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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역깨기 ] 2003년07월02일 제466호 

“교수님, 삥땅치지 마세요”

‘관행’으로 굳어진 대학의 연구용역 비리… 제자들 이름으로 통장 만든 뒤 연구비 착복

제자들로 하여금 도장과 통장을 만들어오게 한다. 그리고 입금된 돈을 모아서 교수가 가로챈다. 그동안 관행처럼 굳어져온 대학가 연구용역 비리의 구조적 문제점을 파헤친다.


‘대학교수’와 ‘삥땅’. 이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낱말이다. 지성인을 대표하는 직업을 일컫는 말과, 남의 돈을 가로채는 짓을 저급하게 부르는 속어를 감히 비교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낱말이 실제로는 절묘하게 조합되고 있다. 교수들이 제자들의 노동의 대가를 스스럼없이 가로채고 있는 것이다. 대학교수의 ‘삥땅 치기’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연구실 문화. 이것이 국내 상아탑의 현주소다.


사진/ 한 대학의 강의실 복도(왼쪽,한겨레 장철규 기자). 교수들의 제자 연구용역비 가로채기가 관행처럼 묵인돼 온 게 대학의 어두운 현실이다. 오른쪽은 한 대학의 이공계 연구실. (씨네21 이혜정 기자)

“검거된 교수들은 재수가 없었을 뿐”

지난 6월23일 부산지검 특수부(부장 임상길)는 연구비를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해양대 교수 6명을 적발 했다. 이 교수들은 연구용역에 참여한 제자들이 받아야 할 돈을 가로챈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 중 죄질이 나쁜 2명은 구속됐다. 구속된 이아무개(46), 김아무개(42) 교수는 2000년 3∼5월 해양수산부가 용역을 준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연구보조원으로 채용한 학생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각각 1억750여만원과 8220만원을 빼돌렸다. 다른 교수들도 비슷한 수법으로 제자들의 연구비를 가로챈 사실이 적발됐다. 수사를 담당한 김진태 검사(사시 36회)는 “교수들이 오래된 관행이라며 뻔뻔스럽게 항변하는 바람에 어이가 없었다”며 “교수들의 도덕 불감증이 상식을 뛰어넘었다”고 혀를 찼다.

이것이 비단 한국해양대만의 ‘비리’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전국의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의 이공계 교수들 중 상당수가 이런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 해양대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다른 대학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왜 해양대만 수사하는가’라는 항의성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겨레21>이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공계 대학원생들도 “해양대 교수들은 단지 재수가 없어서 걸렸을 뿐”이라고 단언했다. 이런 비리는 이른바 명문대일수록 더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기업의 연구용역이 많이 몰리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교수들 자신이 이것을 비리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교수들이 제자들의 인건비를 가로채는 수법은 이렇다. 먼저 정부 부처나 대기업의 연구용역을 받으면 교수는 자신의 석·박사 과정 제자들로 연구팀을 구성한다. 교수는 미리 제자들의 통장을 만들어 놓은 뒤 제자들의 통장으로 입금된 인건비를 찾아서 자신의 계좌로 모은다. 이 과정에서 연구에 참여하지도 않은 학생들의 이름이 연구보조원으로 등록되는 경우도 많다. 서울 신촌의 한 대학 공대 박사과정에 다니는 이아무개(25)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했을 때 박사과정의 선배가 ‘도장을 파야 되느냐’고 묻더라구요. 무슨 얘기인지 잘 몰라서 가만히 있었는데 다음날 내 이름이 새겨진 막도장을 건네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통장 하나 만들어서 도장하고 통장하고 다시 달라는 거예요. 그게 바로 연구 인건비를 받기 위한 통장이었죠.” 이씨는 “대학원을 다닌 지 5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내 통장에 얼마의 돈이 들어오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씨는 5여년 동안 지도 교수한테 ‘용돈’으로 2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의 통장에 입금된 인건비는 이보다 훨씬 많다. 연구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적으로 연구보조원에 지급되는 인건비는 1건당 석사과정은 월 30만∼40만원, 박사과정은 60만∼70만원, 박사급 연구원은 120만원 정도다. 연구 규모가 크면 용역비도 늘어난다. 또 한 교수가 연구용역을 여러건 맡기 때문에 학생들의 인건비는 이보다 더 많다. 실제로 통장에 입금되는 돈은 석사과정은 1년에 1천여만원, 박사는 2천만∼3천만원에 이른다. 양심적인 교수들은 이 돈을 전액 장학금으로 다시 내놓는가 하면, 이 중 절반을 학생들에게 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교수들은 극소수라는 게 학생들의 얘기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이 돈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은 제자들이 다 하고…

교수가 제자들의 인건비를 가져가는 것은 그만큼 일을 많이 하기 때문일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연구용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이 다한다. 연구제안서 작성에서부터 연구논문 완성까지 모두 학생들의 몫이다. 논문 마지막 단계에서 연구 결과를 검토해주는 교수도 있지만, 이는 극히 일부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연구기간 내내 나 몰라라 한다. 그러나 완성된 연구논문은 마치 교수가 주된 역할을 하고 학생들은 단순히 잡일을 도운 것처럼 돼 있다. 교수의 이름이 연구논문의 ‘제1저자’로 버젓이 올라가 있는 것이다.

이런 비뚤어진 연구실 문화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상당히 오래됐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방의 한 국립대 공대 교수는 “(이런 비리는) 우리 학계의 고질병인 도제식 사제관계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제자가 존경하는 스승의 집안일을 도와주던 옛 미덕이 제자들의 노동까지 거리낌없이 ‘착취’하는 악습으로 변질됐다는 분석이다.

지도교수가 제자를 머슴처럼 부리는 행태도 심각하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김아무개(24·전산학 석사과정)씨는 “아예 지도교수 자녀들의 숙제를 대신 해주거나, 교수 자녀들을 등·하교시키는 일을 전담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교수 부인이 남편의 제자를 운전수처럼 부리는 경우도 있다. 교수 집안이 경조사를 치를 때 생기는 잡일도 온전히 제자들의 몫이다. 청첩장을 만들어 돌리는 일은 물론, 상을 당했을 때에는 밤새워 상가를 지키며 심부름도 해야 한다. 김씨는 “교수를 존경하기 때문에 한다기보다는 교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잡일을 한다. 교수의 눈 밖에 나면 학위를 딸 수도 없고, 설사 학위를 따더라도 추천장을 써주지 않기 때문에 취직을 못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잡일에 시달리다보니 당연히 학생들이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3년 코스’ 박사를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대학원에 진학한 뒤 처음 2년 정도는 잡일에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박사학위를 따는 데 평균 5∼6년이 걸린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분교 대학원생은 지난 겨울방학 때 지도교수한테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다. “지도교수에게 잡일이 너무 많아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교수가 대학원에 왜 왔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공부하러 왔다고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교수가 ‘그럼, 넌 대학원에 잘못 온 거야. 대학원은 일하는 곳이지 공부하는 곳이 아니란다’라고 하더군요.”

교수들의 도덕 불감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각종 학술대회에 제출하기 위해 제자들이 쓴 연구논문에 자기 이름을 ‘제1저자’로 당당하게 올리는가 하면, 자기와 친분이 있는 학생들의 이름을 슬그머니 끼워넣기도 한다. 논문 심사 때 공동 저자가 많으면 점수가 깎이기 때문에 애초 논문을 쓴 학생들은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벤처업계 직원으로 둔갑한 대학원생들

일부 교수들은 제자들을 ‘범죄’에 동원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에 다니는 최아무개(28)씨는 벤처 열풍이 거세게 불던 지난 2000년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벤처로 등록되면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들이 벤처로 등록하기 위해 애를 쓰던 때였다. 하지만 벤처로 등록되려면 석사급 이상의 연구인력을 보유해야 하는데 사업규모가 작은 업체에서 이런 인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날 지도교수가 자기와 친한 사람이 벤처를 만드는데 좀 도와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박사과정의 대학원생들을 그 벤처회사의 직원으로 올리더군요. 졸지에 벤처 직원이 된 학생들은 그 회사가 정보통신부의 심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발표자료를 준비하고 실제로 발표까지 했어요. 또 정통부 심사위원 명단에는 지도교수 이름이 버젓이 올라 있는 거예요. 그 뒤 그 회사는 벤처 심사를 통과했고, 학생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왔죠. 나중에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우리 교수가 그 회사 사장한테서 수억원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죠.”

미국의 경우 교수가 학생들의 연구비를 가로채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미국 보스턴칼리지 경영학과에 유학 중인 이제구(34·박사과정)씨는 “일단 사람을 쓰면 돈을 줘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아무리 스승과 제자 사이라 할지라도 돈 관계는 명확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정부나 기업체가 연구용역을 줄 때 연구보조원의 시간당 임금을 정한 뒤, 연구에 참여한 대학원생이 매주 몇시간 일했는지 보고서를 내면 그에 따라 인건비를 지급한다. 물론, 미국 교수들 중에서도 학생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1주일 동안 10시간 일하기로 계약해놓고, 실제로는 학생에게 30시간 이상 걸릴 분량의 일을 주는 식이다. 이씨는 “학생이 항의를 하면 교수는 ‘다른 애들은 10시간 만에 다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라고 놀린다. 주로 외국인학생들이 이런 일을 당한다”고 꼬집었다.

일부 교수들의 연구비 착복 관행은 정부가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탓이 크다. 해양대 사건을 수사한 김진태 검사는 “교수들이 연구비를 받기 위해 제출한 증빙서류가 매우 조잡하고 터무니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교육인적자원부가 제대로 감사만 했어도 쉽게 적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연구용역비는 용역을 준 기관이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교육부가 관여할 수 없다”고 책임을 해양수산부에 떠넘겼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해수부가 연구용역을 준 부처라 할지라도 연구비 사용 실태를 감독하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며 “학교에서 연구비가 제대로 집행됐는지 심사해야 하고, 또 교육부가 감사를 통해 이를 감시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의 기초학문 연구를 지원하는 학술진흥재단 관계자는 “학교 내부에서 이뤄지는 비리는 외부 기관에서 실사를 하더라도 적발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일반 기업의 연구용역사업은 연구비 감시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제자들의 땀을 빌리면 대가를 줘야지요

교수들도 할 말은 있다. 대학에서 처리해야 하는 각종 행정업무에 치여서 연구과제를 수행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재단과 정부, 기타 각종 단체에서 요구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차분히 연구에 전념할 수 없다”며 “그래도 연구 업적은 쌓아야 하기 때문에 제자들의 땀을 빌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제자들의 땀을 빌리면서 왜 땀의 대가까지 가로채려고 하는 것일까. 교수들은 그저 ‘오래된 관행’이라고만 답할 뿐, 제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나서지는 않는다.

이춘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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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독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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