” 라고 쓴 현수막을 오랫동안 학교 앞 거리에 걸어 놓기도 했다. 덕분에 나로서는 생전 처음으로 이름 석 자가 현수막 위에서 나부끼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매교자라? 처음 들어본 신조어였다.
‘학교를 팔아먹은 놈'이란 뜻이겠는데, 매국노인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많은 전답을 하사받았으니 그런 말을 들어도 큰 불만이 없겠으나, 나는 학교를 ‘팔아먹은’ 대가로 이익을 챙기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실직자가 되었으니 좀 억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뿐 아니라 이홍하 씨의 비리 관련 보도가 나간 다음 날에는 떼거지로 연구실로 몰려온 재단파 교수들로부터 평생 들어도 다 못 들을 생욕을 한 시간 내내 듣기도 했다. 제자의 등록금을 횡령한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던 사람들이 힘없는 동료 교수에게는 지독한 화살을 잘도 쏘아 댔다.

그러던 중 교육 관료와의 유착 속에서 대세를 장악한 이홍하 씨는 1999년 8월 말로 임기가 만료된 39명의 교수 전원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도살 행위를 저질렀다. 전체 재직 교수 76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수효였다. 흥미로운 것은 교수협의회 회원으로 있던 6명만 정말로 재임용 탈락시키고 나머지 사람은 시간 강사로 채용하여 전과 똑같이 강의를 맡기는 편법을 쓴 일이다. 그래서 졸지에 한려대는 시간 강사에게도 연구실을 따로 제공하는 전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 되었다.

이미 교수협의회에 가입할 때부터 해직은 각오한 상태였으므로 달리 더 두려울 것은 없었다. 그때까지 회원이 열댓 명 남은 교수협의회는 1년 반 동안 5천만 원이 넘는 회비를 갹출하여 쓰면서, 한 달 동안 번갈아 밤을 새며 자비로 수백 쪽에 이르는 백서를 발간하여 각계각층에 송부하고, 백여 차례 가까이 성명서를 써서 해당 기관과 언론사에 보내고, 닷새에 걸친 단식 농성과 일 주일간의 교육부 앞 시위 등등을 했지만, 워낙 지명도가 없는 한미한 대학이어서 그런지 별반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이름도 없는 지방 대학의 임의 단체가 발표하는 성명서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형편이었다.

교육 당국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면, 이러한 모든 시도와 노력은 애초부터 불필요한 것이었다. 정상적인 경로로는 도무지 문제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을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깨닫고서 여론의 힘에 호소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가도 시민 운동가도 아닌 교수들이 연구실을 박차고 나와 신문사-방송국-정당-국회- 시민 단체-일반 시민을 찾아 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는 현실 자체가 참으로 서글프고 개탄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봄가뭄에 단비를 만나듯 뜻밖의 반전이 있었다. 교수협의회 교수들의 끈질긴 노력이 헛되지 않아 마침내 한려대 재단의 부패가 국정 감사의 도마에 오르게 된 것이다. 채택된 증인은 이홍하 씨 부부와 교무처장 그리고 교수협의회 회장이었다. 이홍하 씨는 다른 병원도 아닌, 바로 자신이 운영하는 남광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어 병을 핑계로 국정 감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국정 감사―“대한민국 교육 50년 역사에서 가장 악질적인 학교 사기단”

1999년 10월 15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국정 감사에서 국회 교육위원회 의원들은 소속 정당을 막론하고 이구동성으로 이홍하 씨 부부의 파렴치한 등록금 횡령과 전횡을 맹렬하게 성토했고, 그런 범법적인 학교 운영을 방관한 교육부의 무책임을 신랄하게 따졌다.

우리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이미 재단이 시키는 대로 동료 교수 57명이 연대 서명하여, 교수협의회 교수들이 “사회주의식 논리를 펴고” “공산당식 행태를 보이고” 있으며, “재단을 포함한 전 구성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하고 있으니 선처해 달라는 요지의 탄원서를 교육위원회 의원 전원에게 전달한 상태였다.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라는 말을 들으면 들을 말은 다 들은 것이다.) 게다가 국회 교육위원회는 사립학교법을 포함한 3개 교육 관계법을 개악 통과시킨 전력이 있어 교육계 안팎에서 강력한 반발과 비판을 받고 있던 터였으므로 애당초 특별한 기대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육위 의원들은 이홍하 씨 부부를 가리켜 “양심을 저버리고 교육부를 기만하고 국회를 기만한” 사람들이고(국민회의 김봉호 의원), “학교 사기단”이자 “사학 마피아의 두목”이며(무소속 이수인 의원), “사기꾼이고 양의 탈을 쓴 늑대”이고(한나라당 김정숙 의원), “대한민국 교육 50년 역사에서 가장 악질적인 학교 사기단”이며(한나라당 이재오의원), “범죄자요 부도덕한 사람”이고(국민회의 신낙균 의원), “설립 이념도 없고, 학교를 주식회사도 아니고 조그만 개인 회사처럼 운영하면서 학교에서 바른 생각을 한 사람, 재단에 충언한 사람을 다 쫓아낸” 사람이라고 하면서(자민련 김일주 의원), “그렇게 일을 하다가는 그 학교만 망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 교육부가 모두 다 망하겠다”(국민회의 노무현 의원)고 말했다.

의원들은 한려대의 이사회가 이홍하 씨의 허수아비인 사실과 이사회 회의록이 모두 날조된 허위 문서라는 사실도 낱낱이 밝혔고, 이홍하 씨가 겉으로는 폐쇄계고 조치를 철회하기 위해 눈가림식으로 학교 공사를 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학교 살리기에 뜻이 없으며, 오직 학교 폐쇄 후 학교의 남은 재산을 자신이 운영하는 인근 광양대로 넘기는 일에만 혈안이라고 말했다. 교수 확보율을 높여야 할 처지에서 정당한 심사나 절차도 없이 도리어 교수 39명을 도살하듯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것이 그 대표적인 증거임도 적시했다.

그 결과 한려대는 더 이상 범죄자 이홍하 체제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온 국민을 대표한 국회에서 환하게 드러났다. 당연한 결론으로서 한려대에 즉각 관선 이사가 파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교육위 소속 대다수 의원의 공통 의견으로 강력히 제기되었다.(노무현, 신낙균, 설훈, 이재오, 김정숙, 이수인, 김일주 의원 등)

이에 대하여 김덕중 당시 교육부장관은 한려대에 관선 이사를 파견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만에 하나 한려대가 폐교되더라도 학교의 남은 재산이 이홍하 재단으로는 넘어가지 않도록 장관 승인 단계에서 적극 제지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밝혔다.


교육부 K 과장(모영기?)

교육 관료 부패상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재미있는 일은 그 사이에 일어났다. 교수협의회로부터 무더기 재임용 탈락에 대한 제보를 받은 국회의원측에서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교육부에 국정 감사 자료를 요청하면서 ‘1999년 9월 현재’ 한려대 교수 임용 상황을 보고하도록 요구했다. 그래야 갑자기 줄어든 교수들이 어디로 갔는지 따져 물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교육부 당국자로서야 당연히 의원측의 요구대로 한려대에 공문을 보내 2학기의 재직 교수 현황을 넘겨 받아 건네 주면 그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공복(公僕)이라는 교육부 공무원이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 교묘하게도, 한려대에 공문을 보내면서 ‘1999년 8월 31일’의 재직 교수 현황을 보고하도록 날짜를 며칠 앞으로 당겨 주었다. 8월 31일에서 9월 1일 사이에 하루 차이로 신분이 달라지는 교수가 39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말이다. 한려대측이 먼저 나서서 임의로 날짜를 바꾸어 보고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교육부 관료가 그렇게 하도록 공문을 내려 보낸 것이다. 대규모 교수 재임용 탈락 사실이 국정 감사장에서 문제가 된다면 그것을 걱정해야 할 당사자는 당연히 학교 재단측일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 관료가 아예 문제 재단의 방패막이로 나선 것이다. 왜 그랬겠는가? 그들은 국민의 공복(公僕)이 아니라 뇌물에 허기진 공복(空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대구대 ‘청부 감사’ 사건으로 교육부 감사관이 구속되었을 때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사실 그 사건은, 부정을 일삼다 학교에서 쫓겨난 구재단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교육 관료가 자기들 손으로 그 대학에 파견한 관선 이사에 대해 거꾸로 특별 감사를 실시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중립적 위치에서 엄중한 감사권을 행사해야 할 교육 공무원이 부패 재단과 한통속이 되어 놀아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대학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교육부 최고 요직인 고등교육지원국장이 한 전문대로부터 1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것이 밝혀져 징계를 받았을 때에도,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이 그토록 요란하던 ‘두뇌한국 21’인지 ‘무뇌한국 21’인지의 사업 심사를 맡고 있는 총책임자인 사실을 알았을 때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조금 놀랐다. 뇌물 액수가 너무 적어서 놀랐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국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몇십 년 동안 교육부 안에서 무슨 일을 해 왔을까를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 10여 년 동안 교육부차관 출신으로 전문대 학장이 된 사람을 빼고라도 대학 총장으로 나간 사람이 9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교육부와 사립 대학의 공생 관계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 앞에서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좀 전에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야겠다. 교육부가 국정 감사를 앞두고 한려대 재단의 무더기 교수 재임용 탈락 사실을 고의로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을 들어 국회의원측에서 교육부장관의 해명을 요구하자 교육부는 담당 과장을 징계하는 선에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다급해진 것은 그 대학지원과장이었다. 그는 의원 보좌관을 만나 통사정을 해도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그 학기에 해직당해 실업자가 된 한려대 교수협의회장을 붙들고 늘어졌다. 나는 국정 감사 두 달 전에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교육부장관 면담과 관선 이사 파견을 요구하며 장마비 속에서 피킷을 들고 일 주일 동안 세종로 종합청사 앞에서 거리 시위를 하던 중이었다. 그는 점심을 먹고 들어가는 길에 초라한 시위대 앞으로 와서는 “문제가 있으면 재단에 가서 이야기할 일이지, 교수라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시위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내게 점잖게 충고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도 얼굴 보기가 힘들던 사람이 이번에는 거꾸로 자신의 구명을 위해 날마다 해직 교수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제발 자기 이름이 국회 속기록에 오르지 않게 해 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국정 감사 기간중 교육부 답변 자료 준비를 위해 부하 직원들이 며칠째 정신없이 철야 작업을 하는 때에도 자기 혼자 빠져나와 굳이 식사 자리에 이어 차 마시는 자리를 마련했다.(그런 사람에게는 한 끼도 얻어먹을 수 없어 밥값과 찻값은 모두 실업자인 우리가 지불했다.) 충청도가 고향이라는 그는 “이인제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만 했으면 정말 잘 나갔을 것”이라며 못내 아쉬워하면서 교육부에서 20년간 잔뼈가 굵은 자신의 꿈은 국장으로 승진한 뒤에 대학의 총장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서글펐다. 대학 교육을 총괄하는 교육부의 실무 책임자가 무법 천지나 다름없는 부패 사립 대학의 전횡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도리어 그들의 방패막이로 자처할 뿐 아니라, 교육 공무원인 자신의 직무 유기가 보태져 학교에서 부당하게 해직당한 교수들을 찾아와서는 자신이 계속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제발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한려대의 오늘

그렇게 국정 감사는 끝났다. 하지만 해방 이후 50년간 산전수전을 다 겪어 온 교육 관료들은 잘 알고 있었다. 15대 국회는 그때의 정기 국회로 마지막이며, 한려대 문제와 관련하여 자기들을 정신없이 몰아세웠던 국회의원들은 사실상 임기가 끝나 파장 분위기이고, 다음 선거를 대비하여 다들 제 코가 석 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려대 교수협의회와 양심적인 수많은 시민 단체 및 국민을 대표하여 국회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교육 개혁의 목소리는 저들 교육 관료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노회한 교육 관료들은 국정 감사의 파장이 완전히 가라앉은 뒤 새 천년을 맞는 연말 분위기로 들뜬 12월 말에 가서야 한려대에 대한 결정을 슬그머니 발표했다. 핵심은 학교 폐쇄계고 조치를 철회하여 계속 학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면서 이홍하씨의 운영권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교육부는 개교 후 학교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이름뿐인 이사장과 이사회 한 번 제대로 연 적이 없는 현 이사회를 그대로 인정하고, 그 중 절반의 인사(4명)만 교육부가 추천하는 지역 인사로 개편하도록 요구한다는 실로 기만적인 결정을 내렸다. 비유컨대 교육부는 국정 감사라는 수술을 통해 환자의 배를 갈라 암 덩어리가 있음을 똑똑히 보고도 다시 배를 덮고는 항생제 주사를 한 대 놓는 것으로 처방을 끝낸 것이다. 비리 재단측으로 볼 때는 사형 선고라 할 관선 이사가 파견된다 해도 관선 이사 대다수가 양심적인 중립 인사로 구성되지 않을 때는 결국 구재단의 입김에 따라 학교가 또다시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마는 일이 허다하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이홍하 씨 산하 대학에서 일어난 터에, 한려대 현 이사진의 기득권을 절반이나 인정하고 겨우 몇 사람을 생색 내기로 끼워 넣는다고 해서 이홍하 씨의 전횡이 저지되고 한려대 운영의 투명성이 보장된다고 강변한다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것이다.

교육부의 결정이 허구요 공허한 말장난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 결정이 발표된 당일에 이씨는 한려대에 나타나 학과장 회의를 소집,주재하며 전과 다름없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교육부는 보도 자료에서 “이홍하 씨 학교 행사 간여 및 학사 행정 간여”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가 아니고 무엇이며, 국민을 기만하는 작태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것이 과연 국민의 혈세로 살아가는 국가 공무원의 정당한 공무 수행이라고 할 수 있는가?

교육부는 한려대 개교 후 4년에 이르도록 설립 인가 요건을 이행했는지의 여부를 조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부실 운영에 대해 학교 당국에 시정을 요구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시정 요구는 고사하고 폐쇄계고 조치를 내릴 만큼 부실한 대학에 도리어 전국 대학 가운데 최고 규모로 정원을 늘려 주고 학과 증설을 허가해 주었다. 그뿐 아니라 개교한 지 8년이 넘도록 독립된 도서관 건물이 없는 서남대에 의과대학 설립을 인가해 주었고, 충남 아산 땅에 신청한 분교 설립도 인가해 주어 지금 공사가 한창이라고 한다. 그 땅을 매입한 돈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공사 대금은 또 어디에서 나와야 하는지 교육부 관계자는 정녕 모르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마피아’로까지 일컬어지는 교육부의 부패한 중간 관료와 이홍하 씨가 서로 단단히 결탁되지 않고서는 결코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반(反)교육적 조처가 취해질 수 없다고 확신한다.

교육부의 결정이 내려진 뒤 한려대에서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올해 2월 말로 임기가 만료된 교수협의회 교수 9명 전원이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 이로써 지난 해 8월 말로 해직된 교수협의회 교수 6명을 합쳐 15명의 ‘ 내부 고발자’가 깨끗이 ‘청소’되고 학교는 온전히 다시 이홍하 씨의 왕국이 되었다. 그 학교에 여전히 남아 있는 교수들이 서로 전임 강사에서 시간 강사로 자리 바꿈을 하며 계속 목숨줄을 잇고 있는 그 구차한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교육 마피아의 5단계”

이와 같은 교육부 부패 관료에 대한 분석으로는 국회 교육위원회 이수인 의원의 분석이 단연 압권이며 가장 정곡을 찌른다.

“왜 이토록 많은 사립 대학들에서 많은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인가? 교육부는 그냥 팔짱을 끼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사립 중,고등학교 말썽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교육 마피아의 유착에 따르는 ‘면죄부 발급의 악순환'을 이해해야 궁금증이 풀리게 된다.

악순환은 5단계로 진행된다.

제1단계는 ‘수수방관의 단계'이다. 사립 대학에서 말썽이 나면, 교육부는 일단 팔짱을 끼고 관망한다. 교육부 관계자들은 말썽이 그대로 수그러드는지 커지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제2단계는 ‘면죄부 감사의 단계'이다. 교수와 학생 들의 항의 강도에 따라 말썽이 커지고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 교육부는 감사를 한다. 그러나 이 때는 중요하지 않은 몇 가지만 지적함으로써 여론을 잠재운다. 이 제2단계의 감사는 교수와 학생의 항의, 여론의 비판에 따라 위기에 빠진 수구 부패 재단을 단죄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에게 구원의 밧줄을 던져 주는 단계이다. 대학의 개혁을 부르짖어 온 교수,학생,학부형,시민 들은 순진하게도 이 단계에서 교육 마피아에 철저히 속고 만다.

제3단계는 ‘관선 이사 파견 단계'이다. 첫 감사에서 여론을 잠재웠는데도 교수와 학생, 어떤 경우에는 학부모까지 가세하여 항의의 강도와 요구의 수준이 높아지면 여론의 비판이 거세어진다. 다시 감사가 시작되고 이 때 교육부 마피아는 아무리 유착되어 있는 사학 재단의 마피아일지라도 돌볼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관선 이사진을 파견한다. 자신들의 존립까지 위태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선 이사진’ 구성이 문제 해결의 절대적,최종적 처방은 아니라는 데 교육 마피아의 유능성과 교활성이 함께 발휘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4단계는 교육부의 관료나 관료 출신 인사를 한 사람 이상, 그리고 구재단이나 교육부와 밀착한 그럴듯한 경력의 인사들을 과반수 넘게 새 이사진에 채워 넣는다. 새 관선 이사진은 결국 교육부와 문제 재단의 마피아에 새로운 형식으로 장악되는 것이다.

제5단계는 ‘관선 이사진 흔들기 단계'이다. 교육부 관계자와 구재단의 실력자들은 새로운 이사진에 포진된 그들의 하수인들을 동원하여 새로운 이사진을 처음부터 흔들기 시작한다. 교수,학생 들의 개혁 요구를 수렴한 학교 당국의 개혁 프로그램을 그들은 사사건건 방해하고 거부한다. 새로운 이사진에 개혁적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투서,위협 등 여러 가지 방법의 압박을 가한다. 대구대학의 경우 개혁적인 새 이사장과 이사들에게 심지어 가족 몰살의 위협까지 한 것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개혁 이사진이 끄떡없으면, 교육부 마피아는 구재단 마피아의 진정 등의 형식을 빌려 그들이 선임한 관선 이사진 붕괴를 위한 최종적 감사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제5단계의 감사는 제2단계와는 달리 현 이사진을 붕괴시키려는 목적으로 진행되는 특징을 갖는다. 그들은 여론에 밀려 자신들이 구성한 이사진을 드디어 그들 스스로 무너뜨리는데, 가장 주목할 점은 그들은 악당의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정의의 가면(!)을 쓴다는 것이다.……이사진이 교체되어도 교수와 학생 들이 바라는 개혁 인사들이 새 이사진의 50% 이상 포진되지 않으면 결코 말썽이 풀리지 않은 채 다만 미봉된 상태가 지속되게 마련인 것이다. 이 다섯 단계야말로 사립 재단 문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치명적 과정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교육 마피아의 이 ‘면죄부 발급의 악순환' 과정에서 학교 개혁을 요구하는 교수,학생,학부모 들이 좌절하고 절망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면 그 좌절과 절망이 증폭되어 포섭,회유,매수,협박,폭행,제거 등의 수단을 동원하는 재단과 학교 당국에 굴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그 까닭은 첫째, 교육 마피아의 힘이 교육 현장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역량을 탕진시킨다는 점이다. 둘째, 교육 개혁을 내건 정권에 의해 교육 개혁 세력이 좌절되는 모순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교육 마피아의 ‘면죄부 발급의 악순환'을 차단하여 문제 사립 재단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교육 현장의 황폐화를 막을 수 없고, 나아가 교육 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이수인, '교육개혁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창작과비평> 1999년 여름호)


이 기막힌 ‘5단계론’은 사립 대학과 관련하여 반세기에 걸친 부패 교육 관료들의 행태를 모아 분석한 완벽한 총정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제 사학들에 대한 앞으로의 처리 방향을 정확히 가늠케 해 주는 일종의 나침반이기도 하다. 즉 어느 분규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처리 방침이 발표되었을 때 그 방침이 위의 ‘5단계론’ 에서 몇 단계에 해당되는지 짚어 보기만 하면, 그 대학 내부 구성원이 이제까지 겪은 일과 앞으로 겪을 일이 훤히 내다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뜨내기 장관 찜쪄 먹는’ 이런 부패 관료들이 하이에나와 승냥이처럼 교육부 안에 도사리고 있는 한, 운동권 출신이 아니라 군홧발 특전사 사령관이 교육부장관으로 임명되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이 교육부장관을 겸임한다 해도 문제 해결은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 겸임 장관은 고작해야 3년 뒤면 물러날 것이지만, 건국 이후 장장 반세기 동안 차곡차곡 인맥과 학맥과 돈줄로 비리 사슬을 구축해 온 부패 교육 관료들은 여전히 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유일한 해결책은 아프리카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식인종이 배를 타고 인천 앞바다에 상륙하여 정권을 찬탈한 뒤 공무원을 사열하는 자리에서 썩은 냄새를 풀풀 풍겨 식욕을 돋구는 부패 교육 관료를 실제로 잡아먹어 없애는 인적 청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꿈 같은 일이 일어날 리는 만무하므로 총체적 부패 공화국인 아! 대한민국에서 부패 교육 관료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일 또한 진실로 무망한 일일 것이다. 모든 초,중,고 교사들을 교육 관료들이 펜대 까딱이며 좌지우지하고 수많은 부실 사학의 부패 재단과 한통속으로 놀아나는 비리 관료가 건재하는 이 나라 교육계에서 무슨 희망을 보겠는가? 교육이 한 나라의 백년대계요 나라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말이 정녕 사실이라면, 교육계를 좌우하는 교육 관료의 양심과 의식 수준이 칠흑 어둠 속이므로 이 나라의 미래 또한 암흑 천지일 것이다.


박성호 한려대학교 해직 교수. 중국 어학을 전공했으며, 공저에 <중국언어학사> 상,하(1999)가 있다. E-mail psh616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