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한국의 지식 권력 II--한국 대학의 어두운 초상
(당대비평 2000년 여름호, 박성호)

교육 관료: 마피아가 장악한 대학



나는 올해 2월에 교수직에서 해직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 나뿐 아니라 함께 학교 재단의 등록금 횡령과 전횡에 저항했던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열 다섯 명 전원이 모두 해직되어 실업자가 되었다. 우리는 힘겨웠던 이태 동안의 저항을 통해서 부패 사립 대학의 배후에는 언제나 부패 교육 관료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한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다음에서 나는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겪은 이야기만을 하려고 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있다. 이 일은 어느 이름 없는 지방 대학에서 일어난 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이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처리 방식을 면밀히 살펴보면 부패 교육 관료들의 면면을 여실히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글이 과연 침소봉대에 지나지 않는지 아니면 전체를 가늠케 해 주는 한 단면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지방 사립대 교수로 지낸 4년

있는 그대로 말하겠다. 나는 연세대를 졸업했다. 학부 4년, 대학원 석사 과정 2년 반, 박사 과정 5년 반, 이렇게 꼬박 12년 동안 거의 매일 모교의 교정을 밟았다. 대학원생 시절에는 조교로 근무하면서 학교 직원과 교수님 사이를 오가며 대학 행정이 어떤 것인가를 일부나마 실무적으로 경험하기도 했고, 모교와 다른 대학의 강단에서 몇 해 동안 시간 강사로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6년 3월에 면접을 거쳐 전남 광양에 있는 한려대학교의 교수(정확히 말하면 전임 강사)가 되었다. 희한한 대학이었다. 개교한 지 2년째 되어 재직 교수가 50명이 넘는 대학이었는데도 대학을 나온 행정 직원이라고는 오직 서무과장 한 사람뿐이었다. 조교는 물론이고 아예 학과 사무실이란 것이 없었다. 여고를 갓 졸업한 급사 수준의 여직원 두어 명이 행정 인력의 전부였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학에서 일반 행정 직원과 기능직 직원과 조교가 해야 할 모든 일을 교수가 도맡아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임용 첫날부터 양복을 입고 내가 한 일은 배정받은 사무 집기를 4층에 있는 연구실까지 나르는 일이었다. 철제 책상과 의자, 비닐 소파 몇 개와 차탁 및 책장과 캐비닛을 옮기고 나니 쌀쌀한 3월 초의 날씨인데도 땀이 배어 나왔다. 그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연이어 입학식을 준비해야 했다. 망치로 못을 박아 연단을 제작하고 입학생들이 앉을 천 몇백 개의 의자를 나르고 학과별 피킷을 만드는 등의 모든 일이 전부 교수의 몫이었다. 입학식 이후에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모든 대학에서 하게 마련인 학과별 오리엔테이션과 신입생 환영회 같은 것말고도 신입생 주소록 작성과 컴퓨터 입력, 수강 신청 과목 입력, 학적부 작성, 하다못해 통학 버스 이용자 실태 조사 등이 모두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전산과 교수들은 그 외에도 학적 입력 프로그램과 성적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다. 이 모든 일을 하며 주당 15시간 이상 되는 강의를 했고 야간에도 강의가 있었기 때문에, 날마다 아침 9시에 출근하여 밤 10시에 퇴근했다. 사이사이에 학과 교수 회의와 전체 교수 회의에 참석하고, 공휴일엔 숙직과 당직을 서 가며 녹초가 된 몸과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직 정식으로 임명장을 받지 못해 신분이 불안정한 상태인데다가 함께 임용된 동료 교수가 호봉을 책정할 근거 서류를 제출할 때 과거의 고교 교사 경력을 추가로 기입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임명이 취소되어 눈앞에서 사라지는 일을 겪으니 근무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살벌했고 조마조마했다. 가령 임용 첫학기에 받은 공문 중 하나는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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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무기강 확립 및 학생 생활 지도 철저

근래에 나타나고 있는 교수 여러분의 근무 상황에 대한 다음 몇 가지 유의 사항을 통지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향후 반복되는 과오에 대해서는 응분의 책임을 감수하시기 바랍니다.

가. 전임 교원으로서 출,퇴근 시간을 엄수하시고 무단 결근 및 연구실 무단 이탈 행위를 일절 금하시기 바랍니다.
(중략)
마. 학생들의 강의실 내 청결 유지와 강의실 내에서 취사 행위 금지 및 부탄 가스, 신나, 래커, 페인트 등 위험물 반입 금지, 그리고 교내 음주 행위 등에 관한 학생 생활 지도를 철저히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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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가장 괴로웠던 일은 독립된 연구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강의실로 쓰이는 휑한 공간을 교수 네 명이 함께 사용해야 했다. 손수 나른 집기로 적당히 공간을 분할하고 그 안에 앉아 있노라면 쉴 새 없이 여기저기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며, 없는 직원 대신 사사건건 교수를 찾아 앞뒤 출입문으로 드나드는 학생들 목소리 등으로 도저히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건 연구실이 아니라 사무실이었다. 그 안에서 ‘연구’를 하라고? ‘연구 논문’을 쓰라고? ‘교수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한국 대학 교육의 경쟁력이 형편없다고? 궁금해진 나는 모교 총장실에 근무하는 분에게 여쭈어 보았다. 대답은 간단했다. 연세대에는 교수가 700명쯤 되는데 직원 수는 행정 직원 350명에 기술 직원 150명, 모두 500명이라고 했다. ‘그렇구나. 교수와 직원의 비율이 7:5란 말이지? 그럼 내가 근무하는 이 학교는 교수가 이제 80명이니까, 그 비율로 따지자면 직원이 57명 가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참 꿈 같은 이야기로구나.’ 이 대학 운영자의 속셈은 교수에게 강의뿐 아니라 일반 행정 직원과 기능직 직원의 일 및 조교 업무까지 전담시켜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자는 것이었다. 교수에 대한 대우가 이러했으므로 학생들이 처한 상황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거두절미하고, 근무한 지 2년이 지날 때까지, 그러니까 개교한 지 3년이 지나도록 도서관이 없었다. 3년이 훨씬 지나서 어디선가 소설책을 잔뜩 들여 와서는 강의실 하나를 막아 이른바 도서관이라는 것을 꾸며 놓기는 했는데(물론 책을 나르고 정리?분류하고 바코드를 붙이고 서가에 꼽고 도서 대출 프로그램을 짜고 하는 모든 일은 당연히 교수의 몫이었다), 그때도 백과사전 한 질이 없었다. 세상에, 우리 나라 초?중?고등학교를 통틀어 백과 사전 한 질도 없는 학교가 있는가? 그래서 나는 강의 준비를 하다가 백과 사전을 보려면 인근에 있는 시립 도서관으로 가야 했다. 복사를 하려면 신분증을 맡겨야 했는데 도저히 교수 신분증을 내보일 수가 없어 대신 주민등록증을 맡겼다. 이공계 학과는 변변한 실험 도구 하나 없이 어느 학과나 거의 분필과 맨입으로 강의를 해야 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강의실 안으로 물이 쉴 새 없이 들어와 강의를 중단하고 물을 퍼 내야 하고, 방음 시설이 전혀 안 되어 있어서 강의실 중간쯤부터는 교수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으며, 중?고등학교처럼 수강 과목과 강의 시간이 모두 고정되어 있어 학생의 선택권이 원천 봉쇄되어 있고(학생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자면 그만큼 시간 강사를 더 써야 하므로 인건비가 많이 드는 것이다), 실내 휴식 공간이 전무하여 화장실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대화를 나눠야 하는 학교, 동아리방 하나도 없는 학교…… 이런 사례를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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