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된 대학 사회의 빗장을 열다.
[2005년 1월 14일, 미디어 다음에서]

“거액의 연구비를 유용한 교수들은 사실상 학교측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정작 잘못을 지적한 저는 강의를 모두 뺏기고 결국 학교에서 쫓겨나게 됐고요.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대학사회가 투명해져 다시는 저 같은 공익제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

반부패국민연대가 선정한 '올해의 투명사회기여상' 수상자 김이섭 연세대 강사는 대학 사회에 만연한 임용 비리와 연구비 유용 문제를 공론화한 인물이다. 용기 있는 문제제기로 상까지 받았지만 김씨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14년 동안 맡고 있던 강의를 올해는 하나도 배정받지 못한 데다가 학교 본부가 문제가 된 교수들을 경징계하는 선에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연구원들을 '앵벌이'로 내세우는 연구소 관행 고발



△ 김 박사가 대학 도서관에 붙인 대자보(사진: 한겨레 21)
그의 싸움 도구는 인터넷이었다. 그는 지난 해 1월부터 ‘나는 고발한다’는 내용으로 독문과 교수 임용 과정의 불합리성과 교수들의 연구비 착복 실태를 상세히 폭로했다.

그에 따르면 비정규직 연구원들의 연구를 지원하고 경제적인 안정을 돕기 위한 교내외의 학술 지원금은 정규직 교수들의 치부를 위한 ‘앵벌이용’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김씨는 “독문과의 일부 교수들이 학내 유럽문화정보센터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개인적인 치부에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고발 내용에 따르면 이 연구소 부소장인 A 교수는 자신이 책임 연구원으로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공동 연구원인 강사들의 연구비를 착복했다. 책임 연구원인 A 교수는 학술진흥재단이 규정하고 있는 300만원만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강사들의 인건비를 가로채 1000만원을 수령했다는 것.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A 교수는 매달 25만원만 받아야 하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공동 연구원들과 동일한 액수인 100만원씩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유럽문화정보센터의 소장인 B 교수는 책임연구원은 300만원만 받기로 되어 있는 규정을 어기고 공동 연구원들과 동일하게 1000만원을 받았다고 김씨는 고발했다. 공동연구원들은 학술진흥재단에서 정해진 급여를 제대로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한다. 연구비로 100만원을 지급한 뒤 300만원을 받았다는 영수증을 써달라고 요구하는 등 책임 교수들의 횡포가 일상적이었다는 것이다.

B 교수는 또 프로젝트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자신의 부인을 프로젝트 연구비 신청 당일에 연구자로 포함시키려 했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B 교수는 유럽문화정보센터의 실질적인 운영자로서 ‘오버헤드(재단 간접경비)’라는 명목으로 모든 프로젝트의 연구비 가운데 10%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또 그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연구원들에게 폭언과 협박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의 문제제기 이후에도 관련 교수들은 솔직한 사과나 반성과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였다. 김씨는 “비리 관련 교수들은 기존의 관행에 호소해 연세대 교수들로부터 내 고발이 부당하다는 탄원서를 받는 것은 물론 전국 정규직 교수들의 탄원서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교수들의 행위는 명백한 위법행위이며, 학술진흥재단에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인문학 육성 과제의 주된 목적은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강사들의 연구를 지원하고 경제적인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학내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공론화하자는 생각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언론 플레이’를 하거나 남을 공격해서 교수 자리를 얻고자 했다면 언론사에 투서를 했겠죠. 모든 언론에서 제 고발 내용을 보도하고 학술진흥재단에서 실사까지 나오리라고는 사실 예상하지 못했었습니다.”


△ 연세광장 게시판(사진: 한겨레 21)

연세대 독문과 사태는 인터넷과 네티즌의 힘이 이뤄낸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씨의 고발 내용에는 수많은 댓글이 올라오며 학생과 교직원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과 토론이 이뤄졌다. 공개된 장소에서 교수들의 치부가 드러났고 이를 알게 된 언론들도 김씨의 고발내용을 잇따라 취재해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학내에서만 수근거리다 이내 잊혀지겠지’라고 생각했던 당사자들은 예상하지 못한 ‘후폭풍’을 만난 셈이다.

“제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당사자들의 반응은 코방귀를 끼는 수준이었죠. ‘횡령은 말도 안 된다. 영수증 처리를 다 했다’고 하더니 정작 제가 제기한 문제들이 보도되니까 태도가 180도 바뀌더군요. 개인적으로 만나자며 저를 회유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러나 ‘교수 임용을 전면 취소하고, 횡령한 연구비를 연구원들에게 돌려주기 전에는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고 했었습니다. ”

고발 내용의 파장이 큰 만큼 김씨가 감내해야 할 고통도 그만큼 커졌다. 고발한 교수들이 모두 학내 선후배 또는 사제 관계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 명문 사학으로서 신뢰를 받고 있던 모교의 명예도 상당 부분 실추될 수 밖에 없었다.

문제의 교수들이 ‘돈 세탁’의 통로로 이용한 것으로 드러난 유럽문화정보센터의 간사는(참조 : 최모 간사의 게시글1,  게시글2, ) “김씨의 고발로 인문학계 전반의 이미지가 훼손됐고 순수 학문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마저 사라졌다”면서 “김씨의 비판이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연세대에서 14년을 일했고 누구보다 모교를 사랑한다고 자부했던 김씨로서는 본의 아니게 학교와 학과에 누를 끼쳤다는 마음의 짐을 안게 됐다.

“제가 고발한 사람들이 다 동료고 선후배인데 왜 인간적으로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물론 연세대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나아가 인문학 연구에 대해 사회의 시선이 차가워진 것도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쉬쉬하고 묻어둔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개인적인 출세를 위해 교수들을 공격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많았다. 그는 애당초 그런 생각은 할 수 도 없었다고 했다. 해당 교수들이 영수증 조작 등으로 증거를 인멸했다면 무고죄로 몰려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자신이 비리교수로 지목한 이들과 뒷거래를 한다거나 개인적 이득을 챙기려 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모든 대화는 인터넷, 즉 공개된 장소에서만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고 했다. 다행히 학술진흥재단의 조사로 비리 교수들이 1억 2천만원을 유용한 사실이 드러났고 김씨는 자신의 고발이 공익에 근거한 것임을 인정 받을 수 있었다.


김씨의 고발 내용,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

학술진흥재단의 실사 결과 김씨의 고발 내용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김씨가 고발한 교수들은 학술 진흥 연구원의 실사 결과 모두 11억원의 연구비 가운데 10%가 넘는 1억 2000만원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으로 밝혀졌다.

법원의 판결 내용에 따르면 (참조: 공소사실) 교수들은 ▲가족을 연구자로 둔갑해 연구비를 빼돌리거나 ▲기부금 명목으로 연구원들로부터 돈을 송금하도록 하거나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연구원의 명의를 이용해 연구비를 지급 받게 하고 자신의 통장에 입금하게 하는 수법 등으로 연구비를 횡령했다.

A 교수와 B 교수는 각각 1000만원과 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고 C 교수는 유용 액수가 적다는 이유로 기소 유예가 선고됐다.

김씨의 고발이 불러온 사회적 파장은 적지 않았다. 이처럼 대학 내 연구비 조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진 것은 유례가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드러난 문제점보다는 밝혀내야 할 문제들이 더 많다는 것이 김씨의 지적이다. 학술진흥재단이 비리 교수들의 개인 연구소라고 불리는 유럽문화정보센터에 대해 강도 높은 실사를 벌이기는 했지만 수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자료 외에는 충분한 조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교 당국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 연구비 유용 교수는 경징계 그쳐.

교수들의 비리 내용이 낱낱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은 형사상 범죄를 저지른 교수들을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했다. 학교 측은 A 교수에 정직 2개월, B 교수에 견책, C 교수에 구두 경고를 하는 선에 그쳤다.
”학교 측의 징계 방침은 방학 동안만 강의를 쉬다가 복직하라는 얘기로 사실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얘기”라고 김씨는 말했다. 교육자로서 양심과 도덕성을 저버린 교수들에 대한 적절한 징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학내 외의 여론이다.

연세대 연구처에서 지원한 것으로 추정되는 억대의 연구비는 지출 내역이 공개조차 되지 않았다. 김씨는 “학진의 연구비보다 관리가 훨씬 허술한 교내 연구비 또한 학진의 연구비 사용 내역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면 아래로 잠복한 임용 비리 문제

한편 김씨가 고발한 교수 임용 문제는 학문적 업적이 미흡한 응시자가 교수들과의 친분 관계에 의해 교수로 임용됐다는 문제점만 지적됐을 뿐 밝혀진 사실은 거의 없다. 학교 측이 교수들의 평가 점수 등 형식적인 자료만을 공개했을 뿐 김씨가 지적한 연구 업적 평가 방식이나 교수 임용자의 연구 성과에 대한 별도의 검증 작업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독문과의 2004년 1학기 신규교원 임용에서 교수의 연구능력과 성실성을 가늠할 수 있는 연구업적의 평가비중을 전체 평점의 15%로 책정한 것은 어느 대학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부당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교수들이 주관적 잣대를 적용하기 쉬운 강의 능력 평가 등에 높은 점수를 책정하는 방식으로 특정 후보를 뽑는 담합을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총학생회, 비정규직 교수 노조 등과 연계해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하겠다”며 “아직 비리 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교수 임용 문제는 국민감사를 청구하는 방법 등으로 정보 공개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참조: 감사원에 고발된 서울대)

그러나 사학의 인사 비리에 대한 국민감사 청구는 전례가 없는데다 대학 측의 진상 규명 의지가 강하지 않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어서 김씨의 싸움은 여전히 ‘외로운 투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익제보자엔 강의 안 맡겨

김씨가 조직 내부의 문제를 공론화한 이후 치러야 했던 대가는 심리적인 고통만이 아니었다. 생업인 강의까지 끊어진 것이다. 연세대 독문과는 그가 문제를 제기한 직후인 지난 해 봄학기에 5년 동안 맡아오던 ‘독일 문화와 예술’ 강의를 다른 강사에게 배정했다. 그에게는 한 마디 상의도, 통보도 없었다. 또 올해 봄학기부터는 3년 동안 강의해오던 ‘현대 유럽의 사회와 문화’ 강의마저 배정 받지 못했다. 연대에서는 아무런 강의도 배정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김씨는 사실상 학교가 자신을 쫓아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학교 본부가 비리를 저지른 교수들에게 중징계를 내리기는커녕 그들이 부당하게 내 강의를 뺏는 것을 방조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총학생회가 강사 변경과 관련된 문건 열람을 요청했지만 학교 측은 담당자가 휴가 중이라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학내에서도 지지자들 생겨나…”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 되고 싶었는데.."

그가 동료 교수들의 ‘왕따’와 생업이 없어지는 고통을 버텨 낼 수 있었던 것은 가족과 그를 성원해주는 학내 지지자들 덕분이었다.

“이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가족들의 동의부터 구했습니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쫓겨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경제적인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중에라도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될 줄로만 알았는데 각계에서 응원의 손길을 내민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전국 비정규직 교수 노조, 연세대 총학생회, 연세대 대학원 총학생회, 독문과 사태 관련 학생 진상규명 위원회 등 동료 교수들과 제자들이 그의 편이 되어 주었다. 김씨가 모든 비난과 공격에 맞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을 하자 학내 게시판의 여론도 비난보다는 지지로 돌아섰다. 지금도 그는 제자들에게서 ‘힘내라’는 메일을 종종 받는다.

모교의 명예에 흠집을 냈다는 책망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을 한 것이라는 격려도 있었다. 대학 사회 전반이 불투명한 행정과 폐쇄적인 인맥으로 불신을 받는 상황에서 용기 있게 문제를 제기한 것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라는 평가였다.

그는 현재 자신의 거취 문제를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다른 학교에서 강의를 할 것인지, 번역과 논문 작업에만 몰두할 것인지 올해에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다.

“공익적인 제보자에 대해서 신분을 보장해주는 사회적 제도가 너무 취약합니다. 특히 대학사회는 말 할 것도 없지요.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것에는 미련이 없습니다. 다만 제 행동이 공익 제보로 판명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면 저 혼자 모든 책임을 지고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면 어느 누가 용기있게 고발하려고 할까요? 솔직히 저는 제가 대학 사회의 최초이자 마지막 공익제보자이길 바랍니다. 대학 사회가 투명해져서 더 이상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하루 빨리 교수 집단의 전횡에 맞설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인사위원회 등 심사 기구를 강화해 주길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

한편 미디어다음은 연구비 유용 판결을 받은 해당 교수들의 입장을 보도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했으나 A 교수는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B 교수의 가족은 “시골에 내려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고 C 교수는 휴대전화의 착신을 막아 놓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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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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